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22;29-36 하나님 없는 최선은 헛수고였다.
옛날에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지금의 한국처럼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둘로 갈라져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나라 옆에는 아람이라는 강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유다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을 찾아 갔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땅 길르앗 라못을 아람이 빼앗았는데 같이 힘을 합하여 아람을 쳐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여호사밧왕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그리고 여호사밧왕은 아합왕에게 아람을 쳐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 지 먼저 물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아합왕은 거짓 선지자 400명쯤을 모아 놓고 길르앗 라못을 쳐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말했습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심지어 시드기야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는 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시청각으로 예언을 하였습니다. “왕이 이 철뿔을 가지고 적을 무찌를 것입니다.”
여호사밧왕은 아무래도 이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이들 선지자들 말고 우리가 물을 만한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아합왕이 말했습니다.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항상 불길한 예언만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미워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이 말했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그를 불러 오십시요.” 그래서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 왔습니다. 미가야는 진실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이 전쟁을 하게 되면 왕이 죽게 됩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 거짓 선지자인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쳤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예언이 맞는다고 말했습니다. 아합왕도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그리고 두 왕은 전쟁하러 갔습니다. 아합왕이 여호사밧왕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반 병사처럼 변장을 하고 군사들 가운데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전쟁이 한창 진행이 되는 중에 적군이 우연히 활을 당기었는데 그만 아합왕의 갑옷 솔기를 정확히 쏘았습니다. 아합왕은 부상을 당하여 전쟁터를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쳤지만 전쟁이 맹렬하여 그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 없는 작전은 완전히 실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아합왕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연합해도 안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무시하고는 연합하여도 안 됩니다. 아합왕과 여호사밧왕이 연합하였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실패였습니다. 즉 아무리 힘을 합하여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 실패합니다. 그리고 400명 거짓 예언자들이 일치단결하여 연합하여 한 목소리를 냈다 할지라도 진실한 선지자 미가야 하나만 못하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연합하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실패로 돌아갑니다.
창세기에 14장에 보면 네 왕이 연합하여 다섯 왕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네 왕은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었고, 다른 다섯 왕은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소알 왕 벨라였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왕이 속해 있는 연합군이 졌습니다. 그래서 소돔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들이 318명이 있었습니다. 그 소수의 318명을 데리고 네 왕의 연합군을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조카 롯을 구출하고 많은 전리품도 얻었습니다. 즉 연합이 중요하고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예언해도 안 됩니다.
400명의 거짓 예언자들이 예언하였습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의 예언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짓 예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진실된 선지자 미가야가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양이 아니라 질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아합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급급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아무리 그럴듯한 예언을 했지만 그 예언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스코틀랜드에 어느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실, 단추, 구두끈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파는 분이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갈림길이 나오면 항상 막대기를 던져서 막대기가 쓰러지는 방향으로 가곤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막대기를 던졌습니다.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다시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막대기를 자꾸만 다시 던져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아- 나는 저 쪽 길로 가려고 하는 데 막대기가 자꾸만 다른 쪽으로 쓰러져!”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자기 마음에 미리 정해놓고 점을 치다가 자기가 원하는 점괘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 점괘를 자기 마음에 맞추려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종종 자기의 마음을 다 정해놓고 하나님을 자기의 마음에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한 점괘와 예언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3. 경험으로도 안 됩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아람과의 두 번의 전쟁을 치러 승리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합왕은 이번에도 아람을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습니다. 그가 아람에 지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이겼으니까 이번에도 또 이기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400명이 일치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은 죽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경험이 있어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느 퇴역 군인의 간증입니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남편인 소령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남편에게 같이 구원받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남편은 늘 말했습니다. “내가 중령되면 같이 교회 나가지.” 아내는 이 말 한 마디를 믿고 계속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령되면 교회 나간다는 말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드디어 중령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아내는 흥분 속에 내일 교회에 입고 갈 옷을 다림질하고 손질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에 그 옷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중령이 되었으니 교회 가야지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중령이 된 것은 당신이 기도하여 된 것이 아니야. 육사 출신은 중령까지는 웬만하면 다 되는 거야. 모든 육사 출신 장교들이 다 경험하는 거라고!“ 그리고 그는 교회 가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진급되고 일주일도 못 되어 남편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타고 가던 지프차가 낭떠러지에서 굴렀습니다. 그는 뇌를 다쳤습니다. 결국 그는 중령되고 일주일도 근무하지 못하고 퇴역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경험이 있기에 그 경험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4. 꾀로도 안 됩니다.
아합왕은 꾀가 있었습니다. 아합왕은 교활한 꾀를 내었습니다. 여호사밧왕에게는 왕복을 입은 채로 전쟁에 나가게 하고 자기는 변장을 하였습니다. 일반 병사의 군복을 입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죽게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는 얕은 꾀였습니다. 적들이 왕에게 공격의 초점을 맞추면 자기는 편안하게 전쟁하겠다는 얕은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쏜 화살에 맞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왕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왕이었습니다.
아합왕은 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온 아주 나쁜 왕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왕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왕을 죽이고, 자기는 살려고 하려는 간교한 꾀를 내었지만 우연한 화살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합왕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졌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솝우화를 우리는 잘 압니다. 하루는 개구리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서 꾀를 부렸습니다. 막대기를 입으로 물고 황새에게 막대기를 끝을 물고 하늘로 올라 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높이에서 다 보였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보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때 이런 모습을 보고 한 새가 물었습니다. “누가 이런 꾀를 생각했니?” 개구리가 입을 열어 뽐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 순간 개구리는 입에 물었던 막대기를 놓치고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죽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통교훈집인 탈무드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친구가 여행을 하다가 여관에 갔습니다. 방이 없었습니다. 헛간이라도 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침대를 임시로 하나 놓았습니다. 약삭빠른 친구가 침대를 차지하고 다른 친구는 선반위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술 취한 군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군인들은 그 헛간으로 오더니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죽기 직전까지 패주었습니다. 공연한 시비 중에 생긴 사고였습니다.
그 맞은 친구는 군인들이 또 들어오면 또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꾀를 부려 다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나 혼자만 침대에서 자기가 미안하다. 우리 교대하자.” 그래서 바꾸어 자는데 그 군인들이 또 오더니 말했습니다. “아까는 침대에 있는 녀석을 팼으니 이제는 선반위에 녀석을 패야겠다.” 그리고 끌고 나가서 또 패주었습니다. 인간의 얕은 지혜로는 안 됩니다. 도리어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어느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그녀의 기도제목 1호는 남편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하여 달라는 기도를 언제나 어디서나 제일 먼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참으로 그런 면에서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요리 핑계 저리 핑계를 대면서 교활하게 빠져 나갔습니다. 도무지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고 보니 아내가 아직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술 취한 중에 교회로 갔습니다. 기도 중에 가만히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 머리를 살며시 끌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취중이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머리를 벽에 몇 번 쥐어박았습니다. 아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그런데 목소리를 듣고 보니 자기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경찰서장의 아내였습니다. 경찰서장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건물에 머리를 몇 번 부딪쳐 매우 아팠습니다.
그 부인은 술 취한 사람이 자기 교회에 다니는 다른 사람의 남편인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 나오시든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세요.” 그 남자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남편은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그 다음 주일부터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의 기도제목은 멋지게 이루어졌습니다.
결론입니다. 자기를 믿고 사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하나님 없는 최선은 헛수고입니다. 연합해도 안됩니다. 예언해도 안됩니다. 경험으로도 안됩니다.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을 의지하는 중에 일들이 성취되고 축복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없는 최선은 헛수고였다.
날짜: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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