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라. 자랑하지 말라.

날짜: 
2024/11/10
말씀: 
렘9:23-24
말씀구절: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유치원생 사내아이들이 각각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수영할 때 잠수를 30초나 할 수 있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합니다. “응- 우리 할머니는 잠수를 3분이나 할 수 있어. 우리 할머니는 옛날에 해녀였어.” 그러자 다른 아이도 말합니다. “우리 삼촌은 작년 여름에 물속에 들어가서 아직도 안 나오고 있어.”

여러분, 우리가 여기 캐나다에 와서 살다보니 한국의 동양문화와 캐나다의 서양문화의 차이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랑하는 문화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동양문화는 자기가 웬만큼 실력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겸손히 낮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서양문화는 자기의 실력을 조금은 더 과장하여 떳떳이 나타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동양 사람은 좀 소심해보이고, 서양 사람들은 좀 당당하고 우월해 보이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하고 처음 운동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골프를 할 때도 한국 사람이 자기는 ‘보기 플레이어’라고 하면 그 사람은 거의 싱글 정도 치는 사람입니다. 싱글이면 아주 잘 치는 편이지요.

그러나 캐나다 사람은 그 반대입니다. 자기 스스로 ‘싱글 플레이어’라고 하면 그 사람 거의 ‘보기 플레이어’입니다. 뭐- 보기 플레이어도 꽤 괜찮게 치는 사람입니다. 성도님들 중에 저의 골프 실력을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는데 저의 경우는 ‘백돌이’입니다. 이게 한국 문화로 하면 ‘보기 플레이어’라는 뜻입니다.

반면 캐나다 문화로 하면 같이 골프치기가 좀 산만하고 짜증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저는 괜히 성도님들 시험에 빠트리지 않게 하려고 성도님들과 절대로 골프를 안칩니다. 목사님들하고만 칩니다. 그러니 저보고 같이 골프치자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 서로 스트레스 풀려고 운동하는데 괜히 짜증나고, 눈치 보이고, 민폐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한국 말 중에 ‘팔불출’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내세워서는 안 되는 여덟 가지’라는 뜻입니다. 즉 그 여덟 가지를 내세우면 ‘못난이, 팔푼이, 모자라는 사람, 바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그 여덟 가지가 뭘까요? 1. 자기 자랑 2. 마누라 자랑 3. 자식 자랑 4. 학벌 자랑 5. 가문 자랑 6. 재산 자랑 7. 형제 자랑 8. 친구 자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랑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처럼 성경은 적극적으로 자랑하라고 하는 것들도 있고, 절대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먼저 자랑하지 말 것들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성경에 보면 지혜 특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대해 굉장히 좋은 말로 칭송을 하며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것저것 구하는 것 중에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렇게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께 아주 큰 지혜를 받았으니 그 지혜를 떠벌리고 자랑해야 할까요? No. 아닙니다. 지혜는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알려집니다. 그리고 ‘지혜’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누구지요? 예- 솔로몬 왕입니다. 그런데 그런 뛰어난 지혜의 사람도 나중에는 이방 아내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다가 끝이 안 좋았으니 참으로 미련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즉 자기의 똑똑함, 자기의 명철, 서울대, 하버드대, 박사... 뭐- 그런 것 자랑하지 마십시오. 죽을 때가 되면 혹은 그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사람이 진짜 똑똑한 사람인지 아닌지 드러나게 됩니다. 혹은 죽고 나서 아주 오랜 후에 나중에 역사가 알려주고, 최종적으로 하늘나라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똑똑한들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 멍청이에 불과합니다. 고로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한 개구리가 시냇가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이 너무나 기근이 심하여 자기가 살고 있던 시냇가가 다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더 큰 강가로 이민을 가야합니다. 그러나 그곳까지 너무나 멀어서 도저히 개구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미에게 부탁을 합니다. “두루미야, 네가 나를 저 큰 강가로 데려다 줄 수 없겠니? 여기 작은 막대기가 하나 있는데 그 한쪽을 네가 입으로 물고, 다른 한쪽을 내가 입으로 물고 매달리면 될 것 같은데... ” 그래서 진짜 개구리의 말대로 하니까 세상에- 최초로 하늘을 나는 슈퍼맨, 아니 슈퍼개구리가 탄생했습니다.

땅 밑에서는 다른 개구리들이 너무나 부러워하며 박수를 치며 “아니, 저런 지혜와 아이디어를 누가 냈지?”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을 나는 그 개구리가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을 크게 벌려 “내가 했지.”라고 말을 하는 순간 그 개구리는 땅에 떨어져 퍽- 소리를 내고 죽고 말았습니다. 즉 아무리 자기의 지혜가 뛰어나도 그 지혜를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한 용사는 자기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옛날 구약시대에는 싸움을 잘하고 힘이 센 군대장관이 영웅이 되고 왕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용사는 자기의 힘과 용맹함을 뽐내면 뽐낼수록 더욱 지위가 높아지고 출세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그 힘과 용맹함을 떨치려고 나서다가 결국 개죽음을 당하고 목이 잘리는 경우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힘센 사람’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골리앗과 삼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이 세고 용맹한 이런 사람들도 결국 그 용맹함으로 인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싸움 잘하고 용맹한 사람이 자기의 힘을 믿고 날뛰면 오늘날에는 조폭이나 깡패가 되기 쉽고, 도리어 칼침을 맞거나 총에 맞아 죽을 위험이 높습니다. 어느 개미 마을에 아주 힘이 센 개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개미들이 쌀 한 톨을 가까스로 드는데 이 힘센 개미는 쌀 두 톨을 혼자서 거뜬히 들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개미들이 “너는 왜 그렇게 힘이 장사니?” 하고 그 개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개미는 자기가 힘이 센 것을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도 좀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개미는 날을 잡아서 시장을 갔습니다. 그는 자기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한껏 뽐을 내며 시장의 길을 가는데... 그만 행인 중 한 사람에게 밟혀서 찍- 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즉 힘자랑은 금물입니다.

또한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자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뭐- 돈 많은 부자가 되면 이래저래 편안하고 편리한 것이 많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이코노미 클래스보다 비즈니스 클래스가 더 편안하고, 퍼스트 클래스는 훨씬 더 편안합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내릴 때에도 한국 사람들은 먼저 내리려고 아직 비행기가 완전히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미리부터 일어서고 서두릅니다. 제가 비행기에서 가장 빨리 내리는 비결을 가르쳐 드릴게요. 그거요. 퍼스트 클래스 손님부터 먼저 내리고, 그 후에 비즈니스 클래스 손님이 다 내리고 난 다음에 맨 마지막에 이코노미 클래스 순서로 내립니다. 즉 이런 경우 돈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부자가 되서 자기의 부함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꿔달라고 합니다. 잘못하면 사기꾼, 도둑, 강도가 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절대 자기의 부함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숨기는 것이 좋습니다.

구약시대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그랬습니다.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년에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겸손히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가 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에서 사신들이 축하차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그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들을 다 보여주며 자기의 부함을 자랑하고 과시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왕을 책망하며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히스기야에게 전해줍니다. “네가 자랑한 그 보물들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갈 것이라.”(왕하20:17)

결국 이 예언대로 나중에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해서 그렇게 히스기야 왕이 자랑하며 보여준 왕궁의 모든 보물들이 다 노략질을 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 캐나다로 이민 온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 내용은 별로 상관이 없겠다.”

아- 그러지 않습니까? 돈 많은 부자들은 죄다 미국으로 가고, 밴쿠버나 토론토로 가잖아요? 요즘은 밴쿠버나 토론토에서 캘거리로 이주해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거 왜 그럽니까? 가장 큰 이유가 밴쿠버나 토론토보다 여기 캘거리의 집값이 많이 싸니까 오는 것 아닙니까?

즉 돈이 없어서 오시는 분들이니까, 자랑할 만큼의 돈도 없을 테고, 자연히 자기의 부함을 자랑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혹시 누가 알아요? 여러분 중에 나중에 큰 부자가 될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를 위해 이 말씀을 새겨들으십시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해보십시오. “내가 부자가 되면 절대로 나의 부함을 자랑하지 않겠다.”

자- 그리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9:24절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세상에는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특히 의학과 과학지식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많은 편리함과 안락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 지식들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그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이 영생을 얻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길은 오직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그런 의미로 성경은 세상 학문을 ‘초등학문’이리고 하며(골2:8,20)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며, 가장 뛰어나고, 가장 존귀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잠1:7, 9:10)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과학자들의 강의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특히 양자역학이나 천체 물리학 같은 최신 과학 지식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에 심어놓은 그 무궁무진한 지혜와 지식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측량을 할 수 있어서, 보다 이성적으로 납득이 되고, 감탄이 저절로 나오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런데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그런 신비하고 놀라운 과학 지식을 연구하고 자세히 알면서도 그런 과학 현상과 원리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 나는 저 신비한 우주의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알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과학지식을 아는 것보다 그 과학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면서 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주는 이 일을 하는 것에 크게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여러분도 나름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분의 성품이 사랑과 공의와 정직임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내가 크게 좋아하며, 나도 그분을 본받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런 하나님을 내 삶속에서 전하며, 그들에게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주기 위해 산다는 것, 세상에 이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분명히 하나님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아멘.

결론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귀영화나 내 실력과 내 능력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평생토록 자랑합니다. 더욱 많이 자랑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한국 땅, 캐나다 땅,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자랑하며 인생의 가장 큰 보람된 일을 하다가 하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쓸데없이 세상 것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매우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자랑하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자랑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가르쳐주시며, 그 성품을 우리가 본받으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전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