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된 삶의 자세

날짜: 
2006/07/02
설교: 

창13:14-15 축복된 삶의 자세
이 세상에 우연한 축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요행을 바라거나 인간의 되어지는 일들을 그저 ‘운명이거니, 어쩔 수 없거니’ 하며 자포자기적인 삶을 삽니다. 이는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만유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축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1.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부요한 환경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의 생각이 부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성경 잠언서 4:23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망한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고 있으며, 빌립보서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의 보혜사가 되시니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을 때 정탐을 마친 그들의 보고는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렇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1-33)
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듣자 백성들은 엉엉 울면서 “우리가 애급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민14:2-3) 하면서 애급으로 돌아가서 다시 애급 사람들의 노예생활이나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보고를 합니다. “우리가 두루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7-9)
여러분, 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정탐꾼을 죽게 하시고, 그들의 보고를 듣고 원망과 불평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회진시켜 방황하다가 거기서 모두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출애급 2세대와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따르는 성도들을 축복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통하여 축복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뱃세다 광야에서 성회를 베풀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고 백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백성들은 성회를 치르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여 심히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12 제자 중 하나인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아,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그러자 빌립이 이렇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즉 빌립의 대답은 한 마디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가진 빌립을 통해서는 기적과 축복을 베푸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안드레라는 제자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는 비록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밖에 없을지라도 예수님이 그것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실 것을 기대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일 때 우리를 위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축복하십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에서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찬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우리를 축복의 세계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자신이 이끌고 가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꿈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꿈이 인간을 이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역사하실 때 꿈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요엘서 2:28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꿈을 자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버림을 받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꿈을 갖지 않고 그저 막연한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 안에서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꿈을 잉태하는 성도가 그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 4:17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직 꿈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1:24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한 것을 어떻게 받은 줄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구하는 그 대상을 찬란하게 꿈꾸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꿈은 바로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1:1에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그것을 찬란하게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꾼 꿈이 반드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에도 막연하게 축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말씀하심으로 먼저 찬란한 꿈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구십 구세 때, 하나님께서는 별과 같이 많은 자손에 대한 꿈을 심어주시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아브라함은 꿈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고 결국 그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꿈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아브라함처럼 영롱하고 찬란한 꿈을 꾸십시오. 비록 환경이 당신을 열두 번을 더 속일지라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 되지 마시고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꿈을 포기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나태해집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인생을 살 소망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꿈이 있지 않습니까? 그 꿈을 날마다 그려보십시오. 혹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직 없습니까? 하나님께 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꿈의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말세에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며 찬란한 꿈을 가슴에 잉태할 때, 그 생각과 꿈은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매사에 부정적이고 빈곤의식과 저주의식으로 가득한 삶은 황폐한 인생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가지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꿈꾸십시오. 그리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실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