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3:8 크리스천의 과거 현재 미래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과거가 중요하냐? 현재가 중요하냐? 미래가 중요하냐?”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내세관을 가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 질문에 대답하는 모든 분들을 보면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과거를 잊어버리라고도 하고, 반대로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라고도 합니다. 이사야 43:18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 뜻은 무엇입니까? 옛날의 쓰디쓴 상처나 추억 등을 떠올려 스스로 낙심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우울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이 추억에 더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살면서도 좋은 일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과거의 나쁜 추억들을 떠올려 이혼하고 갈라서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상당 수가 과거의 나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치료되지 못하여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과거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크게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것은 자신의 인생을 우울하게 하고, 더욱 큰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즉 과거의 쓰디쓴 상처를 완전히 잊을 수 있도록 용서와 이해, 그리고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과거가 치료가 되고, 과거의 불행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으로 알려진 오프라 윈프리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서전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간당하고, 학대당하고, 매질당하고, 거부당하는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어요. 제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저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 모든 고난을 헤쳐 나올 수 있었어요.“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면 상처가 있습니다. 쓰디쓴 추억이 있고, 실패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은 정신병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고로 성경은 이런 과거의 어두운 추억, 상처 받은 추억을 기억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게 힘들었던 과거에도 하나님은 나를 보살펴 주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과거의 나빴던 것만 기억하지 말고 좋았던 것을 기억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6:9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여러분, 나의 과거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옛날에 내가 방탕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더 이상 지옥의 길과 심판의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셨고, 나를 돌보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고로 아삽이란 사람은 시편 77:11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회상하지 않고, 자신이 과거에 누려던 부귀영화나 지위와 권세와 성공만 집착하며 회상하면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이런 태도는 자신을 현실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하며, 자칫 자신을 과거의 감옥 속에 가둘 수 있고, 미래를 향한 전진의 속도를 늦추기도 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과거에 대한 큰 성공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우쭐해지고 교만해지는 위험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도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에 대하여 배웁니다. 즉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여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 깨닫기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과거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 책들에는 있지도 않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의 과거의 사건도 기록되어 있고, 우리 인간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 시절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고, 더구나 이스라엘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사건들을 살펴봄으로 현재를 보다 아름답게 건설할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을 떠나서는 민족도 국가도 가정도 개인도 제대로 서지 못했던 과거의 기록들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하,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되겠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것이 나의 축복이고 나의 행복이구나!” 할렐루야! 아무쪼록 과거의 일들이 여러분에게 더욱 감사와 행복과 발전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톨스토이에게는 ‘세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마지막 셋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 질문들에 대해 톨스토이는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인간은 그것을 위하여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날마다 그때그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선을 다하여야 한다.”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 과거를 우리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자신이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 반대로 저렇게 저렇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건은 이렇게 이렇게 해결이 되어야 더욱 좋았는데 저렇게 저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후회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나 어찌 합니까?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는 다시는 그러한 과거의 실패를 하지 않도록 현재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내세가 있는 종교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고로 기독교는 미래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미래에 대한 예언도 많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명도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 꿈을 가져라. 희망을 가지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산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산을 내려와 불완전한 인생들과 어울려 현재에 충실합니다.
예수님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계시지만 현재 지금 이 자리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재에 충실하지는 않고 좋은 미래만 꿈꾸며 산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며 사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좋은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현재, 지금 당장 어렵다고 오늘에 불평하는 사람은 내일이 다가와도 여전히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즉 오늘에 감사하는 자가 내일도 감사할 수 있고, 오늘의 작은 일에 충실하는 자가 내일에 큰일을 맡아서 충실할 수 있는 바른 일꾼이 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영광의 세계도 오늘에 충실하는 자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고로 오늘이라는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대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혹 오늘이라는 시간, 현재라는 순간이 당신에게 힘든 시간이요 고난의 순간입니까? 성경 로마서 8:18의 구절을 생각하십시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과거를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도 우리와 같이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즉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들에게 가져다줍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장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합니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3:17-18)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장래는 복되다고 예언합니다. 고로 여러분의 장래를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장래를 책임져 주십니다. 성경 표준새번역 시편 16:5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미래는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리고 표준새번역 시편 36:9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이렇게 예언합니다.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24:20)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악한 자들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표준새번역 시37:37-38)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좇아가며, 진리를 추구하며, 선을 행하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고로 우리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습니다.”(표준새번역 전3:11) 하나님은 인생으로 하여금 과거를 통하여 배우며, 미래를 꿈꾸며 오늘에 충실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고로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다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하나님도 사랑하고, 현재의 하나님도 사랑하며, 미래의 하나님도 사랑합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요,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영원토록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 과거도 사랑하며, 오늘도 주관하고 있는 현재도 사랑하며, 내일도 주관하는 미래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하나님 안에서 희망입니다.
크리스천의 과거 현재 미래
날짜:
200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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