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는 늘 ‘한계’라는 차가운 장벽이 높게 서 있습니다. 특히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 땅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민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을 받고 살았지만, 여기 캐나다 캘거리에 와서는 자신이 무능함을 많이 겪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건강의 난관도 있을 수 있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재정의 압박도 있을 수 있고, 자녀와의 깊은 갈등, 그리고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영적 피로감과 고립감까지… 우리는 여러 가지 일로 “아- 이건 안 돼.”,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어.”라는 깊은 탄식의 벽에 부딪힙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현실을 직시하라.”라며 불가능으로 마침표를 찍으라고 종용합니다. 또한 영적 무력감이 쌓이다 보면,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과연 기도한다고 될까?” 하는 불신의 그림자가 슬그머니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하는 책입니까? 성경은 인간의 ‘불가능’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가능케 하심’으로 마침표를 찍는 거룩한 반전을 기록한 책입니다. 즉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그러나 믿는 자가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말과 불신자가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말은 상당히 그 의미가 다릅니다. 불신자는 자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고로 인간의 교만과 오기에서 비롯된 허무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성도가 외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말은 나의 무능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오늘 주님은 세상의 소리에 갇혀서 낙심해 있는 우리를 향해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국 땅에서 겪는 나의 무능함 속에서도, 혹은 환경에서 다가오는 절망감 속에서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모든 것을 능히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믿음의 선포를 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그 일을 성취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오용하는 대표적인 성구가 있습니다. 바로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성도가 이 구절을 세상적인 긍정의 힘이나,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쟁취해내는 ‘만능열쇠’처럼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 이 고백을 남긴 진짜 배경을 보려면, 바로 앞 구절인 12절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사도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은, 내 욕심대로 상황을 쥐락펴락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풍부할 때도 교만하지 않고, 배고픔과 궁핍으로 바닥을 칠 때도 낙심하지 않으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기쁨과 사명을 잃지 않고 견디어내는 신비로운 자족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내 힘으로는 완벽한 절망이고 궁핍이지만, 주님이 내 안에 능력을 공급하시면 그 어떤 한계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승리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뿌리로부터 생명의 수분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듯이, 내 인간적인 의지나 오기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단 내려놓아야 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예수님조차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의 능력으로 일하지 않으시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눅4:18)라고 고백하시며 철저히 성령을 힘입어 사역하셨습니다.
하물며 예수님보다 한참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없이 내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가진 자원과 경험이 제로(0)라 할지라도,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 그 진액을 공급받음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느니라.”라고 선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하면 된다.
내 입술로 ‘할 수 있다.’라고 고백했다면, 그다음 따라와야 할 두 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된다.”라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려 할 때, 대적들의 방해와 부족한 자원 때문에 16년 동안 성전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나는 ‘절대 불가능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여기서 ‘힘’은 인간이 끌어모은 집단적인 세력이나 돈을 의미하고, ‘능력’은 개인의 뛰어난 경험과 수단을 말합니다.
즉 그 일은 너희의 돈이나 경험이나 인적 자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영인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의 모든 기적은 내 생각에는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급하여 광야로 나왔을 때 앞은 홍해 바다요, 뒤는 애급 군대가 추격해봅니다. 그러나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들자 홍해가 갈라지고 대로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출애급한 이스라엘은 공성 무기 하나 없는 유목민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엿새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아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진했을 때 철옹성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또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해 지쳐있던 베드로가 자신의 어부 경력을 내려놓고 “주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이 내리리이다.”라고 순종하며 그물을 내리자, 물고기가 너무나 많이 잡혀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만선의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롬4:17)이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마19:26). 고로 내 경험과 내 상식과 내 계산으로는 안 될 것 같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발을 내디디며 모든 것을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해보자.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의 고백과 ‘하면 된다.’라는 순종의 확신은 이제 ‘해보자.’라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두려움에 떨며 “우리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낙심한 제자들에게 가장 위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여기서 ‘권능’은 내 안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열정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입혀지는 초자연적 역사, 즉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헬라어 두나미스)입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 앞에서 많은 기적을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그것만 가지고는 제자들이 그 무서운 핍박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 떠나자 보혜사 성령을 각 사람에게 보내시고 권능을 주시므로 그 일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올해도 우리 교회는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총동원 전도 축제’를 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한 번 해보셨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는지 대충은 아실 겁니다. 그리고 노하우가 생겨서 무엇을 더 살피고 무엇을 더 보충할지 감이 올 겁니다. 물론 요즘 이곳의 여건은 캐나다 정부가 이민을 막아놔서 환경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님들이여, 제발 ‘안된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안 돼도 하나님은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안 된다고 의심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능력을 주셔서 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외치십시오.
특히 성탄절은 외로움과 고립감 속에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마음 문이 가장 따뜻하게 열리는 영적 황금기입니다. 더욱이 추운 캘거리에서의 겨울은 누구나 따듯함이 생각나는 시기입니다. 고로 내 주변의 외로운 한 영혼(VIP)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초청해보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고 움직일 때, 성령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는 역사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문제 앞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이 외국 땅에서 나는 돈 버는 재주도 없고, 나를 밀어주는 사람도 없고, 영어도 잘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나? 나는 안 돼?”라는 생각으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고로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으십시오. 안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기적의 체험을 이 외국 땅에서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안 된다.”, “못한다.”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지 마십시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라고 외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고 외치십시오. 아무쪼록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외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곳 캘거리에서도 확실히 체험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이민자의 삶 속에서 겪는 각종 피곤함과 고단함 속에서 ‘안 된다’, ‘힘들다’ ‘못한다.’라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 낙심하며 좌절했던 우리의 불신앙과 인간적인 계산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안 되는 인생을 되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믿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외치며 나아가오니, 주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