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네가 믿느냐?

날짜: 
2007/04/08
설교: 

요11:25-26 이것을 네가 믿느냐?
1990년대 말 4월경에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의 내부가 누전으로 인해 완전히 불에 타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화재 장면을 TV로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감동을 받았느냐고요? 그것은 소방대원들이 목숨 걸고 화재현장에 뛰어 들어간 영웅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 위험한 불길 속에서 소방대원들이 가지고 나온 조그마한 한 상자 때문이었습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불에 휩싸인 성당 안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 안에 있는 3중으로 된 방탄유리를 도끼로 찍어 깨뜨린 뒤, 조그맣게 생긴 한 상자를 안고 나왔습니다. 소방대원들은 토리노 대성당 안에는 수많은 명화와 조각품과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값비싼 보물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직 이 상자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자에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거기에는 폭 1미터 5센티미터에, 길이 4미터 20센티의 삼베로 만들어진 한 천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000여 년 전 예수님의 시체를 쌓던 것으로 알려진 세마포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셨을 때, 니고데모라는 한 관원이 향품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감싸 드렸던 수의였습니다. 이 수의가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큰 화재가운데에서도 타지 않고 안전한 장소에 이르렀다는 뉴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이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그리고 다른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시신이 들어있는 무덤에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명절을 지키겠다고 예수님의 장례를 급하게 서두름으로 혹시라도 시신에 향품이 덜 발라졌을까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무덤을 육중하게 막고 있어야 할 돌문이 옮겨져 있어서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정작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며 근심하고 있는데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
천사의 이 말을 듣고 여인들은 황급히 달려가 열 한 사도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단숨에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인들이 말한 대로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여기저기 나동 그려져 있지 않고 가지런히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죽은 지 사흘 후에 다시 자신이 살아날 것을 예언했기에, 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절해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할까봐 심히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움쳐가지 못하도록 24시간 로마 병사를 두어 무덤 주위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는 육중한 돌문으로 막아놓았고 거기에다 인봉까지 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져버렸고,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내팽개쳐 있지 않고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신이 결코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둑이 들었던 집은 대부분 난장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도둑은 짧은 시간 안에 도둑질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귀중한 것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인 것을 다시 정리 정돈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하러 무덤에 갔다면 시간적인 여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무덤밖에는 서슬이 퍼런 로마 병사들이 24시간 동안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는데, 무슨 여유가 있다고 시신을 싸고 있던 세마포를 시신으로부터 벗겨내서, 그것을 가지런히 정리 정돈해놓겠습니까? 혹시 시신이 예수님의 시신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수건과 세마포를 풀었다 할지라도, 잘 정리 정돈 해놓고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수건이 잘 정리 정돈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증거가 됩니다. 이 수의가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더 많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확실한 부활의 증거는 바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빈 무덤에 나타난 천사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부활의 증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거는 어찌 보면 남의 이야기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바로 현재 오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9-20)
여러분, 주님이 성령으로 친히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주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신데 어찌 내가 주님의 부활을 의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이 날마다 나와 같이 먹고 마시고 동행하시고 있는데 어찌 주님이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이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성령으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동행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까요? 부활은 단순히 죽기 전에 가졌던 몸이 그대로 다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가장 건강하고, 가장 아름다울 때 죽는 게 낫겠지요. 그리고 혹시 자신의 몸에 심한 병이나 장애 등이 있거나 노쇠한 채 죽는다면 오히려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의 부활은 그러한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은 지금 이 몸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최고의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부활의 몸은
1) 썩지 않는 몸 : 현재 우리들의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름다울지라도 결국 노쇠하고, 병들고, 죽고, 썩게 되고 맙니다. 아무리 성형수술로 얼굴을 뜯어고치고, 레이저 치료로 기미를 제거하고, 보톡스 주사로 주름살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늙고 죽고 썩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노쇠하거나 병들지 않고, 죽거나 썩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완전한 치유요, 완전한 구원이라고 말을 합니다.
2) 영광스러운 몸 : 우리가 한 평생 살다 보면 우리의 몸은 상처도 입고, 일그러지고 맙니다. 수술 자국도 생기고... 그래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처 난 몸이 부끄러워 대중목욕탕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활의 몸은 장차 누구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는 ‘몸짱’ ‘얼짱’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몸매가 아주 좋고, 얼굴이 아주 잘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최고의 몸짱 얼짱이라도 장차 우리가 입을 부활의 영광의 몸에 비하면 세발의 피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부활의 몸은 육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격의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영화롭고 찬란하고 완벽한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정욕과 죄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죄와 상관이 없는 영화로운 몸이기 때문입니다.
3) 신령한 몸 : 지금 우리의 몸은 육의 몸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는 추위와 더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5분도 지탱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문을 꼭 잠그고 있었는데도 예수님은 그들의 방에 들어오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훨씬 신속하게 갈릴리 바닷가로 가셨지 않았습니까? 우리 몸도 바로 그렇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4) 서로 알아 볼 수 있는 몸 : 너무 좋게 변화된다고 하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니, 그렇게 되면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걱정하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변해도 인격적인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또 그때는 지금보다 아이큐가 훨씬 더 좋아지기 때문에 거뜬히 서로를 알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수십 년 만에 친구나 친척을 만나면 육체가 너무 변하여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50년이 넘어서 한국의 남북이산가족이 상봉을 할 때 보면 “애, 네가 진짜 아무개냐?” 하고 잘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추억과 서로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하므로 “아하, 맞구나!” 하면서 서로를 확인합니다.
더구나 성형수술을 많이 하신 분들은 ‘내가 천국에 갈 때 혹시 하나님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염려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런 염려는 안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형수술을 한들, 혹 우리가 아무리 부활의 몸으로 변한들 그날에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지성을 갖춘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그날에는 우리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도, 아브라함도, 바울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혹시 이런 염려를 하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나는 옛날에 술집에서 술값 떼어먹고 나온 적도 있고, 사기치고 못된 일을 한 적도 많이 있는데, 상처입고 손해당한 그 사람이 천국에서 나를 알아보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서로를 모르면 더 편한데...”
그러나 이 염려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지은 모든 죄악과 허물을 하나님이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부활의 몸은 죄와 상관이 없는 영화로운 몸이기에 비록 서로를 알아보아도 이미 우리의 모습은 죄악과 허물과 부끄러운 모습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아무리 이 땅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할지라도 그곳에서는 만나서 서로 기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몸을 입고 산다는 것이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이성으로는 이러한 부활의 몸을 입는다는 것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장차 예수님의 재림시에 이러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가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재림도 함께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우리의 구세주 되신 것도 믿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진리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인간적이 되고 맙니다. 단지 종교가로서의 예수님, 단지 윤리적 선생님으로서의 예수님, 단지 사회사업가로서의 예수님만 믿게 되는 위험에 빠지고 맙니다.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여러분, 예수님의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멘! 믿습니다.“라는 대답이 저와 여러분들의 확실하고 분명한 대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계신 예수님이기에 그 분은 우리를 도울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기에 그 분은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고,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단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이 아닙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입니다. 이 부활절 아침에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묻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당신은 또한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를 치료하시고, 그 분이 살아계셔서 나의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캐나다 땅에서 살아가는데 나를 도와줄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부활의 능력을 믿으면 이미 당신은 큰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믿는 당신의 믿음을 기쁘게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오늘 부활의 신앙을 가지신 여러분들에게 살아계신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도 함께 나타나서 기쁨이 더욱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복과 축복이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신앙으로 이 외국 땅에서 계속 희망 가운데 거하시며, 부활의 희망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