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한 집사님에게 한글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집사님, 오늘 예배에 못 나오셨네요.” 그런데 목사님이 타이핑을 하다가 ‘집사님’이란 말을 그만 실수로 ‘잡사님’으로 타이핑을 했습니다. “잡사님, 오늘 예배에 못 나오셨네요.”
이 메시지를 받은 잡사님은 너무 당황이 되고, 큰 시험이 들었습니다. “아니, 주일 예배 한번 빠졌다고 나보고 잡사님이라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렇게 큰 시험에 든 잡사님이 “너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그 목사님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먹사님(×2), 오늘 식사는 잘 하셨어요?”
이 메시지를 받은 먹사님은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평상시에 무엇이든지 잘 드시는 먹사님이셨고, 하도 잘 드셔서 최근에 살이 많이 찌신 뚱뚱한 분이셨는데, 자기의 아픈 상처를 정곡으로 찌르는 칼날처럼 느껴졌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 잡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따지고 싶었습니다.
“야- 이 잡사 놈아, 너 목사님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만약 그랬다면 그 잡사님도 이런 식으로 맞받아치지 않았을까요? “뭐라고- 너가 목사냐? 먹사지? 야- 이제 그만 먹고 살이나 좀 빼라.” 그런데 한 불신자가 그렇게 먹사님과 잡사님이 한 통화를 우연히 듣고 말합니다. “어이쿠- 잘들 논다. 먹사와 잡사- 환상의 콤비! 먹사님, 이겨라, 잡사님, 파이팅!”
여러분,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예전에 여러분들 중에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면서 ‘집사님’이라 하지 않고 ‘잡사님’이라고 한 것 진짜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것 아니고요. 타이핑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저도 여러분이 저에게 목사님이라고 하지 않고 먹사님이라고 한 것 다 용서해줄 테니 서로 쌤쌤으로 합시다. 서로 비긴 걸로 하자고요. 아멘입니까? 확실히 아멘이지요? 나중에 딴 말하기 없깁니다.
그리고 혹시 앞으로도 이런 먹사님 잡사님 실수가 나오더라도 우리 서로 너그럽게 용서하고 좋게 해석했으면 좋겠습니다. 즉 누가 나에게 ‘잡사님’이라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래, 나는 잡사다. 교회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여러 가지 잡동사니 궂은일들을 다 처리하는 잡사다.“ 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가 먹사라고 해도 “그래, 나는 먹사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잘 소화하여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밥상을 잘 차려주는 먹사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같이 한번 따라 해봅시다. “먹사님 만세! 잡사님 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즉 누가 나에게 먹사 잡사라고 욕을 하고, 이보다 더 심한 이 새끼 저 새끼, 이놈 저놈, 이년 저년, 열여덟, F-word, 쌍시옷, 각종 요상하고 쇼킹한 욕을 해도 그것으로 인해 상처받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 말고, 열 받지 말고, 시험 들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며 기뻐하라는 겁니다. 왜요? 아-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교회에서 욕을 먹으면 하늘에 상급이 크다는 겁니다.
세상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 “사람은 욕을 먹고 자란다.” 본문의 예수님 말씀처럼 옛날의 많은 선지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욕과 비난을 얻어먹었습니다. 핍박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각종 고문을 당하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 중에 누가 있을까요?
첫째,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하다가 그 메시지가 왕과 백성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욕먹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심지어 우물 속에 던져지기까지 했습니다.
둘째, 엘리야 선지자도 왕과 백성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타락을 질책하며 3년 반 동안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다고 예언하자 왕과 백성들이 재수 없다고,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 왕비는 진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셋째, 미가야 선지자도 전쟁터에 나가려는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당신은 전쟁터에 나가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안 좋은 예언을 하다가 욕을 얻어먹고, 옥에 갇히는 고생을 했습니다.
넷째,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욕을 얻어먹고, 결국 나무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욕을 먹고 고생하고 죽은 선지자들에게 하늘에서 큰 상을 내리셨고, 우리들에게도 주님을 위해 욕을 당하고 고생하면 크게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욕도 먹지 않는다.” 즉 욕을 먹는다는 것은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도 하고, 불편함도 느끼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땅 속에 묻혀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장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욕과 비난을 받지 않고, 고생도 하지 않고, 안락하고 평안하게 지냈지만,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교회에서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갈등도 없고, 아무런 욕도 받지 않으면 그건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30살 전까지 나사렛 고향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한 목수로 지냈을 때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욕과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인생이 순탄했습니다. 도리어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모시고, 동생들을 잘 돌보는 효자 아들이네. 성실한 청년이네.”
그러나 예수님이 30세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나서니까 사람들이 비난과 욕을 했습니다. “저 사람 미쳤다. 잘난 체 한다. 가족은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대기만 한다. 귀신 들렸다. 신성모독자다. 사기꾼이다. 미혹케 하는 자다.” 그리고 결국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질투와 모함을 받아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예수님은 3일 만에 찬란하게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2:8-11)
물론 저나 여러분이나 다들 사람들로부터 칭찬의 말을 듣고 싶고 존경을 받고 싶지, 욕을 먹고 비난을 받기 싫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 마귀의 큰 함정이고, 교활한 미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6: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솔직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봅시다. 내가 완전한사람인가요? No, 아닙니다.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내가 의인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 믿고 의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고로 누구는 나를 칭찬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나를 싫어하고 나를 욕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이건 각자 모두가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욕과 비난을 받으면 때로는 심히 자존심이 상하고, 화도 많이 나겠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 그게 사실인데 뭘?” 하고, 도리어 반성의 기회, 발전의 기회로 삼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욕을 당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권면처럼 괜히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고 하늘의 큰 상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욕먹어도 괜찮아.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자.”
어린이 동화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옛날에 멀리 있는 숲속에 ‘꼬꼬 마을’이라는 이름의 닭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매일매일 많은 닭들이 “꼬꼬댁 꼬꼬댁” 하며 알을 낳고 흑을 파며 놀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새 한 마리가 꼬꼬 마을에 날아왔습니다.
공작새는 반짝이는 초록, 파랑, 보라색의 깃털을 활짝 펴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우와- 정말 예쁘다. 멋있다.” 어린 병아리들은 눈을 반짝이며 엄마 닭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것 좀 봐요. 너무나 예쁘고 멋있어요.” 하지만 엄마 닭들은 그 말을 듣고 시기질투를 했습니다. 엄마 닭들이 모여서 그 공작새를 욕했습니다.
“흥- 재는 왜 저렇게 꾸미기만 해? 어디서 화장발만 잔뜩 받은 애가 와서 왜 잘난 체를 하는 거야? 재는 우리처럼 계란도 못 났겠지. 뭐- 아무 쓸모가 없는 새야.” 그 말을 듣고 공작새는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난 진짜 쓸모없는 새일까? 왜 나는 이렇게 욕을 얻어먹을까?”
그리고 공작새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자기의 깃털 중에 길고 아름다운 깃털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공작새는 닭처럼 깃털 없는 모습이 되었고, 닭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닭들은 또 공작새를 험담했습니다. “재는 계란도 못 낳고, 이제는 춤도 안 추네. 더 이상 예쁘지도 않고... 너는 그저 이상한 닭이야.” 하면서 공작새와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왕따가 된 공작새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난 욕을 먹는 것이 무서워서 내 모습을 버렸지만, 욕을 먹어도 내 모습 그대로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구나.” 그래서 공작새는 다시 깃털을 길렀습니다. 얼마 후 공작새는 다시 예쁜 공작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 숲의 공작새들이 있는 마을로 돌아가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욕을 먹어도 괜찮아.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작새니까.”
여러분, 욕을 먹는다는 것은 내가 특별하고 눈에 띠는 존재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고로 욕을 먹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욕은 상처가 아니라 사명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명 받은 크리스천에게 욕은 필수과목일 수 있습니다. 욕은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욕을 먹는 그 자리를 지나고 통과해야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내가 당했던 그 욕과 비난이 나중에 찬란한 훈장과 명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과 비난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십시오. 그 욕과 비난을 통하여 더욱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그 욕을 통하여 도리어 하늘의 상급을 더 많이 쌓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그리고 남들에게 욕과 비난을 당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성경의 말씀 한 구절을 더 소개하며 오늘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의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즉 나를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같이 욕하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 사람 바르게 되라고 기도해주고 축복을 빌어주십시오. 크리스천은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우리들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들을 기특하게 보시고 축복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욕과 비난을 잘 대처하는 중에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풍성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저희들이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오해 받고, 욕을 먹으며, 힘들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싶었고,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고자 했을 뿐인데, 그것으로 인해 욕과 비난을 받을 때에 많이 힘듭니다. 저희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앞으로 이런 욕과 비난을 당해도 사명 감당하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