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생각하며

날짜: 
2025/09/27
말씀: 
요16:5-7
말씀구절: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설교: 

여러분, 혹시 연애하면서 그동안 사랑했던 연인에게 이런 말을 해보신 적이 있거나,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이 말을 듣고 혹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은 안계신가요? “목사님, 저는 아직까지 연애를 제대로 못해봐서 그런지,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고, 연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사님 솔직히 말해서 그건 한마디로 ‘개소리’ 아닙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혹시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목사님, 저는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아-그래요. 젊었을 때 연애 좀 해봤나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 헤어지자.” 아마 둘로 나눠질 겁니다. 먼저

* 부정적 시각입니다. : ① 이 말은 책임회피적인 말장난에 불가하다. 실제로는 자기 욕심이나 상황 때문에 헤어지면서, 미화된 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 말은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위선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② 이 말은 사랑의 본질과 모순이 된다. 성경적 사랑인 아가페 사랑은 오래 참고 변함없이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전13:7) 진짜 사랑이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과 헌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 현실적인 이유를 상대방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그럴듯한 말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불성실한 태도이다. 반면 이 말에 :

* 긍정적 시각입니다. : 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다. 내가 곁에 있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하거나 막는다면, 그 사람의 더 큰 행복과 성장을 위해 떠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② 이 말은 상대방의 상처를 덜어주려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서로간의 관계가 계속되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고통을 줄이려는 결단으로서의 이별이다.

③ 이 말은 사랑의 성숙한 표현이다. 미성숙은 집착하고 붙잡지만, 성숙한 사랑은 때로는 내려놓는 것이다. 소유가 아니라 배려로서의 이별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예화들입니다.

* 나무와 새의 이별 : 한 나무 위에 작은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새를 좋아해서 매일 그늘을 내어주고 열매도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는 더 넓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려고 했습니다. 나무는 새에게 “내 가지에 평생 머물러 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새의 날개를 꺾는 일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났지만 나무는 새를 떠나보냈습니다. 나무는 비록 이별했지만,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습니다.

* 부모와 자녀 독립 : 부모는 자녀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자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자녀가 새로운 길을 가려 할 때 부모는 자녀를 붙잡는 대신 떠나보냅니다. 이때 부모의 이별은 버림이 아니라, 더 크게 자라도록 돕는 사랑입니다.

* 선교사의 고백 : 어떤 젊은 부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아프리카 선교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한다면 떠나지 말라, 아프리카 선교는 너무나 위험하다.”고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기에 떠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별은 아프지만 더 큰 사랑을 선택했기에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때요? 여러분, 이 예화들을 들으니까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라는 말이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편 상대방이 이별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이별을 선언하면 그건 너무나 황당하고 잔인하게 들릴 수 있고, 큰 상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해도 나중에 이 사람과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그 충격을 줄일 수 있고, 좀 더 지혜롭게 대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도로 제가 이 자리를 빌려 아직 미혼이신 청년 분들에게 연애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다. ① 이별을 염두에 두고 연애를 하십시오. 이 말을 들으면 “아- 목사님이 재수 없는 소리, 부정적인 소리, 재 뿌리는 소리한다.”고 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른들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까지는 누가 짝이 될지 몰라.” 그렇습니다. 열렬히 사랑을 하는 동안은 지금 이 사람이 나의 장래의 배우자라고,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을 하지만... 글쎄요. 저도 겪어보고 살아 보니 그게 변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후로도 그런 일들이 몇 번 더 지나갑니다. 고로 결혼식장에 들어가기까지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과도 언젠가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지혜롭게 연애하십시오. 즉 너무 진도를 많이 나가지 마십시오. 나중에 상처가 되고 크게 후회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말에 이렇게 토를 다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그렇게 진도를 많이 나갈만한 상대도 아직 없습니다. 고로 지금 목사님의 말씀은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겁니다.” 아이고- 그렇군요. 제가 미안합니다. 그런 말 못할 사연이 있었군요.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여, 진도를 나갈 수 있는 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② 교회 내에서 연애를 할 때에는 서로 간에 믿음을 세워주는 모습으로 하십시오. 연애한다고 둘이 놀러가느라고 예배에 빠지면 옆에서 마귀가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칭찬합니다. 더 나아가 혹시 헤어지더라도 교회를 떠나거나 믿음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목사님은 연애하는 청년들이 있으면 옆에서 지켜보면서 항상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 둘이 연애하다가 시험 들어 교회에 못나오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③ 타인을 배려하십시오. 보통 사랑에 눈이 멀면 주위가 안보입니다. 특히 서양 문화권에서는 그런 사랑의 행위가 동양보다 더욱 담대합니다. 그러다보니 둘만의 뜨거운 사랑과 신체접촉이 옆에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과하면 별로 안 좋게 소문납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여자가 좀 더 조신하고 비싸게 굴어야 합니다. 괜히 사랑에 눈이 멀어 싼티 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놓아야 할 사랑과 붙잡아야 할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먼저 놓아야할 사랑입니다. : 이기적인 사랑, 집착, 소유욕, 억압하고 이용하려는 자세, 사랑을 가장한 음행과 불륜, 상대방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 서로 간에 상처만 주는 관계 : 이렇게 사랑이 아닌 것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하고, 혹 진도를 나갔다면 신속히 정리해야 합니다.

다음은 붙잡아야할 사랑입니다. : 하나님과의 사랑, 정당하고 건강한 인간관계 속의 사랑(배우자 사랑, 교인 간의 사랑, 이웃과 친구 간의 사랑, 원주민 사랑,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서로를 세워주고 믿음과 진리를 향해 나누는 사랑, 하나님 보시기에 떳떳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다음은 이별의 이유들입니다. : ① 자연적 이별 : 죽음으로서의 다가오는 필연적 이별입니다. ② 환경적 이별 :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생기는 이별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이민, 유학, 전쟁, 직장 이동으로 발생되는 이별입니다. ③ 관계적 이별 : 마음이 멀어져서, 배신으로, 사랑이 식어져서 겪는 이별입니다.

④ 영적 이별 :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너무 이별의 기간이 길어져 이젠 하나님이 누군지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 받으면,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다시 재회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감정이 격해져 큰 통곡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모든 사람들은 필연적인 이별을 해야 합니다. 바로 죽음을 통한 이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특히 가족의 죽음을 통해 이별을 할 때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힘듭니다. 부모님의 죽음도 그렇고, 배우자의 죽음도 그렇고, 자녀의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가 솔직히 더 마음이 아프고 슬프던데,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요? 대부분의 분들이 저와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이건 무슨 이유이지요? 한 마디로 하면 ‘애착의 뿌리’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

① 아이는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접촉하는 존재가 어머니입니다. ② 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모유, 수유, 품안에서의 돌봄, 눈 맞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에 대한 애착으로 형성됩니다. ③ 어머니는 단순한 가족 관계가 아니라, 아이에게 존재의 근원적 안정감을 주는 관계입니다. 고로 어머니의 죽음은 내 뿌리가 뽑히는 것 같은 상실감으로 다가옵니다.

* 정서적 친밀감 : 아버지와는 대화가 적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맺는 문화적 배경이 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밥상, 일상 대화, 건강 돌봄, 작은 배려 등으로 늘 가까이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 성경적 관점 : 성경은 어머니의 위로와 사랑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이사야서 66:13 말씀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하나님의 위로를 설명할 때에도 성경은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어머니의 사랑이 크기에 어머니의 죽음은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죽음은 사회적 보호자로서 의지하던 큰 기둥이 무너지는 외적 충격이라면, 어머니의 죽음은 마음의 안식처, 마지막 위로처가 사라지는 내적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그 반대로 아버지의 죽음이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관계의 깊이와, 가정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만약 어머니가 바람이 나서 아버지와 자녀들을 버리고 가출하는 경우는 완전히 다르겠지요. 그런 경우는 아버지가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도 해줘야 하고...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아주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 구약 성경의 어느 책이지요? 예- 호세아서입니다. 하여간 성경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죽으면 어떤가요? 당연히 슬프겠지요? 아-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예외는 좀 있을 겁니다. 좀이 아니라 많이 있나요? 그런데 이에 대한 조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즉 가족이 죽을 때, 그 슬픔의 척도를 퍼센트로 표시한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실의 깊이’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절대적이 아니고 대략적이고 평균적입니다.

① 아버지의 죽음 : 50-60% ② 어머니의 죽음 : 60-70% ③ 배우자의 죽음 : 80-90% : ‘한 몸’이었던 존재가 떠나는 것은 정체성의 절반을 잃는 고통입니다. 특히 노년기에 배우자를 잃는 경우 우울증, 건강 악화, 고독감이 크게 증가합니다. ④ 자녀의 죽음 : 100% : 가장 큰 슬픔입니다.

자녀가 부모보다 일찍 죽어서 그 부모가 자녀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가 거꾸로 되는 것이며, 심리학자들은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트라우마로 꼽습니다. 그리고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불효자는 부모보다 일찍 죽는 것이다.”

제가 오늘의 주제를 연구하면서 이별에 대한 명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명언 하나가 있어 소개합니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이다.”-세네카. 오늘의 본문에 예수님도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제자들에게 이런 비슷한 이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 또 다른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아니, 언제는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시고, 오늘의 본문은 왜 떠나간다고 말씀합니까? 왜 그러지요?

여러분들 중에 이 차이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성경의 아주 중요한 핵심 진리를 아시는 분인데... 이거 너무 궁금해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차이를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자- 이제 제가 그 차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간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근심이 가득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근심에 찬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실상을 말해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요16:7) 즉 예수님이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인간과 함께 사시는 것보다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더 좋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우리 각자에게 들어와 동고동락하며, 7 days a week, 24 hours a day, 늘 함께 사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별은 더 좋은 시작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들의 사랑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이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8:38-39 말씀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즉 인간은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이별을 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른 슬픔이 다가오지만, 예수님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사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이별의 슬픔 속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 속에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과 늘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슬픔이 도리어 큰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이별의 아픔도 있지만, 그 이별을 통하여 더 나은 미래와 소망이 있음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늘 위로해 주시고, 더 큰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