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극복

날짜: 
2024/09/07
말씀: 
시51:1-10
말씀구절: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설교: 

각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남에게 말 못하는 자기만의 부끄러운 비밀이나 큰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 일을 잊고 살다가 어떤 때는 문득 그 일이 다시 떠올라서 괜히 마음이 안 좋아지고 기분이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이로 인해 어떤 분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과거의 그 부끄러운 일, 안 좋았던 추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여러분은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냥 자기 마음속으로 “에이, 이거 잊어버리자. 빨리 잊어버리자. 야- 김원효, 그거 잊어버려.” 하고 마치 자기 최면이나 주문을 걸듯이 그렇게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까? 그런데 저도 이런 식으로 몇 번 해보았는데, 이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꼭 더 생각이 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혹시 내가 나이가 먹어서 건망증이나 기억상실증 혹은 치매에 걸리면 이런 문제가 좀 해결이 되려나?”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진짜 건망증, 기억상실증, 치매와 같은 병에 걸리면 그건 안 되잖아요? 그런 병에 걸리면 나쁜 추억, 부끄러운 추억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추억까지도 잊어버리고, 꼭 기억해야할 것들도 잊어버리니까,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조차 매우 힘들어지니까, 그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치매에 걸리신 분들을 보면 오히려 좋은 추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나쁜 추억은 끝까지 안 잊어버리는 그런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치매 걸리신 분들을 보면 욕을 자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 치매 걸리지 않았을 때에는 전혀 욕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인격이 좋았던 분도 치매에 걸리고 나서 욕을 하는데, 그것도 아주 심한 욕을 하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주위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만큼 마음속에, 뇌 속에 깊게 새겨진 부끄러운 추억과 정신적인 상처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나쁜 기억,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이에 대해 찾아보니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오는데, 그 중에 제가 중요한 것 6가지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보다 성경적인 방법을 첨가하여 풀어주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물과 장소를 멀리한다.

그런데 이 방법을 보면서 제가 목사다보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나쁜 추억이 일어난 장소가 결코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 장소가 교회라면 어떡하지? 이때는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 믿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 그건 안 되는데...”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나쁜 추억을 일으킨 사람이 여전히 지금 나와 같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와 같은 장소에 있을 것 같고, 더구나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어떡하지?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자꾸 옛날의 나쁜 추억이 떠오르는데... 이때는 내가 교회를 옮겨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지구를 떠나야 하는가?”

물론 이에 대한 해답은 제가 설교 때에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보고 교회 다니지 말고, 주님보고 교회 다녀라.” 그리고 이런 경우 주님의 말씀으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이때 무슨 말씀 떠오릅니까? “네 원수를 사랑하라.” 예- 맞습니다.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2. 그 사건은 이미 지나간 과거임을 인식해라.

옛날 속담에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한 아들이 죽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슬프고, 원통하고, 괴롭고,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죽은 자녀의 불알을 만져보지만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즉 과거는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과거의 일로 아무리 후회를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니 포기해야 할 과거는 빨리 포기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좋지 못한 그 과거의 부끄러운 추억이나 안 좋은 추억들에 대해 “에이, 인생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지.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다.” 하고 세월 속에 흘려보내는 겁니다. 묵은 먼지를 털어버리듯이 훌훌 털어버리는 겁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43:18)

3. 그 기억을 긍정적으로 변경시켜 본다.

그 부끄러운 추억, 안 좋은 추억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거기에도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패합니다. 일을 할 때도 실패하고, 사람간의 관계에도 실패하고,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실패를 합니다.

이때 작은 실패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큰 실패는 기억에 오래 남아서 결국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쓰디쓴 실패를 거울삼아 너와 내가, 우리가 더욱 발전해오고 성숙해졌습니다. 과거의 안 좋은 그 일도 결국은 보다 나은 삶을 이루는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즉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우리를 더 좋게 하시려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고로 그 나쁜 추억을 어찌하든지 좋은 쪽으로 재해석해보십시오. 결국 그 안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좋은 쪽으로 재해석하는 데에 아주 좋은 성경구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4. 행복한 기억들에 집중하라.

물론 인간의 타락한 뇌는 불행한 일, 안 좋은 일을 행복한 일, 기쁜 일보다 더 잘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고로 그런 나쁜 추억에 집중하지 말고 기왕이면 좋은 추억, 행복했던 순간을 더 많이 생각하고 집중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자꾸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유익을 주고 좋은 추억을 주었던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어느새 딱딱하고 굳어 버린 인상도 펴질 겁니다. 누가 봐도 “요즘 뭐 좋은 일 있어요?” 하고 물어볼 정도로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혹 과거에 그런 좋았던 일이 전혀 없고, 또 생각도 안 나면, 앞으로 장래에 일어날 좋은 일을 꿈꾸어보십시오.

마치 자기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시무룩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나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혹은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들을 바라보며 장차 자기의 자손들도 저렇게 수많은 별들처럼,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는 것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십시오.

5. 과거보다 현재에 머무는 법을 배워라.

즉 일이나 운동, 혹은 취미생활을 하므로 과거의 안 좋은 추억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 뭐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 없다면 한번 찾아보고 만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새로 찾은 그것이 내 취향에 맞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건설적이고 괜찮은 것이라면 그것을 해보십시오. 예를 들면 찬송가 배우기, 성경 읽기, 설교나 간증 듣기 등을 해보십시오.

그리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영어 공부하기, 집안 청소하기, 마당에다 농사하기, 교회 청소하고 울타리 잔디 깎기 등도 해보십시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도 해보십시오. 그런 일들을 아주 열심히 재미있게 하므로 과거의 나쁜 추억이 생각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겁니다. 즉 쓰레기를 많은 흙으로 덮어버리듯이, 쓰레기 같은 과거의 나쁜 추억들을 오늘의 좋은 흙으로 싹- 다 덮어버리는 겁니다.

6.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심리치료자, 상담자, 선생님, 부모님,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강력히 추천하고 싶으신 분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친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직접 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겪은 그 과거의 일들을 분명히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내가 마음이 너무 상하여 트라우마가 생겨 아직까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다 아시고 있습니다. 고로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 자기의 아픈 것을 다 이야기하듯이, 만병의 의사이신 하나님께 그 일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해보십시오. 환자의 말을 듣고 의사가 처방을 하고 치료를 하듯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사정을 듣고 분명히 치료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에게도 매우 부끄러운 추억, 안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자신을 위해 싸우는 충성스런 신하의 아내를 성폭력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충성스런 신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워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은 꽤 정의롭고, 정직하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괜찮은 사람으로 자부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못되고 야비한 녀석이었습니다. “아- 내가 왜 그랬지!” 하고 스스로 자책을 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다윗의 일생에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우개가 있으면 그 때의 그 일을 빡빡- 지우고 싶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번민하며 고통하며 신음합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32:4) 다윗은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그 방법을 알았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께 그 모든 것을 솔직히 아뢰는 겁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는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시32:3) 그는 자기의 죄악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의롭다 한들 자기 역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악 중에 출생한 죄인이었습니다.(사51:5) 그렇습니다. 그 과거의 나쁜 일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타락하고 죄 많은 인간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 다윗 자신도 포함됩니다. 너도 나도 다 포함됩니다.

고로 다윗은 무엇보다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낱낱이 고백하고 아뢰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1-3)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51:7)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9-10)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아뢰므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았습니다. 무너진 자존감도 회복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극복했습니다. 아- 여기까지의 스토리가 이 내용의 끝이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다윗에게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최상의 해피엔딩일 겁니다. 목사인 저도 여기서 이 스토리를 끝내면 설교도 짧아지고, 여러분들도 좋아할 겁니다. 그 이상 나가면 좀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이렇게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사단이 하나님께 다윗을 참소합니다. “하나님, 신하의 아내를 성폭력하고, 자기의 죄를 숨기려고 신하를 죽이기까지 한 이 못된 다윗을 그냥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납니다. 그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결국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주의 공의, 자신의 공의를 지키기 위해 다윗에게 징계의 채찍을 때리시고 벌을 내리셔야만 했습니다. 다윗이 남의 아내를 성폭력 한 것처럼 자신의 후궁들도 그 아들 압살롬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배 다른 자기 자녀들끼리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충성스런 신하를 죽였는데, 자기 아들들도 4명이나 그렇게 죽었습니다.(어린 아기, 암논, 압살롬, 아도니야)

아- 물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내 죄를 모두 지시고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으셨으니, 나는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받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고, 천국에도 떳떳이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 맞기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건 너무나 무책임하고, 너무나 뻔뻔한 말입니다.

아- 그러잖아요. 예수님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살인을 비롯해 실컷 악독한 죄를 짓고 나서 “주여, 용서하소서.”라고 말 한 마디하고, 눈물 몇 방울 흘렸다고, 그에게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않고 무조건 용서만 해준다면 그건 너무 불의를 조장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건 도무지 하나님의 공의와 맞지 않습니다. 세상 정의와도 어긋납니다.

고로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즉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과거에, 혹은 젊었을 때에 잘못 심었던 그 죄악의 씨앗을 나중에 열매로 거두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남을 괴롭히면 나도 언젠가 남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면 내 눈에 언젠가 피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요즘 한국에 보면 연예인들이나 체육인들 중에 잘 나가는 아무개도 학생시절에 친구들을 못살게 군것이 까발려져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사를 종종 봅니다. 즉 자기가 심은 것에 대해 자기도 똑같이 당하는 겁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을 너무 원망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자신의 과거의 죄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또 한번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아- 내가 이전에 남을 할퀴고 때렸는데 하나님이 지금 나를 때리시는구나! 아이고- 아파라. 이전에 나에게 맞은 사람도 많이 아팠을 텐데... 그래, 내가 미안하다. 그때 내가 잘못했다.” 하고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보상도 해주고, 더욱 더 착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더욱 확실히 이루어지는 겁니다.

아- 그러지 않습니까? 죄를 지었으면 그에 따른 벌도 좀 받아야지요. 남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로 크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했으면 자기도 좀 당해봐야지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그 상처와 그 트라우마가 이전에 나의 부모가 혹은 내 자신이 안 좋게 심었던 그 씨앗의 열매일 수가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겁니다.

아- 사람이 이 정도까지 깨닫고 또 한 번 깊이 회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괜찮은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자기가 하나님께 맞을 때는 몸과 마음이 심히 아프고 낙심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신다고 했습니다.(히12:6) 즉 그렇게 하나님께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더욱 거룩해지고, 계속해서 나를 참소하고 트라우마로 나를 괴롭히는 사단의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로 말미암아 더욱 큰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히12:11)

결론입니다. 과거의 그 부끄러운 추억, 상처와 트라우마를 확실히 극복하십시오. 오늘의 고통도 더욱 더 내가 온전해지고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너와 나를, 여전히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나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해를 비추시고 있고, 내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그 사람도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어제도 불완전하고, 오늘도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때로는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심히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치료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죄와 허물과 모든 사정을 아뢰오니 주여-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