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싸우되

날짜: 
2005/02/21
설교: 

히12:4 죄와 싸우되
여러분, 혹시 이런 꿈을 꾸신 적이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 머리를 빡빡 깍은 모습의 꿈입니다. 혹은 자신의 머리털이 빠지거나 머리털이 상하는 꿈입니다. 이런 꿈을 성경적으로 해석을 하면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사기 16장에 보면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들릴라가 삼손의 머리털을 모두 밀어머리니까 삼손이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즉 성경적으로 해석할 때 머리털은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고로 꿈에 머리털이 빠졌거나 잘렸으면 그것은 힘을 잃어버리는 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30에 보면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21:18에 보면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21:5에도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털이 빠지거나 잘리거나 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나이가 먹으면 머리털이 희어지고, 힘이 없어지고, 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머리털이 빠지고 대머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말고 머리털이 상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제가 알기에는 말라리아나 열병에 걸리면 머리털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머리채를 휘어잡고 죽자살자 하고 싸우면 머리털이 상당히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삼손의 경우에는 머리털이 빠진 이유가 좀 특이합니다. 들릴라라는 기생이 이발소 영업허가도 받지 않고, 또한 손님인 삼손의 의도도 물어보지 않고, 삼손이 잠을 자는 중에 면도칼로 그냥 머리털을 몽땅 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들릴라가 외칩니다.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삼손은 깨어나서 전과 같이 힘을 쓰려고 해보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신은 자신을 떠나므로 도저히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삼손은 두 눈이 뽑히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며, 조롱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삼손이라도 머리털이 밀리고 나니까, 즉 하나님의 신이 떠나니까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이런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머리털이 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 하나님의 신이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 즉 들릴라라는 불법 이발소, 퇴폐 이발소에 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라가 있는 기생집에 머물러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릴라의 꾀임에 헤롱헤롱 되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들릴라라는 기생과는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아무리 들릴라가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잘해줘도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과 들릴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들릴라를 친구로 삼았습니다. 애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예를 들면 마귀와 친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비밀을 털어놓자, 마귀는 그것을 이용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인 머리털을 밀고 만 것입니다. 삼손이 머리털이 밀리고, 두 눈이 뽑힌 후에 분명히 그는 크게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아- 내가 기생 들릴라의 집에 들락거리는 것이 아닌데 !"
여러분, 기생 들릴라는 성경적으로 죄의 유혹을 가리킵니다. 삼손은 결혼에 실패한 후,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죽게 된 후에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고독이 찾아왔습니다. 더구나 블레셋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기생 들릴라의 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음행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죄에 빠지게 되니 삼손은 머리털이 밀리었고, 하나님이
주신 힘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다름 아닌 크리스천이 죄에 빠지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삼손이 들릴라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기도생활을 제대로 했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은 삼손의 시대보다 더욱 음란한 시대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건전한 남녀교제가 아닌, 음란한 연애를 잘하면 상당히 유능하고 인기가 좋은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더구나 부모가 같이 살지 않은 외국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젊은이들이 타락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그러한 죄에 물들면 당신은 힘은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신은 떠나고 맙니다. 삼손이 조롱을 당한 것처럼 당신도 조롱을 당할 소지가 있습니다.
물론 외국 생활이 고독하고 쓸쓸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을 술이나 방탕함으로 풀면 안됩니다. 죄의 들릴라와 더불어 친구와 애인을 삼고 그녀와 같이 지내면 안됩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들릴라와 삼손은 단호히 헤어져야 합니다.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삼손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힘을 잃고 맙니다. 눈이 뽑히고 맙니다. 하나님이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죄악의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들릴라가 주는 거짓된 위로와 거짓된 행복이 꼭 진짜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음성보다도 들릴라의 음성이 더 좋아 그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면 일부러 모른 체 하거나 귀를 막을 위험이 있습니다. 즉 죄와 친밀한 친구가 되다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형식적이 되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만 마음은 들릴라에게 가있는 이상한 신자가, 위험한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즉 양다리 걸치는 신앙, 부정한 신앙, 마귀와 하나님을 동시에 연애하려고 하는 신앙이 되기가 쉽습니다. 고로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죄와의 관계를 단호히 끊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기독교에서는 '회개'라고 합니다.
즉 죄와의 관계를 끊는 회개가 이루어져야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고 하셨습니다. 즉 회개가 바르게 이루어져야, 다시 말해 죄와의 관계가 먼저 끊어져야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만날 수 있고, 성령도 받고, 은혜와 축복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죄와의 관계를 끊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로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성도가 회개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계속 우리에게 달려들어 속삭입니다. "애야, 내가 너에게 잘해줄 테니 나를 떠나지 말아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애야, 내가 너에게 큰 축복을 줄 테니 단호히 죄를 끊어버려라."
이럴 때 여러분은 누구의 음성을 듣겠습니까? 계속 죄를 지으라고 하는 마귀의 음성입니까? 아니면 단호히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물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싸움이 치열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두 자아가 있어 육신의 사람은 계속 죄를 좇아가고 싶고, 영의 사람은 죄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좇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죄만 좇아가면 되므로 아무런 갈등이 없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니까 이런 갈등이 생깁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면 이런 갈등은 날마다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위대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9, 22-24)
여러분, 이 세상은 죄와 의의 싸움, 진리와 거짓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지지말고 죄와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
만약 우리가 죄와 싸워 100%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우리는 완전한 의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죄와 싸워 100%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이미 죄의 노예로 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의 노예로 팔리지 않고 태어나신 유일한 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싸울 필요가 없으신 완전한 의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의 싸움을 대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고로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에게 마귀는 더 이상 죄를 가지고 지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죄와 헤어지려고 하면 마귀는 우리가 죄의 노예로 팔렸다고 하는 노예문서를 가지고 우리를 죄로 묶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의 노예에서 해방된 우리에게 마귀는 더 이상 죄의 권세를 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로 우리가 단호히 죄를 대적하면 죄는 패배를 인정하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대적하지 않고, 계속 죄와 더불어 살려고 하면 죄는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이 나랑 친구하고 싶고 애인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지내는데 왜 나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그러면서 우리를 더욱 죄의 품으로 빠지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합니다. 더욱이 말세가 되면 죄의 활동력은 더욱 활발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삼손까지라도 죄로 묶으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에 지면 우리는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두 눈이 뽑히고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씨름은 블레셋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삼손이 아무리 블레셋 군사들을 많이 물리쳐도 죄와의 싸움에서 지니 결국 힘을 잃어버리고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싸움은 죄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 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오늘도 죄와 싸우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승리하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와 계속 친구와 애인으로 지내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잘못을 범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인 원수인 죄를 우리가 가까이 하고 지낸다면 예수님은 얼마나 슬퍼하실 까요? 얼마나 탄식하실 까요?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이미 죄를 이긴 사람들입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그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회개라는 무기 즉, 죄를 끊을 수 있는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끊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천국 갈 때까지 죄와 싸우며 사는 군사들입니다. 내 속에, 내 가정에, 내 교회에, 내 나라에 죄가 들어와 너와 나를 그리고 우리들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에덴 동산에 죄가 들어와 에덴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야합니다. 아무쪼록 죄와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그에 따른 에덴 동산이 회복되며, 하나님이 죄를 이긴 자에게 주시는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