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2:5-6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권세자와 왕의 아들이 아닌 가난한 집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촌 동네인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자라났기에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며 배척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심한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자 그를 실패자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한 구세주의 모습에 예수님은 너무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실망스런 모습으로 오셨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거의 모두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에게 실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실망시킨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가난함은 도리어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은 우리를 치료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십자가에 죽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실망시킨 사람이요, 그의 구속의 사역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처럼 생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조차도 예수님께 실망한 나머지 예수님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당신을 실망시켰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어보았자 이 외국 땅에서는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가 아닌 단지 종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하나님은 응답해주지 않는다고 불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실망스런 생각을 하고, 예수님을 섭섭하게 바라보거나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은 당신 스스로의 실망이지 하나님이 주신 실망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시키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실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실망이라는 마귀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넣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깊은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든지,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는 일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다가와 하와에게 이렇게 속삭이지 않았습니까? "하와야,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아이쿠, 하나님은 참 인색하신 분이구나! 더구나 너희들이 하나님처럼 될까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다니... 아이쿠, 하나님은 참 옹졸한 분이시구나!"
여러분, 마귀가 이렇게 하나님을 인색한 분, 옹졸한 분으로 말하니 하와가 하나님께 대하여 실망감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실망감은 도리어 마귀에 대한 신뢰감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와는 자기를 실망시킨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자기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참된 깨달음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즉 하나님께 대한 실망감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파괴합니다. 실망은 불신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파괴된 불신의 사람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하늘나라를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고로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실망은 금물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실망하면 도대체 어디서 희망을 찾겠습니까?
물론 당신이 사람 때문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문제 때문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실망을 느꼈어도 하나님만큼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금 실망하고 있다면, 낙심하고 있다면, 어깨가 쳐지고 힘이 떨어졌다면 그것은 사람이나 환경이나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실망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에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시42:5-6)
여러분, 스스로 한번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어찌하여 낙망하고 있는가? 나는 어찌하여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낙심시키며 무엇이 당신을 불안케 합니까? 이 외국 땅에서 가족들과 살만큼 돈이 없어서 불안합니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합니까? 혹은 환경이나 사람을 보고 실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당신을 낙망시키고 불안케 합니까?
이럴 때 오늘의 성경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의 도우심을 생각하고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물론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25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실망시키지 않고 약속의 자녀를 주었지 않습니까?
물론 그 25년 사이에 아브라함이 늙어만 가는 자신의 몸과 아내의 몸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종종 실망스럽고 낙심이 되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실망시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당신을 실망시킨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 자신입니다. 실망의 죄를 하나님께 전가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실망스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과 더불어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실망의 사람은 그 실망스런 모습을 오래도록 생각하고 끈질기게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그는 더욱 실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실망의 마귀에 자신의 인생이 이리저리 쫓기게 되고 맙니다.
여러분, 진정한 크리스천은 모든 사물을, 모든 환경을 희망의 하나님과 더불어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실망스런 사람도 희망으로 보이고, 실망스런 문제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바라봅니다. 고로 크리스천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단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희망의 하나님과 더불어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험이 들고 하나님께 실망을 한다면 당신의 실망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아서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잊지마십시오. 귀를 지으신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면 누가 그 기도를 듣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 기도에 가장 좋게 응답하고 있는 중이십니다. 혹시 지금 당장 당신이 원하는 모습의 응답이 아니기에 실망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마 후면 하나님의 솜씨가 정확히 나타나 당신의 실망은 변하여 찬란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공연히 실망하고 낙심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생각이 들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에게 희망과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신 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인색하다고 합니까? 왜 하나님을 무심하다고 하고, 왜 하나님이 나를 실망시킨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여러분,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실망의 구덩이에서 신속히 빠져나오십시오. 스스로 실망의 구덩이에 기어들어 가지마십시오. 패배의식을 버리십시오. 당신은 희망의 사람이지 결코 실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희망의 사람으로 만들었지 실망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실망은 마귀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작품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의 눈빛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희망의 사람이요, 희망의 메신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이 실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실망의 어두운 눈빛을 초롱초롱한 희망의 눈빛으로 바꾸십시오. 실망의 쳐진 어깨를 희망으로 일으켜 세우십시오. 이 외국 땅에서 실망하고 낙심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죽어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희망을 저버리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러 오셨지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낙심시키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불안케 하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6명이나 갈아치우면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고 실망 속에서 허덕이며 목말라하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다가와 그 여인의 실망을 곧 희망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동안 병석에 드러누워 있어 꼼짝도 못하는 한 불쌍한 남자에게 다가가 그 남자가 금새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희망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오라비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사로잡힌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도 예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이 되는 그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절망의 곡성이 떠나가게 하고 희망의 외침이 들려지게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는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은 만선의 축복을 허락하시므로 베드로가 희망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절망과 실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생을 구출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을 단순한 선생이요, 학자요, 종교가라기
보다는 구세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실망에 빠진 너와 나를 구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질병과 가난, 죽음과 각종 저주, 그리고 미움과 다툼에서 신음하는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고로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다면 실망의 탄식을 물리치시고 희망을 외치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희망을 외치는 당신에게 정녕 그 희망은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시험 중에서도 그 희망의 빛은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빛은 영영토록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에서도 지속이 될 것입니다. 아멘 !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날짜:
2005/03/14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