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날짜: 
2017/04/02
말씀: 
창37:5-11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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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자동차 여행을 하다 보면 밴쿠버 거의 다 가서 'hope(희망)‘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지치고 지루한 자동차 여행 중에 hope 사인을 보면 “아- 드디어 hope(희망)에 도착했구나! 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어느 동네에 사십니까?” “예- hope(희망)에 삽니다.”
이 질문에 여기 캘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예- 칼가리에 삽니다.” 아니 얼마나 원한이 맺혔으면 칼을 갈면서, 이을 갈면서 사십니까? 여러분, 칼가리에서 살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캘거리에서 사십시오. 캘거리는 캐나다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영어로 'sunniest Calgary'라고 합니다. 태양 빛을 많이 쬐고 산다는 것은 역시 희망 속에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는 것은 아직까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 만듭니다.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하루는 사탄이 자기의 졸개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켜서 그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그 날 회의의 의제였습니다. 사탄의 졸개들은 머리를 맞대고서 이런저런 방안을 연구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예컨대 이러한 의견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고로 돈을 좋아하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십시다. 그렇게 해서 흥청망청 쓰는 가운데 죄를 짓게 만듭시다." 또 이런 의견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약하니까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듭시다. 그러면 개나 돼지처럼 행동하면서 타락할 테니까 지옥으로 끌려오는 영혼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이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적 유혹에 약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성적으로 타락시킵시다. 특히 동성애를 좋다고 유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 심판에 이르게 합시다." 모두 그럴듯한 의견을 냈으나 사탄은 그 모든 의견들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졸개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것 말고 뭐 다른 참신한 방법이 없는가?"
그때 졸개 가운데 하나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법들을 가지고서는 인간의 영혼을 그저 부분적으로만 타락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한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파멸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희망을 빼앗아 버리고, 그 대신에 그들의 마음속에 깊은 절망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탄은 그 소리를 듣더니 무릎을 탁 치면서 "그것 참 참신하고 기막힌 수법일세!"라고 감탄하며 그 졸개를 칭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낙심과 절망은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절망이라는 시험에 빠져버리면 의욕을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던 일을 다 놓아버립니다.
목사님도 마찬가지고, 장로님도 마찬가지고, 권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목사님도 강단에 설교하러 올라오기에 앞서서 낙심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설교하기가 매우 힘들어 집니다. 이렇듯 낙심과 절망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인 희망은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난관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를 보람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희망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품고,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나오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자기의 어머니 라헬을 잃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남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은 요셉의 마음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아버지 야곱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으므로 마음이 슬펐습니다.
더구나 일찍 엄마를 잃은 아들 요셉을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다른 여러 아들들 가운데 요셉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사랑했습니다. 그에게는 특별히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아주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맛난 음식도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요셉은 열 명이나 되는 이복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툭하면 요셉을 구박했습니다. 형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할 요셉인데 도리어 미움만 받고 지내니 요셉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하고 괴로웠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요셉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요셉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희망의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통해서 요셉을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 보니까 가족들이 들판에서 추수를 하고 있는데 자신의 단은 중앙에 우뚝 서있고, 형들의 단은 자신의 단 주변에 둘러서서 자기 단을 향해 꾸벅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은 곧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으뜸이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치리하게 되리라는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시 한 번 더 꿈을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를 상징하는 해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달과 형제들을 상징하는 열 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요셉은 꿈을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에게는 희망의 꿈이 있었기에 어떠한 시련도,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즉 희망의 꿈이 요셉을 살린 것입니다. 그 희망의 꿈이 없었으면 요셉은 도저히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슬플 때, 힘들 때,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할 때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희망의 꿈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외국 땅에 오랫동안 같이 살던 조카 롯이 아브라함의 곁을 훌쩍 떠나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언제나 조카 롯을 자기의 아들처럼 아끼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종들과 가축들을 다 데리고 삼촌 아브라함의 곁을 미련 없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외국 땅에서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허전함 속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내가 너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너와 너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리라."
그 당시 한 평의 땅도 없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나안의 모든 지경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에게는 다시 희망이 솟아났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후손이 장차 땅의 티끌과 같이 창대하리라. 사람들이 능히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을진대 너의 후손들도 셀 수 있으리라."
조카는 떠나가고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들이라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붙들고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아들이 오랫동안 생기지 않자 아브라함은 또다시 낙심하고 맙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재차 나타나셔서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바라보아라. 장차 네 후손들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되리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꿈과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3:16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나를 그토록 이토록 저토록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신데, 내가 힘들어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왜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할 때 반드시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면서 위로해 주십니다.
여러분, 야곱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서 멀리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 밧단 아람으로 급히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혼자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길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그것을 베개로 삼고 누웠습니다.
밤하늘에는 영롱한 별들만 반짝이고 있습니다. 야곱은 밤하늘을 이불 삼고, 딱딱한 땅바닥을 요로 삼아서 드러누웠습니다. 너무나도 스산하고 불편했습니다. 또 부모님이 계신 집이 무척이나 그리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 자기 혼자만 있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외로웠습니다. 또 형 에서가 언제 쫓아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심정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야곱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역시 희망의 꿈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까 사닥다리 하나가 높이 서있었습니다.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나님과 야곱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혼자인 줄 알았더니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보시고 있었습니다. 그 사닥다리 꼭대기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하나님은 낮선 곳으로 여행하는 야곱과 늘 함께 하시면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시며, 그를 장차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야곱은 그 꿈을 붙들고 모든 시련을 다 이겨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힘들고 어려워 할 때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찾아와 주시며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꿈을 늘 새롭게 하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여러분, 병든 자가 낫기를 원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뜻밖에도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겠습니까? 아마도 그 병자는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고생했으니까, 마음속에 희망이 다 사라져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낫기를 원하는 마음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병든 지 일 년 이년이라 야지요, 오 년, 십 년 이라야지요? 무려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고생을 했으니까, 그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다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낫고자 원하는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서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의 병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걸어갔습니다.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힘들 수도 있습니다.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힘들 수도 있습니다. 마음대로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약속이 멀어진 것 같아 의심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 각자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 옛날 요셉에게, 아브라함에게, 야곱에게, 그리고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도 희망을 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희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혹시 이 외국 땅에서 희망이 줄어들었습니까? 그래서 삶의 의욕이 떨어졌습니까? 사람들 만나기도 싫어졌습니까? 이때 희망의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희망의 하나님께 희망을 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희망을 주시고 당신을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