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 나의 죽음

날짜: 
2026/03/29
말씀: 
사53:4-6
말씀구절: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설교: 

오늘은 고난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죽음과 나의 죽음에 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잔치집에 있느니라.”(전7:2,4)

여러분, 초상집에 가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너도나도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죽음 너머의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사는 우리가 그렇게 남들과 원한을 맺고 미워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즉 죽음에 대한 바른 지식은 우리를 더욱 착하게 만들고,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만들고, 보다 진실된 성도로 나아갈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 절실히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죽음의 날이 자신에게도 그리 멀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이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늘 이런저런 지식을 공부하게 됩니다. 근데 최근에 공부하는 내용을 뒤돌아보니까 죽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을 알아보다가 이런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캐나다는 ‘안락사’ 다른 말로 ‘조력사’를 권장하고 실행하는 데에 아주 많이 앞서가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안락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예수님의 죽음은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 제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회 40년을 한 제가 잘 몰랐으니 웬만한 분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그게 뭘까요? 먼저 아는 것부터 천천히 알아봅시다.

1. 예수님의 죽음은 육체적으로 볼 때 매우 큰 고통이었습니다. 요즘 병원에서 말하는 ‘통증 지수’로 보면 가장 극심한 통증인 10의 통증을 겪으셨습니다. 그 당시 사형수들에게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취제인 ‘쓸개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마취제 없이 맨정신으로 그 고통을 감수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로서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제물의 자격을 유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죽음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하는 제사장들도 장로들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호산나! 찬양하리로다.” 하고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던 성도들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죄인들이 자신을 버리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때는 하나님조차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가는 죄인의 입장이다 보니, 그렇게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처절히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자니!(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3.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지고 죽은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4. 예수님의 죽음은 구원을 완성시키는 죽음이었습니다. 십가가 위에서 예수님은 외쳤습니다. “테텔레스타이(다 이루었다.)” 이 말은 상업적 용어로 ‘완불되었다’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류가 받아야 할 형벌의 값을 죽음으로 다 지불하셨습니다. 고로 우리는 더 이상 빚쟁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빚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5.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가로막혔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지성소에 누구나 쉽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6.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제물이 진영 밖에서 태워져야 한다는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아무 데서 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대한민국 땅이 아닌,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 성 밖에서 죽을 것을 예정하셨고, 이를 정확히 성취하셨습니다.

7.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자- 여기까지는 웬만한 분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새로 깨달은 것은 예수님이 왜 6시간 만에, 오후 3시에 죽으셨냐는 겁니다. 그 이유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양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린양을 언제 죽입니까? 그때가 바로 오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날인 유월절 바로 그 오후 시간에 죽으셔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이 죽는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히 섭리하셨습니다.

8. 만약 예수님의 죽음이 6시간이 아니라 더 지연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통 십자가의 죽음은 2~3일이 걸리고, 길면 일주일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대법상 안식일에는 시신을 나무에 두지 않아야 하므로, 로마 군병들이 강제로 다리를 꺾어서 예수님의 죽음을 앞당겼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요19:36) 는 예언과 어긋나게 됩니다. 그리고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막10:34)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부활의 타임과도 맞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표적에 큰 혼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메시아는 죽을 때에도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 죽어야 합니다.

9. 예수님이 6시간 만에 빨리 죽으신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며칠간 더 버티다가 죽으셨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오랫동안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면 옆에서 지켜보는 그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마 가족들에게 큰 트라우마가 될 겁니다. 물론 빨리 돌아가시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돌아가시는 분이 너무나 심한 고통을 당하고 돌아가시면 본인도 힘들고, 그걸 바라보는 가족들도 아주 힘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6시간 만에 신속하게(?) 죽으심으로 본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세심한 배려를 하신 것입니다. 아마 이것에 대해 연세가 드신 모든 부모님도 같은 생각을 하실 겁니다. 즉 자신이 죽을 때에 적어도 자녀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어떻게 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아름답게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자- 이번엔 저와 여러분의 죽음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1. 나의 죽음도 하나님이 세밀히 관리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그 장소나 시간과 방법을 하나님이 세밀히 정하시고 실행하신 것처럼 우리들의 죽음도 하나님이 세밀히 관리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설계도 안에서 가장 가치 있게 완성되어 집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죽음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관리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요르단강 저편 느보산에서 죽을 것을 명하셨습니다.(신32:49-50) 그렇게 모세는 사명을 다한 후, 느보산에 올라가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에서 기력이 쇠하지 않은 상태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즉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주님이 직접 예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의 죽음의 장소도 하나님의 정교한 계획 속에 있습니다. 고로 한 번쯤은 자신의 죽음이 어디에서 이루어질지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죽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어디서 죽으라고 합니까? 한국에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실래요? 캐나다에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실래요? 다른 제삼의 장소에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실래요?

“목사님, 저는 절대로 죽을 것 같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솔직히 손들어 보실래요? 예- 가끔은 어떤 분들이 그렇게 착각하며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나 꿈 깨십시오. 그것은 성경의 진리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즉 죽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정하신 겁니다. 고로 저도 죽고 여러분도 언젠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장소 그 시간에 반드시 죽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좀 슬프고 시무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죽지 않고 사는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시대에 다시 오시면 됩니다.

“아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일명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은 사람들이 부활합니다. 그리고 산 사람들은 부활체로 변화하여 죽음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여러분, 산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꿈 같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때는 꿈이 현실이 됩니다. 고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 재림 전에는 모두가 죽게 되지만, 그것도 그리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을 세밀히 관리하고 있고,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의 재림 시에 부활하게 됩니다.

2. 내가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 하시며 자신의 사명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나에게 맡겨준 사명을 완수하며 죽을 때에는 ‘다 이루었다.’ 하며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요약하신 것처럼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둘째,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상황에 처하든지 이 사명을 감당하며 살다가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장소, 그 시간에 죽음을 맞이하면 됩니다.

3. 내가 죽은 후에 남겨진 분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예수님이 6시간 만에 죽으심으로 남겨진 어머니와 주위 분들을 위해 배려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나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분들이 힘들어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으면 하고 우리는 미리 기도합니다. 그 남겨진 분들은 위한 가장 좋은 배려는 무엇일까요?

일단 그들도 구세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들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 속에 천국에 도착하는 겁니다. 먼저 죽는 사람이 남겨진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것 중에 이것보다 더 큰 유산이 없고, 이것보다 더 큰 배려가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모든 사람의 끝이 죽음임을 인정할 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시간표 안에서 오늘 하루를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죽음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그분을 만나러 가는 겁니다.

아이가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해가 질 때쯤 따뜻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가듯이, 군인이 전쟁터에서 모든 임무를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 집으로 돌아가듯이, 거친 바다를 오랫동안 항해한 배가 마침내 고요하고 평화로운 항구에 도착하듯이, 우리는 죽음을 통하여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들의 죽음은 낯선 곳으로의 추방이 아닙니다. 너와 나의 죽음은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죽음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의 ‘귀가(Going Home)’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덕분에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로서 당당히 그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이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죽음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출생뿐만 아니라 죽음의 순간도 더욱 귀히 여기시고, 그 모든 죽음의 과정을 세밀히 관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인생의 짧은 순간을 주님을 많이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날이 인생 최고의 영광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