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가?

날짜: 
2010/12/13
설교: 

마2:1-6 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는가?
성탄절이 가까웠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베들레헴 땅에 보내신 날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수 억 군데나 되는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실 때 하필 베들레헴 땅에 보내셨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의미를 같이 알아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죽음을 생명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베들레헴이 성경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35장입니다.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라헬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이 온 식구들과 함께 벧엘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라헬은 임신 중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출산의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12번째 아들 베냐민이었습니다. 영어 발음으로는 벤자민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라헬은 출산의 고통으로 인해 길거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베들레헴에 묻었습니다. 성경에서 첫 번째 나오는 베들레헴은 죽음과 슬픔의 장소입니다. 지명마다 첫 인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백담사하면 전두환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군사반란으로 인해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는 모습이 당시에는 세계의 토픽이었습니다. 또한 부엉이 바위라는 지명을 들으면 금방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생각납니다. 4대강 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성경에서 베들레헴 하면 첫 인상은 죽음과 슬픔입니다. 이러한 죽음과 슬픔의 장소 베들레헴에 생명의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복음을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극복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부활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래서 죽음과 슬픔의 인상을 가지고 있는 베들레헴을 생명과 기쁨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2. 이방인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베들레헴이 두 번째 등장하는 곳은 룻기서입니다. 베들레헴에 사는 이스라엘 남자 엘리멜렉이 역시 베들레헴 여자 나오미와 결혼하여 기룐과 말룐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압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곳 모압에서 두 명의 아들이 이방 여인인 모압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오미의 남편과 결혼한 두 아들이 자손도 없이 모두 죽었습니다. 여자들만 과부로 덩그러니 셋이 남았습니다. 일명 과부촌입니다.
남편 잃고 아들 잃은 나오미는 이방 땅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며느리 룻만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얼마 후 이방 여인 룻은 이스라엘 사람 보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 여인인 그녀가 바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방인의 피가 예수님에게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혈통은 순수 이스라엘의 혈통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이방인의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 모든 사람들도 구원하시는 만인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인 우리 모두인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고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3. 다윗의 후손 즉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의 고향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장차 메시아가 오면 다윗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계3:7) 거지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18:38)라고 외쳤습니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이므로 나를 치료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고로 마태복음 1장 1절에는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리고 마태복음 1장 17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마태복음은 특별히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도 히브리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는 알파벳마다 개인 숫자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다윗이라는 이름의 알파벳 숫자를 모두 더하면 14가 나옵니다. 즉 유대인들은 14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14는 다윗의 숫자요, 장차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암시가 있는 숫자입니다. 고로 마태는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한대로 다윗의 후손 즉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도록 되어 있기에 예수님은 다윗이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동방박사들이 방문하자 예루살렘은 크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수많은 장소 중에 예수님이 하필베들레헴에 태어나신 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4. 작은 것을 크게 들어 쓰기 위함입니다.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2:6)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합한 것 정도입니다. 차로 하루면 이스라엘을 다 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그 작은 나라에서 100 마을 안에도 안 들어가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당시 인구가 1,000명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마을에서 메시아가 탄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들어 크게 사용하시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이건숙이라는 소설가가 쓴 단편 소설 중 '지푸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5남매를 길러 시집 장가를 보내고 나니 다 늙었습니다. 온 몸에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5년 동안 똥오줌을 받아 내며 뒷바라지 하다 보니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이제는 지푸라기 같은 인생이라고 늘 비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지푸라기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진흙땅에 떨어져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고 있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지푸라기였습니다. 그나마 그 지푸라기는 두 동강이 났습니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두 동강난 지푸라기 한 쪽을 입에 물고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둥지를 만들었습니다. 새들이 행복하게 포근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반 동강 지푸라기는 농부가 주워 가서 새끼를 꼬는 데 넣었습니다.
그 지푸라기로 꼰 새끼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지푸라기라도 제대로 쓰이면 쓸모가 있구나!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면 나도 쓸 데가 있겠구나!"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했습니다. 그 할머니의 기도로 목사님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기도로 많은 사람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푸라기 같은 인생도 다 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우리, 보잘 것은 나도 사용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5. 마귀의 목을 꺽고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기 위함입니다.
본문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베들레헴은 유다 땅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12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땅을 분배할 때에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땅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 유다를 향하여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8-10)
즉 예수님은 베들레헴 유다 땅에서 태어나 원수의 목을 잡아야 합니다. 즉 마귀의 모든 권세를 빼앗아 버려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마귀는 여자의 후손인 동정녀 탄생으로 오신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었습니다, 즉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땅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은 뱀이라고 불리는 마귀의 머리를 깨트리신다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홀은 왕의 권세를 상징하는 지휘봉입니다. 그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영원토록 왕으로 우리들을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나셔야 했습니다.
6.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를 향하여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적 표현으로 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밥입니다.
빵이 빵집에서 나오고, 떡이 떡집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떡이신 예수님은 떡집인 베들레헴에서 나와야 합니다. 떡은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먹으므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떡이신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려 죽고 맙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해야 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오신 것은 사망을 생명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이방인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작은 것을 크게 들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원수의 목을 꺾으시고 영원토록 왕으로 통치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아무쪼록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과 더불어 행복을 가꾸어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