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 ‘죄와 벌’ 하면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습니까? 좀 배우신 분들은 “아하, 그 사람? 도스토예프스키!” 하고 금방 떠오를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유명한 소설인 ‘죄와 벌’을 쓴 러시아 작가입니다. 그는 반정부적인 선전용 비밀 인쇄소를 차리는데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그리고 정부에 의해 출판금지가 되었던 책을 한 모임에서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포함해 2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8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난 후 드디어 연병장으로 끌려가 사형집행이 이루어질 순간에 기적적으로 황제의 사면령이 내려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간의 징역과 시베리아 군부대에서 또 다시 4년간의 강제 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죄수들에게 그의 아내들이 성경책을 선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에게 공식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책이 바로 성경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아내 안나로부터 성경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책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책을 소중히 간직하다가 죽음 직전에 아내인 안나에게 한 구절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구절이 무엇일까요? 제가 궁금해서 그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이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3장 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구절의 말씀은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와서 예수님을 알리는 사명을 맡았던 세례 요한의 첫 마디 외침입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그 죄를 회개하면 용서받고 천국이 주어지지만,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벌이 주어져 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군중들에게 외치신 첫 마디가 바로 이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셨습니까? 그리고 요즘도 계속 회개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죄 용서함을 받고 천국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지으면 벌이 주어집니다. 지옥에 갑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죄와 벌, 의와 상’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원죄’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태어납니다. 이 원죄는 안타깝게도 100% 유전이 되는 병입니다. 그리고 원죄는 사형죄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형날짜를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더구나 인간은 원죄뿐만 아니라 살면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일컬어 ‘자범죄’라고 합니다.
그 원죄와 자범죄가 인류를 힘들게 합니다. 즉 죄 때문에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듭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죄의 형벌에서 스스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죄의 늪에서 건져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나를 건져줄 완전한 의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19)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아- 이거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누가 나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부모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부모 역시 똑같은 죄를 짓고 똑같이 사형을 당해야 할 죄인의 처지입니다. 의인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어야 효과가 있지, 죄인이 죄인을 위해 죽어봤자 그 효과가 전혀 인정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는 일단 원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원죄의 씨가 없이, 즉 남녀 간의 관계로 인한 자연 출생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즉 자범죄도 없습니다. 그러한 의인이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고로 그의 죽음은 효과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으면 수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은혜를 계속 받게 됩니다.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가지 않고, 상급의 장소인 천국에 가게 됩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완전히 인생 역전을 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날마다 기뻐할 제목이 있습니다. 순간순간마다 할렐루야를 외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수많은 짐승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죽어갔습니다. 피를 흘렸습니다. 왜 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합니까?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죽은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지으니까, 그때마다 짐승들이 그 죄를 대신 지고 죽으니까, 그렇게 많은 짐승들이 죽은 겁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요즘은 어떨까요? 요즘은 왜 짐승들이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죽지 않습니까? 다름 아닌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모두 지고 한 번에 영원한 희생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기에 그 죄의 형벌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습니다.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저주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지옥이 우리를 집어삼킬 수가 없습니다. 아- 참 감사합니다. 이거 참 좋습니다. 아- 이 좋은 예수님을 왜 안 믿습니까? 야- 너도 좀 예수님 믿어라. 너도 구원받아라. 예수-♫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어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로 이제는 죄 용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형벌을 면했을 뿐만 아니라, 상급을 쌓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상급을 쌓을까요? 바로 의로운 행실입니다. 신앙세계에서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축복은 행함으로”
그렇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천국이 확보되었다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믿는 자로서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야 합니다. 썩지 않는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더 많이 칭찬받고 더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직장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착한 일을 하십시오. 학생들이여, 선생들이여, 학교에서 남을 괴롭히지 말고, 힘써 착한 일을 하십시오. 가정에서도 착한 남편, 착한 아내, 착한 자녀, 착한 부모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늘나라 지점인 교회에서도 착한 성도가 되십시오. 더욱 착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그래서 더 많은 축복을 받고, 더 좋은 상급을 받으십시오.
성경은 악인은 결국 망하고, 의인은 결국 흥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입니다. 즉 예수님 믿고 착하게 살면 결국 흥하고, 예수님 믿지 못하고 악하게 살면 결국 망합니다.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세상이 갈수록 힘들어집니까? 그 이유는 착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 못된 사람이 더 많아져서 그런 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4:1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12:47-48)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이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축복과 더 많은 상급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8)
즉 인간의 힘으로는 착하게 살기가 힘듭니다. 결국 내 안에 착하신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그 분의 능력으로 착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으로 거듭나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착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착해질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죄에는 형벌이 따릅니다. 반면 의에는 축복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의 결단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필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 날의 큰 축복과 상급의 자리에 저와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나는 반드시 기필코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