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

날짜: 
2006/05/28
설교: 

창41:38-40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언제였던가요? 요즘 축구 이야기가 슬슬 많아지고 월드컵 이야기가 뉴스로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하, 그렇지! 4년 전에 그 순간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지!” 하고 말하며 4년 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간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너도나도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 하고 목청이 터지도록 응원을 했습니다.
아마 안정환 선수에게 “이제까지 축구를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언제였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예, 월드컵 16강 전에서 제가 골든골을 넣어 이탈리아에 역전승을 거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계 축구 연맹인 FIFA에서도 세계 10대 감동의 골든골에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앞서 물은 질문인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언제였던가요?”라는 질문을 마라톤 선수였던 황영조 선수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마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요? “예,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은 순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아마 아내 분들 중에는 이렇게 대답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 제가 면사포를 쓰고 이 남자와 결혼한 순간이 제 일생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남편 분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직장에서 승진된 날, 집을 장만한 날, 아들과 딸이 태어난 날, 군대를 제대한 날 등등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한다면 아마 대학에 합격한 날이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빠나 엄마로부터 컴퓨터나 휴대폰 선물을 받은 날도 감동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질문을 크리스천에게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저의 경우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오산리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중 성령을 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순간이 가장 감동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일주일 후에 또다시 기도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약속을 받은 순간이 일생 중 가장 기쁘고 가장 감동된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감동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일을 하게 됩니다. 만화책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만화책을 열심히 읽을 것이요, 컴퓨터 게임이나 컴퓨터 오락 등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컴퓨터를 열심히 할 것이요, 스포츠 관람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열심히 스포츠를 구경할 것이요, 쇼핑이 재미있고 감동이 되는 사람은 날마다 쇼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성경을 열심히 읽을 것이요, 찬양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찬양을 열심히 부를 것이요, 기도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앉으나 서나 기도를 열심히 할 것이요, 예배에 감동을 받는 사람은 나오지 말래도 열심히 일찍부터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찬양과 기도, 말씀과 예배에 감동이 없어지면 신앙생활에 흥미를 잃고, 차츰 교회가 멀어지고, 타락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세상의 쾌락이 더욱 강열해지는 이 때에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떨어지면 우리의 신앙은 위험하게 됩니다. 특히 외국 땅에서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떨어지면 다시 그 감동을 충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점치는 귀신이 들려 점을 치는 점쟁이가 그 귀신의 감동이 없어지면 다시는 점을 치지 못하는 것처럼 됩니다. 즉 점쟁이의 사명은 점치는 것인데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떨어지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고로 성경은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소멸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거듭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데살로니가전서 5장 20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똑같은 예배를 드리면서도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동이 없이 목석같은 표정과 자세로, 혹은 졸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혹은 따분하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깨달음과 감격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으며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신에 가장 감동을 많이 받고 지내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배다른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의 노예로 끌려가는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몰려 삼년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 역경 속에도 그가 신앙을 꿋꿋이 지킨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억울하게 삼년간 옥살이를 하거나 인신매매를 당하면 미움과 복수의 칼날을 갈기가 쉽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인격이 나쁘게 변하지 않고, 신앙이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다듬어져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믿다가 군대에서 믿음이 타락하고, 외국에 나오면 믿음이 타락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군대나 외국에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이나 인간적인 목적에 쉽게 감동을 받기 때문입니다.
삼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요셉이 애급 왕의 꿈을 해석하고 그에 따른 처방전까지 내놓자 애급의 왕이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창41:38) 그리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창41:39-40)
여러분, 이 세상의 지식이나 기술은 배우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과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구세주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박사학위로는 불가능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신이 감동을 주고 깨닫게 해주어야만 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없으면 죽은 신앙이 되고 하나님의 감동이 있으면 살아있는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여섯째 날에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집어넣으니 생령 즉 살아있는 심령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기 전에는 죽은 영이었고, 하나님이 신이 들어가므로 비로소 산 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8장 9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겸손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자 그에게 있던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점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타락하여 결국 점치는 여인을 찾아가 자신의 운명을 묻게 되고, 나중에는 전쟁터에서 자살로 자신의 일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초대 왕 사울과 대조적으로 두 번째 왕인 다윗을 봅니다. 그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다른 아내의 여인과 간음을 저지르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일급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이 자신을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있었기에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고 믿음의 위인으로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신이 자신을 떠나고, 그 감동이 끊어지면 자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끝장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성신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청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없어지면 크리스천은 끝장이 나고 맙니다. 고로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도 가장 신경 쓰고 주의할 일이 있는데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항상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천국은 앉아서 구경하는 자의 것이 아니고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감동을 얻기 위하여 이 외국 땅에서도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찬양을 드리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십시오.
요셉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자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장차 다가올 7년 기근의 재난을 미리 보여줌으로 이에 대비하게 하고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가족을 살리는 사람입니까? 누가 국가를 살리는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스스로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요셉이 있으므로 보디발 장군의 집이 축복을 받았고, 감옥에도 죄수들과 간수 사이에 화목이 임하고, 가족들과 많은 사람이 살고, 예수님의 족보도 연결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는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헌신하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런 일꾼이 있으면 교회가 살고 축복을 받습니다. 가정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떨어지면 사울왕처럼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철야 예배에도 나와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일생동안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고 살도록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삼손이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이 되었을 때에는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인 일천 명을 죽이는 위대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홀려 타락하자 하나님의 신의 감동은 떠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떠나면 더 이상 크리스천으로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삼년간이나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충만히 받기 전에는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날 성령이 충만히 임하자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히 깨닫게 되었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성령을 우리들에게 보내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의 감동이 임하면 우리는 요셉처럼 환난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도 살고, 가족도 살리고,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외국 땅에서 나도 살고 우리들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