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하나님)이 보우하사(보호하사)

날짜: 
2022/04/23
말씀: 
시121:1-8
말씀구절: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설교: 

어느 나라든지 국가(National Anthem)가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는 ‘애국가’라고 합니다. 애국가 1절에 보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보우하사’입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사‘입니까? 원래는 ‘하나님이 보호하사’인데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바뀌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국가의 작곡자는 ‘안익태’ 씨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작사자는 누구일까요? 미상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거론이 되었는데 아주 확실치 않다 보니 그냥 미상으로 해둔 겁니다. 작사자로 거론된 분들 중에 유력한 사람은 ‘윤치호’ 씨와 ‘안창호‘ 씨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두 분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보니 ‘하나님이 보호하사’ 하면 너무나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여 모든 국민들이 다 함께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바꾸었습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하고 ‘하나님이 보호하사’ 하고 어떻게 다를까요?

일단은 두 표현 중에 어느 것이 옳고 틀린 것이 아니라 둘 다 표준어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란 표현도 가톨릭이나 성공회, 정교회에서는 ‘하느님’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글 ‘하나님’과 ‘하느님’은 원래 ‘하늘’을 의미하는 같은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도 종파마다 각각 ‘하나님’과 ‘하느님’ 둘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호하사’ 하고 ‘보우하사‘ 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요즘 사람들은 ’보호하사‘라는 단어는 익숙하고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우하사‘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그 의미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보우하사‘에서 한자어 ’보‘는 ’지킬 보, 보호할 보‘입니다. 그리고 ’우‘는 ’도울 우‘입니다. 그러니까 ’보우하사‘는 ’보호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하느님(하나님)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 우리나라를 보호해주시고 도와주신다니 참으로 멋있는 애국가 가사입니다. 이런 애국가를 우리가 부르고 있다니 참으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르면서 이런 신앙의 고백을 하나님께 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안도와주시고 안 지켜 주실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도 반드시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겁니다.

제가 애국가 가사를 공부하면서 다른 나라 국가(National Anthem)는 어떤가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즉 다른 나라 국가들도 우리 대한민국 애국가 같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라는 표현이 나오는가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그런 표현이 들어간 다른 나라 국가를 아십니까?

지금 우리가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캐나다 국가는 어떻습니까? 거기에 보면 “God keep our land glorious and free”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번역하면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영화롭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한국의 애국가처럼 캐나다 국가에도 하나님이 나옵니다. 아- 그것도 참 감사합니다.

그러면 캐나다 아랫동네인 미국의 국가는 어떻습니까? 미국의 국가는 5절까지 있는데 4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And this be our motto. In God is our trust.” 이를 번역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우리의 모토(좌우명)이다,”는 뜻입니다. 아- 이것도 참 괜찮은 가사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미국의 좌우명(모토)이라니! 하나님 들으시기에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요? 일단 기독교 국가인 영국이란 나라의 국가(National Anthem)를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면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God save the Queen/King.(하나님이여 여왕(혹은 왕)을 지켜주소서.” 그리고 2절에 보면 “O Lord our God arise, scatter her/his enemies.(오 주 우리 하나님 일어나사 여왕(혹은 왕)의 적들을 흩어버리소서.”

이것을 보면 이전에 대영제국으로 행세하던 참으로 영국 국가다운 가사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원조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가는 어떻습니까? 제가 이에 대하여 찾아보면서 “아- 뭐! 이스라엘 국가는 당연히 하나님이 들어갔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이스라엘 국가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그들의 국가는 히브리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들어봐도 잘 모를 겁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보니까 이렇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나라를 세우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었습니다. 일명 ‘약속의 땅(Promised Land)’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런 국가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거의 2천 년간 나라 없이 유리방황하고 고생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의 소원은 당연히 약속의 땅에다가 나라를 세우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드디어 2천년 만에 나라를 세웠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그 감격을 그들은 국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다운 국가입니다.

참고로 장차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셔서 친히 왕으로서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에 그 수도가 바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입니다. 아마 그 때가 되면 저와 여러분들도 예루살렘에서 자주 만날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수님과 회의도 자주하겠지요? 아- 물론 그때가 되면 우리들은 대부분 부활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굳이 모여서 회의를 하지 않아도 텔레파시로 즉 영적 교통함으로 예수님과 항상 교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다른 나라들의 국가를 찾아보면서 좀 흥미로운 나라들의 국가도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요즘 우크라이나에서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의 국가입니다. 2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신이시여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 여기서 나오는 신(하나님)은 아마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겠지요?

제가 이에 대해 보다 확실히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찾아보았는데 여러분들에게 아직 확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러시아가 지금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종교박해국가입니다.

다만 그들의 정통 종파인 러시아 정교회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 역시 우리와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때 기독교 국가였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의 국가에 “신이시여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에서 말하는 그 신이 기독교의 신일수도 있습니다.

아마 한국 애국가에 나오는 하나님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신을 그저 자신들이 생각하는 신 정도로 범신론적으로 생각하고, 정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속으로 자신이 믿는 하나님, 즉 우리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부르겠다고 생각해봅니다. 혹시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있는 분은 저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리고 흥미로운 국가 중에 중국과 북한의 국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의 국가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북한의 국가에도 역시 하나님이 없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러면 일본의 국가는 어떨까요? 그들의 국가는 일본말로 ‘기미가요’라고 합니다. 번역하면 ‘천황의 치세’입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이 없고 다만 천황의 통치가 잘되도록 기원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1-2절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러분, 예루살렘은 높은 지대에 있습니다. 거기에 모리아 산이라고 하는 성전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시온산도 있고, 조금 떨어져 감람산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본다는 것이요. 그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먼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의 도움도 받습니다. 그리고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도와가며 살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보다 둘이 낫다고 합니다. 즉 남녀가 결혼하면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이 먹어 늙게 되어 여기저기 아프다 보면 배우자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혹은 자녀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만 대개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도와준 만큼 그 자녀가 부모를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늙은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돌보고 도와주는 것은 자녀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이 일을 잘하면 하나님이 장수와 함께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에서는 한국인들이 소수민족입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의 도움도 필요하고, 변호사의 도움도 필요하고, 리얼터의 도움도 필요하고, 성도들 간에도 도움이 필요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까지 받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어떤 때는 사람의 도움이 다 소용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막상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고, 또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내 인생이 추해지고,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확실히 도와주신다니 너무도 고맙고 감사할 일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전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들을 도와주셨고, 지금도 도와주시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실 겁니다. 혹시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습니까? 다윗의 고백입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70:5) 즉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우리들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고로 이 외국 땅에서 물질이 부족하여 힘이 드신 분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각종 도움이 필요합니다. 고로 그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 분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동물의 왕국에 보면 어미가 새끼들을 각종 위험으로부터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자녀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켜주신 것을 각자가 간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은 나를 너를 우리를 계속 지켜주실 것입니다.

5-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하여 광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지켜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지난 여름에 여기 캐나다에 굉장한 폭염이 왔습니다. 저는 그때 밴쿠버에 여행 중이었는데 그곳에서 42도까지 올라간 것을 체험했습니다. 아- 진짜 사우나탕이었습니다. 너무나 뜨거워서 강아지를 데리고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 길을 도저히 산책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이 데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아마 그 뜨거운 광야에서 한 시간만 제대로 걸으면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걸려 거의가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구름 기둥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아- 시원합니다. 걸을만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밤에는 추위가 찾아옵니다. 달빛이 으스스 합니다. 영하의 기온까지는 내려가지 않지만 워낙 일교차가 심해서 그 정도의 날씨면 사람들이 얼어 죽을 정도입니다. 일상생활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아- 따뜻합니다. 살만합니다. 할렐루야!

의학적으로 보면 낮의 해가 너무나 뜨겁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일사병(Sun Stroke) 이나 열사병(Heat Stroke)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빛이 우리를 해친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를 의학적으로 ‘Moon Stroke’라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달빛을 잘못 오랫동안 받으면 정신 질환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요즘 이 Moon Stroke에 대하여 연구 중에 있습니다. 하여간 하나님은 밤에도 낮에도, 24 hours a day, 7 days a week, 쉬지 않고 온종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하나님의 지켜주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신32:10)

7-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어떤 성도님이 묻습니다. “목사님, 성경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하기도 하고,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맞습니까?”

이에 대하여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또 다른 성경구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는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즉 우리 믿는 사람들도 시험과 환난을 당하나 그것은 능히 감당할 환난이고 능히 이길 수 있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감당치 못할 환난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로 결국 환난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성경은 말세는 환난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타락이 극도로 심해져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환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던지 들어오든지, 한국을 가든지, 캐나다를 오든지, 불 속에 있던지 물속에 있던지, 낮이든지 밤이든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영원토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지켜주신다’는 말이 6번이나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즉 지켜주신다는 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고로 다윗처럼 이렇게 외치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