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오늘 설교 제목을 보면 ‘전도하자’ 앞에 ‘으샤으샤’가 붙었습니다. ‘으샤으샤’는 어떤 일을 하는데 서로의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쓰이는 의태어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영차영차’입니다. 줄다리기 할 때 보통 많이 사용합니다. ‘으샤으샤’나 ‘영차영차’를 영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됩니까? 'Fighting(홧팅)!'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여기가 캐나다니까 좀 더 영어공부를 해볼까요. ‘힘을 북돋아주다.’ ‘격려하다.’라는 동사는 뭐지요? ‘encourage' 혹은 'empower'라는 말입니다. 여기 캐나다에 살다 보면 철새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들이 하늘을 줄지어 날면서 큰 소리로 꽥꽥- 거리며 날아갑니다. 왜 이런 소리를 낼까요? 찾아보니 서로의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후의 특징이 있습니다. 인생이 심히 피곤해졌다는 것입니다. 인생뿐만 아니라 만물이 모두 피곤해졌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에서 별 탈 없이 행복하게 건강하게 화목하게 잘 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도 서로 사랑하며 서로 위해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단이 이 세상을 지배하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났습니다. 질병이 들어오고, 육적 영적 사망도 왔습니다. 환경도 파괴되고, 인간과 동물의 DNA도 파괴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로를 위해주는 친구가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고 죽여야 하는 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같이 어울려 행복하게 지내야 하는데 이상하게 같이 지내다 보면 싸움이 나고, 갈등이 생기고 아- 자꾸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요즘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결혼해서 배우자랑 사는 것이 무섭습니다. 불안합니다. 그래서 “에이- 그냥 혼자 살자.“ 하는 독신자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해도 자기 가족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혼자 살다 보니 좀 외롭습니다. 그래서 자기 말 잘 듣는 강아지 한 마리 키웁니다. 앉아, 일어서, 기다려, 손, 발... 아- 고놈 참! 말 잘 듣습니다. 데리고 살만 합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다 죽었다면 인류는 벌써 오래 전에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심어놓은 자연 치유 능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렵고 힘든 시기를 극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인생사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지치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우리 교회의 부흥을 이루기 위해 전도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지난 주일에는 전도하기 위한 결단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는 사도 바울처럼 우리들도 전도에 같이 미쳐보자는 다짐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단도 하고, 다짐도 하고, 실천도 하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평생 전도에 미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즉 keep on running 해야 하는데 자꾸 중단하는 겁니다. 포기하는 겁니다. 왜 그럽니까? 힘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좋은 열매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낙심과 절망을 극복하고, 계속 줄기차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에너지를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받는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고로 전도를 계속 줄기차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격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정했습니다. “으샤으샤- 전도하자!“
사도 바울이 은혜를 받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이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그는 안달이 났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적 선물이며, 이 선물은 우리를 강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전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극렬하게 방해합니다.
최근 저는 희한한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45년 만에 이빨 크라운이 빠졌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한다고 하는 영등포 윤치과라는 의사 분이 해준 이빨입니다. 참 오래도 갔습니다. 근데 그게 최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안경 줄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차 키를 잃어버려 새벽예배를 못 왔습니다. 더구나 원주민 선교시 스피드 티켓을 띠었는데 세상에- 746불이 나왔습니다. 이런 일들이 최근에 모두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요? 저는 압니다. 아하- 마귀 녀석이 내가 전도운동을 하고, 원주민 선교를 하려니까 화딱지가 나서 방해를 하는구나! 요동을 치는구나!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극렬하게 방해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아직까지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꺼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도 머뭇거리는 시기에 새로 전도를 해서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온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여기는 캐나다 땅입니다.
그러나 한번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전도해야할 때입니다. 모두가 힘들어 하고 어려워할 때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복음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길 것입니다. 고로 지금이 복음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며 전도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애타게 만나 보려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게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롬1:11, 공동번역) 맞습니다. 성도님들은 서로 힘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 전도의 힘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 불길이 약해지지 않도록 같이 으샤으샤 해야 합니다.
거의 모든 단체운동에는 팀워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팀워크를 바탕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끈질기게 그 일을 할 수 있느냐가 그 일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전도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워크를 이뤄야 합니다. 전도할 사람, 전도된 사람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어야 하고, 그들을 친절히 돌봐줘야 합니다.
혼자서는 전도운동의 불길이 꺼지기 쉽습니다. 더구나 최근엔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가 2년간 전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회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COVID-19에서 벗어나 다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 동안 밀린 전도의 숙제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저에게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 이미 많은 분들이 전도를 해보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전도의 과일을 갖다 줄꼬? 이번 주에는 누구를 교회에 데리고 올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캐나다 땅입니다. 전도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기가 북한이나 중국보다는 전도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보다는 전도하기가 훨씬 안전합니다. 그리고 전도는 우리가 목숨 걸고 할 만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하늘 영광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친히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도 바로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막16:15)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라는 것입니다.(마28:19)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 성령님을 보내신 이유도 우리가 그 분으로부터 힘을 얻어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내가 남에게 전도를 받든지, 내가 남을 전도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즉 전도 받은 사람은 또 남을 전도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의무이고, 숙제이고,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안 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주여, 이 땅에서 전도를 못하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전도를 못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천국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저는 참 다급합니다. 은퇴의 시기는 가까이 다가오는데, 세월은 빨리 지나가는데 성전의 자리가 아직 많이 비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보면 민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자존심도 매우 상합니다.
얼마 전에는 “야- 이 나쁜 COVID-19 녀석아! 너 때문에 전도를 제대로 못하잖아! 너 때문에 성도님들이 많이 떨어졌잖아!”라고 COVID-19을 욕했는데, 요즘은 “야- 김원효 이 못난 녀석아! 왜 만날 남 핑계만 대냐? 왜 COVID-19을 욕 하냐고?”라는 자성과 함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은퇴하기까지 죽도록 전도를 해보자.”라는 각오와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혼자 전도를 해서 이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빈자리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같이 전도하자는 겁니다. 혼자 전도의 숙제를 하기에 너무 벅차니 같이 숙제를 하자는 겁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아- 교회에 왔더니 피곤한 심령 위로는 안 해주고 만날 전도만 하라고 하네. 여기 캐나다에 내가 전도할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물론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 외국 땅에서도 전도하려고 애쓰는 그 기특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둘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전도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힘을 공급하기 원합니다. 최일선에서 전투하는 그들에게 각종 필요한 것을 가장 먼저 보급해주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각종 위험에서 건져주십니다. 오늘의 본문에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에 입각해서 우리도 전도를 해봅시다. 전도는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죽을 때까지 힘써야 할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최후까지 한 사람이라도 전도를 하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주여, 이 일을 하다가 힘이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계속 힘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으샤으샤- 전도하자.’고 계속 힘을 북돋아 주시옵소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눈물로 간절히 호소합니다. 성전의 자리가 아직도 많이 비었습니다. 보기가 민망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게을렀고 나태했습니다. 이제 전도의 사명을 깨닫고 또 다시 힘을 내서 전도하려고 합니다. 주여- 힘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와 더불어 “으샤으샤- 전도하자.”고 계속 격려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