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3:8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
전도서 3장 1-8절까지에 보면 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고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3:1-3)
이렇게 때에 대하여 쭉 말씀하다가 오늘의 본문 8절 후반 절에 보면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할 때가 언제고 평화할 때가 언제일까요 ? 오늘 이에 대하여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평화할 때가 있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감을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의 때가 계속 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전쟁보다 평화를 좋아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계속되기를 원하고, 사회도 교회도 가정도 전쟁과 불화와 다툼이 일어나기보다는 화목과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 올 때에는 부부간에, 이웃 간에, 친구간에 서로 싸우고 다투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외국 땅에서 살다보면 한인들끼리, 더 나아가 교인들끼리, 그것도 같은 교회 교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다툰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요 슬픔입니다. 더구나 그 싸움이 그저 잠깐 다투다가 마는 조그만 분쟁일 것 같으면 "사람 사는 세상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의 극단적인 싸움 즉 전쟁의 양상으로 치달을 때, 그것도 그 전쟁이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될 때 사람들은 누구나 "아, 전쟁은 싫다 ! 빨리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 하고 평화를 갈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툼과 전쟁을 바라보지 않고 화목과 평화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5:9) 즉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보다 더 우월해지려고 남을 깔아뭉개는 언어와 태도를 하고, 그로 인해 다툼과 불화를 일으키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리어 내가 낮아질지언정, 내가 바보처럼 보일지언정, 내가 손해를 볼지언정 화목과 화평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화평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좋은 교회,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평화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인사합시다) "당신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평화를 갈망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를 보면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와 이 자리의 대부분의 분들이 6.25라는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한결같이 말을 합니다. 그만큼 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케 하고 큰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 줍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날카로운 칼이 내 눈을 푹 찔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더구나 그 날카로운 창이 내 사랑하는 자녀의 입을 푹 찔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나고, 통곡소리가 들리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몸을 데굴데굴 구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시체가 그냥 내 팽개쳐져서 그 온몸에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그 옆에서 한 어린 자녀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엄마 !' 하고 우는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그러한 전쟁의 참상을 보면 "아- 안돼 ! 전쟁만은 일어나서는 안돼 !" 하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나 온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군대를 조직하고 있고, 각종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도 캐나다도 군대가 있고 그 에 따른 무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가 자신들의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만드는 것을 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평화를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심지어 북한도 핵무기를 제조하면서 조국과 인민의 평화를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의 의도와는 달리 주위환경이 변하면 그들의 군대와 무기는 여지없이 전쟁의 도구로 쓰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차라리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군대를 조직하지 않고 무기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만들어 놓은 무기들은 모두 다 폐기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이 현실로 다가올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장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직접 통치하시는 천년 왕국시대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마24:7) 전쟁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혹독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고 납득이 안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마태복음 10장 34-35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말씀은 마귀가 한 것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어 서로 싸우게 하러 왔다니 이런 끔찍한 말씀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은 다툼과 전쟁을 일으키시는 나쁜 분이구나 !" 하고 자칫 큰 시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단과 불의의 세력 앞에 무릎을 꿇거나 그들과 공존의 관계를 모색하면서 적당히 이익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죄악과 불의와 거짓의 세력에 지거나 따라가지 말고 그들을 대적하여 싸워 이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싸운다는 뜻은 폭력과 권모술수를 쓰라는 것이 아니요 진리와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6.25 전쟁 때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한을 쳐들어 올 때 남한의 군인들은 비록 무기가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지만 맨 주먹 불끈 쥐고 그들과 대적하여 피흘려 싸웠습니다. 그렇게 이름도 없이 싸우다가 죽어간 군인들을 향하여 우리는 "너 왜 싸웠니 ? 평화를 사랑해야지 ?"라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말을 했다간 죽은 군인들의 시체가 일어나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내가 싸운 것은 너와 너의 부모를 지키기 위하여 싸웠노라.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싸웠노라." 만약 그들이 공산주의와 피흘려 싸워주지 않았다면 북한과 마찬가지로 남한도 교회가 무너지고, 자유가 억압받고, 진리가 사라지고, 김일성 김정일 우상이 들어차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비 진리와 싸웠기 때문에 중세기 흑암의 장막을 걷어치우고 생명의 종교 기독교 즉 개신교가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 그래서 개신교를 영어로 'Protestant'라고 합니다. 그 뜻은 '저항한다. 대항한다. 싸운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는 사단과 싸우고 비 진리와 싸우고 불의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마틴 루터가 생명 걸고 싸우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개신교는 탄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평화의 왕'을 의미합니다. 그의 통치 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평화가 크게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의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다윗 왕은 전쟁을 하는 군인이었습니다. 즉 군인인 다윗이 생명 걸고 적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 평화가 도래한 것입니다.
여러분, 물어보고 싶습니다. 만약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또 다시 남한을 침략해오면 여러분은 싸우겠습니까 ? 아니면 무섭다고 혹은 평화를 사랑한다고 그냥 슬그머니 도망가겠습니까 ? 이때에는 목숨 걸고 싸울 때가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칼로 여러분 자녀들의 목을 자르려고 한다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때가 아닙니까 ?
물론 우리는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합니다. 교인과 교인인 서로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방도 튼튼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므로 전쟁을 사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찌하든지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전쟁할 때와 평화할 때
날짜:
200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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