에4:10-17 에스더, 그녀는 누구인가?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 ‘잔 다르크(Jeanne d'Arc)‘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송아지를 몰고 들판으로 나가 한가롭게 놀기 좋아하는 마음씨 착한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13살 되는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하늘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분부를 내리셨느니라. 잔 다르크, 너는 왕태자를 도와 쓰러져 가는 너의 조국을 구해야 하느니라."
그 무렵에 잔 다르크의 조국 프랑스는 영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와 영토문제로 오랫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전쟁을 '백년전쟁'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왕이 아들 없이 죽게 되자 영국 왕이 프랑스 왕을 겸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렸습니다. 이에 반기를 든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 왕의 주장을 무시하고 새로운 왕을 추대했습니다. 그러자 당시에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 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프랑스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로 인해 프랑스 왕은 영국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의 아들 왕태자는 왕위에도 오르지 못한 채 신하들을 따라 시골로 피했으며, 프랑스는 영국 군대에 거의 점령당했습니다. 영국군은 마침내 프랑스의 요충지인 오를리앙을 포위했습니다. 이곳만 빼앗기면 프랑스는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천사가 꿈속에서 다시 나타나 말했습니다. "잔 다르크! 조국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 있는데 너는 어찌 그러고만 있느냐? 어서 시농성으로 찾아가 왕태자를 만나고 프랑스군을 지휘하라!"
잔 다르크는 잠에서 깨어난 다음, 벌떡 일어나 시농성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 타는 법과 칼 쓰는 법, 등의 무술을 배웠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 17살의 소녀 잔 다르크는 남자 옷에 갑옷을 입고 긴 창을 들고 말에 올라, 4천명의 프랑스 군사를 이끌고 오를리앙 성을 포위한 영국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세 차례의 싸움 끝에 프랑스군은 영국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망하기 직전에 있었던 프랑스는 잔 다르크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17살 소녀 잔 다르크는 나라와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지금도 프랑스 역사에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잔 다르크와 비슷한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에스더라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등장한 에스더도 잔 다르크처럼 남자가 아닌 여인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죽이고 죽는 살벌한 상황에서 여성이 앞장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멸망 직전에 구해낸 잔 다르크처럼 에스더는 자기민족을 멸망 직전에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잔 다르크의 행적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12월14일이 되면 에스더가 자기 동족을 구해낸 날을 기념하여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에스더에 대해서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에스더는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1. 에스더는 불행한 환경을 잘 극복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살던 시대는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아 망한 후, 나라 없이 살던 시절과 비슷합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은 주전 606년에 유대나라를 침략한 후 많은 사람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주전 586년에 또 다시 공격해온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어 유대 나라는 끝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년만년 유지될 줄 알았던 바벨론제국이 페르시아(바사)제국에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인 주전 536년에 약 5만 여명의 포로들이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1차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주전 458년에 에스라의 인도 하에 많은 포로들이 2차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에스더는 1차포로 귀환 후, 2차포로 귀환 전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 때에 나라 잃은 설움을 당하며 이방 땅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에스더는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러자 사촌인 모르드개가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이 에스더를 데려다가 양육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린 소녀가 외국 땅에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로 자란다는 것, 그리고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더부살이를 하는 것은 참으로 불우한 인생일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스더는 얼마든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비뚤어질 수 있었고,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얼마든지 비행청소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방 땅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지만,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가정은 다른 가정과 달리 불행한 가정이었지만, 그녀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곁길로 나가지도 아니하고 그 어려움을 딛고 잘 자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 외국 땅에 살면서 혹시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며, 조그만 어려움에도 환경을 탓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나를 왜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우리 가정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하며 부모를 탓하며, 남편을 탓하며, 아내를 탓하며, 친구를 탓하며, 다른 사람들을 탓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역사를 보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그 환경을 잘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신체적인 핸디캡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2차 세계대전을 진두지휘하였습니다.
또한 음악가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입니다. 여러분, 음악가가 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청각장애는 음악가에게 있어 치명적인 핸디캡 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습니다. 사실 인간사회에서 학벌이 변변치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마음의 상처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무학력이라는 핸디캡을 훌륭히 극복하고 후에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졌던 약점과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잘 극복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조그만 일에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믿음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불행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며 역사를 바꾸어 놓은 에스더와 같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에스더는 아름답게 자신을 가꾼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성인이 되던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은 모든 신하들을 모아 잔치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아내인 와스디 왕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와스디 왕비는 왕의 부름을 무시하고 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 왕비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비를 세우기 위하여 전국 각 지방에 있는 관리들로 하여금 아리따운 처녀들을 골라서 수산궁으로 보내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이리하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처녀들이 수산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스더였습니다. 결국 에스더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후보들을 제치고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부모 잃은 고아로 자랐지만,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될 만큼 자기의 몸과 마음과 인격을 가꾸는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다는 것은 단지 외모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백도 없고, 부모도 없는 고아요, 포로 출신인 그녀가 왕비가 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스코리아나 미스 유니버스 같은 미인대회를 할 때에 얼마동안 합숙훈련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합숙 훈련을 하는 동안 각 후보의 인격과 성격도 같이 살피게 됩니다. 만약 이 때에 공주병에 걸린 이기주의 후보라던가, 혹은 신경질적이고 사나운 후보라면 일찍부터 탈락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일년간의 합숙훈련 동안 그 인격과 마음씨가 후보들 사이에, 그리고 후보들을 돌보는 신하들 사이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2장 15절 하반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얻더라.” 여기서 ‘굄’이라는 말은 ‘호의’, 혹은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는 좋은 인격과 마음씨로 인하여 일년 동안의 합숙훈련 기간에 이미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합숙 훈련을 하는 동안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왕에게 면접을 보러 나아갈 때에 다른 여인들은 자기의 몸을 가꾸기 위하여 여러 가지 향품과 여성용 물품과 의복들을 규정 이상으로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내시 헤게가 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아니할 만큼 검소하고 차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많은 향품을 바르고 각종 물품들로 치장한 다른 어떤 여인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인격을 잘 가꾼 그녀는 당당히 미스코리아 진(?), 아니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 외국 땅에서도 자신의 인격과 마음과 실력을 잘 가꾸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외국 땅이라고, 남이 보지 않는다고, 현재 자신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자신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죽이는 부정적인 사람입니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미래는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가꾸는 자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잠시의 기간은 마치 합숙훈련 기간과도 같습니다. 이 기간에 자신의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천국에 가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로서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3. 에스더는 더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한 여인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스더의 이 세 번째 특징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라는 사람을 국무총리에 임명했습니다. 이제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는 아하수에로 왕 외에 하만보다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하들은 이 하만의 권세에 눌려, 그가 지나가면 마치 왕 앞에 절하는 것처럼 그에게 무릎을 꿇어 절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사람인 모르드개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 2계명에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을 교묘하게 속여,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속한 유대인 전체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왕의 허락을 받아 날짜까지 잡아 놓았습니다.
이제 아달월인 12월13일이 되면 페르시아 제국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할 것 없이 다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다가, 내시 하닥을 통해 궁궐 안에 있는 에스더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왕 앞에 나아가 간교한 하만의 계획을 밝힌 후에 왕의 마음을 돌이키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내시인 하닥에게 ‘너는 가서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면서 한 메시지를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1절입니다. 다같이 11절을 보겠습니다. “왕의 신복과 왕의 각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삼십 일이라 하라.”
당시에는 함부로 왕이 거처하는 안뜰에 들어가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만약 왕의 허락이나 부르심 없이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왕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홀’이라는 막대기를 내밀면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난처한 입장에 처했습니다. 왕비인 자신도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 되었습니다. 왕을 만나야만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말해서 자기 동족이 멸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러한 기회조차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에스더 자신도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만약 왕이 부르지도 않는데,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왕 앞에 나아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에스더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왕 앞에 나아가 하만의 음모를 왕에게 고하여 유대 민족을 구해내라.’는 모르드개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다시 내시 하닥를 통해 에스더에게 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겠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 메시지를 전해들은 에스더는 여전히 모르드개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비록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양아버지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황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에스더는 왕비의 신분인 반면, 모르드개는 여전히 포로의 신분
상태에 있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신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달라졌습니다. 에스더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자신이 왕비가 되었으니 얼마든지 모르드개를 외면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일을 알리기 위하여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도 유대인 포로라는 신분이 노출이 되어야 하고, 생명을 무릅써야만 합니다. 에스더가 이 일에 나서다가는 자칫 자신이 가진 모든 부귀영화를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자, 이제 에스더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개인의 부귀영화를 택하느냐? 아니면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야 되느냐? 결단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에 에스더는 이런 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여러분, 에스더는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포로였던 자기를 하나님께서 왕비로 세우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왕비라는 어마어마한 명예의 자리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더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별로 가치도 없는 세상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판이한 인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인 에서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귀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습니다. 에서는 먹는 문제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것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인 야곱은 장자권을 위해 팥죽 한 그릇을 포기했습니다. 야곱은 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후에 야곱은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대신 받고 아버지 이삭에 이어 족장으로 기록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모세는 애급의 바로의 궁궐에서 공주의 아들로 호화호식하며 살 수 있었지만, 더 가치 있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애급의 왕궁에서 사는 것보다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생명이 음식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몸보다 의복을, 생명보다 먹는 문제를 더 중요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간의 인생을 잘살기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사단에게 파는 일을 쉽게 범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썩어져 없어져 버릴 것들을 선택하기보다, 썩지 아니할 영원할 것을 선택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가치 없는 것들을 위해 목숨 걸지 말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목숨 걸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궁의 규례를 어기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에스더가 죽었을까요? 왕의 허락도 없이 나아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분노를 사서 망했을까요? 아닙니다. 왕비의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남은 인생을 보내려고 하기보다는, 더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한 에스더를 하나님께서 더욱 사랑해주시고 더욱 축복해 주셨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를 하나님께서는 더욱 높여 주시고 그 이름을 성경책에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들도 환경을 탓하기보다 에스더처럼 믿음으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기를 원합니다. 에스더처럼 자신을 잘 가꾸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가치 없는 것들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에스더처럼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함으로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스더, 그녀는 누구인가?
날짜:
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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