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날짜: 
2002/12/08
설교: 

제 목 : 꿈과 현실
본 문 : 눅 16:10-12

여러분, "꿈을 가져라 !" 아니면 "꿈 깨라 !" 라는 이 두 가지 상반된 말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
'꿈을 가져라' 라는 뜻은 희망을 잃지 말고 내일을 바라보고 전진하라는 미래지향적인 말이고, '꿈 깨라'라는 뜻은 괜히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며 나아가라는 말임.

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은 정녕 꿈의 하나님이시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주셨음. 그리고 예수님도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내일을 바라보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에도 꿈을 꾸게 하신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음.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저와 여러분이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음. 오죽하면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잠29:18)고 까지 말씀하고 있음.
즉 내일에 대한 꿈이 없는 백성은 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그저 짐승처럼 본능에 의지해 살다가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면 자칫 내일에 대한 꿈도 성취하지 못하고 오늘의 세계에서도 뒤떨어지는 낙오자가 되기 쉽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내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오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의 좋지 못한 현실까지도 바르게 수긍하며 오늘에 더욱 충실하므로 내일의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 어학 연수를 온 유학생들에게는 한결같이 '영어를 잘 했으면 좋겠다.' 하는 꿈이 있을 것임.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늘 힘들지만 공부해야 함.
만약 오늘에는 충실하지 않고 단지 '내일 나는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나님, 믿습니다 !' 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 "애야, 빨리 꿈 깨라 !"

유학생뿐만 아니라 이민자들도 이곳 캐나다에 올 때에는 모두가 꿈이 있음. 특히 한국의 극심한 공해를 비롯해 잘못된 문화,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제도, 뒤처진 의료제도,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생활 등이 싫어서 이곳에 이민 오신 분들에게는 일단 영주권이 나와 캐나다에 도착하여 맑은 공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그 꿈이 어느 정도 성취되었을 것임.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캐나다에 올 때에는 이런 것들말고도 각자 또 다른 꿈이 있지 않습니까 ?

이전에 캘거리 연합 예배를 드리는 중에 강사 목사님이 '아주 큰 부자는 여기 이민 오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음.
즉 이곳에 이민 오신 분들 중 대부분은 직업이나 사업 없이 놀고 먹으면서 평생을 살 정도로 부자는 아니라는 것임. 다시 말해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직장과 사업이라는 현실에 부딪혀야만 함.
물론 한국에서 이 외국 땅에 오기 전에 각자가 어떤 직장이나 사업에 대한 구상과 함께 영롱한 꿈을 품고 왔을 것임. 그리고 그 꿈이 마음먹은 대로 모두가 형통하게 되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그래서 이 외국 땅에서 먹고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나아가 이민 사회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하늘나라의 지점인 교회에서도 훌륭한 성도라고 인정을 받으면 할렐루야가 아닙니까 ?

그러나 이곳 외국 땅에 어느 정도 지내다보면 한국에서 품었던 이민 생활의 꿈이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지금의 내 실력, 내 신앙, 내 기도, 내 인격, 내 경험, 내 자본이면 이 외국 땅에서도 나의 꿈을 성취할 수 있을 거야 !' 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막상 이곳의 상황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영어를 잘했다 하더라도 이곳 본토인의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도 많고, 문화의 차이로 인해 실수도 하게 되어 자존심도 상하게 될 때도 있고, 법률도 제대로 몰라 선뜻 자신의 계획과 꿈을 실행하기도 쉽지 않고, 나아가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인종차별을 느낄 때면 '내가 왜 이 땅에 왔던가 ?' 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을 것임.

그리고 캘거리가 지리상으로 북반부이다 보니 겨울의 어두움과 캄캄함이 오래 지속되고 나아가 영하 30도 이하의 혹독한 겨울 추위가 계속될 때, '야, 여기도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 하고 느끼게 됨.
즉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이 외국 땅의 현실이 어쩌면 한국보다 더 힘들구나 !' 라는 깨달음이 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 깨닫고 오늘에 더욱 충실하며, 오늘에 더욱 인내하며, 오늘에 더욱 감사하며, 욕심과 탐욕을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그러나 이곳의 현실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오늘에는 충실하지 않고, 오늘에는 감사하지 않고, 다만 내일에 대한 꿈만 집착하고 불평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불안하고 안타깝게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 오산리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한 적이 있었음. 그때 저는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것저것을 하나님께 요구했음.
그러자 하나님이 '다 주었느니라 !' 라고 음성을 들려주셨음. 저는 너무나 좋아서 집에 내려와 '어머니, 하나님이 저에게 다 주었데요 !' 하고 입에 거품을 품고 자랑을 했음.
그 당시 저는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을 직접 들었으므로 저의 꿈이 아주 쉽게 당장 이루어질 줄 알았었음. 그런데 하나님은 그 꿈을 당장 쉽게 이루어 주지 않고 오히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훈련 과정을 거치게 만드셨음.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하고는 아주 정반대의 현실에 부닥칠 때도 있었음. 그리고 그때 저는 수없이 하나님께 따졌음. "하나님, 왜 그러는 것입니까 ?"
그 당시 '왜 ?' 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시원스럽게 대답을 해 주시지도 않으셨고, 현실의 문제도 내 소원대로 풀어 주시지도 않으셨지만 지금에 와서 더욱 확실하게 깨닫는 것은 오늘의 어려운 현실도 하나님이 장차 나의 꿈을 이루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과정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임.
즉 하나님이 주신 꿈은 현실이라는 필수 과정을 밟아야 성취가 됩니다. 학생이 나누기 곱하기를 터득하기 위해 먼저 더하기나 빼기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듯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통과를 해야만 함.

오늘의 본문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느니라."(눅16:10)고 말씀함. 즉 오늘의 현실이 비록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임.
반면 오늘 자기의 몫이 작다고, 오늘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주어진 작은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내일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내일의 꿈도 결코 성취되지 못한다는 것임.

여러분, 이러한 말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눈물 모아 한강' '티끌 모아 태산'
'Step by step goes a long way.'
만약 어떤 사람이 오늘은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내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꿈만 꾸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빨리 꿈을 깨어야 함.
자고로 훌륭한 사람들이 되고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꿈만 꾸고 오늘은 부인하고, 오늘에 불평하고, 오늘을 교만하고 나태하게 지내는 그런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음. 비록 오늘이라는 현실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며 충실되게 겸손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결국 훌륭한 업적도 이루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도 된 것임.

혹 어떤 분들 중에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음.
"하나님, 나에게 10억을 주면 그것을 하나님께 다 바치겠습니다. 한번 믿어 보시라니까요 ?"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1억이 있는데 그것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내일 10억을 몽땅 하나님께 받칠 수 있겠습니까 ?
오늘 자기 돈 1억이 있을 때 그 물질을 바치는 사람이 내일 10억이 생기면 그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 아닙니까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질의 축복을 받기를 꿈을 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느냐 하면 오늘의 재물에 충성된 사람에게 내일의 재물도 맡기시는 것임.
고로 본문에도 이렇게 말씀함.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16:11)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물질의 축복을 받기를 꿈꾸십니까 ?
오늘 한 푼 있을 때 그 물질을 바르게 쓰십시오.
내일 두 푼이 생겨야 바르게 쓰겠다고 헛된 꿈을 늘어놓거나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오늘의 한 푼에 대해 바르게 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내일의 두 푼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두 푼이 생길 때 그 두 푼을 바르게 쓰는 사람에게 장차 더 많은 물질도 맡기시는 것임.

또한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함.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16:12)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회사의 사장이 되어 누구를 진급시키려 하거나 혹은 자신의 사업을 맡길 때 누구를 들어 사용하겠습니까 ? 내 것이 아니라고 함부로 회사 물건을 파괴하거나 도적질 해가고 불충하는 사람을 쓰겠습니까 ?
아니면 비록 내 회사가 아니어도 정직히 성실히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원을 쓰시겠습니까 ? 그 해답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원으로 있을 때, 즉 현실에는 불평하다가 '에이, 나중에 내가 회사를 세워 사장이 되면 그때 충성하면 되지. 지금 회사는 내 회사도 아닌데 잘하면 뭐해, 적당히 해야지 !' 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나중에 자기가 세울 회사를 위해 현재의 회사에 있는 것을 슬쩍 도적질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과연 그 사람이 회사를 세울 때 복을 주시겠습니까 ?
즉 오늘 내가 회사의 사장이 아니더라도, 오늘 내가 높은 위치에 앉지 않더라도 오늘에 충실하는 사람에게 내일에 대한 기회와 축복이 주어지고, 오늘 착하고 바르게 마음을 먹고 충성하는 자에게 내일의 꿈이 성취된다는 것임.
고로 이 외국 땅에서 자신의 영롱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이라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한 당신에게 내일의 대가는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