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대로 되라

날짜: 
2003/02/09
설교: 

제 목 ; 너희 믿음대로 되라
본 문 ; 마 9:27-31

하루는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의 뒤를 쫓으며 크게 소리질러 말을 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의 외치는 소리에 즉시 반응하시고 응답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심하게 그냥 집안으로 쏙 들어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두 소경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기까지 따라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돌이켜 그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
이 때 소경들이 "주여! 그러하외다."하고 아주 확신 있게 대답을 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그 말씀 한마디에 그들의 눈이 즉시 떠져서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타깝게 소리치며 자비를 구하는 두 소경에게 "아이고, 불쌍하다. 그 동안 소경으로 지내면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 이리 오너라. 이제 내가 너희를 즉시 치료하여 주마." 하고 말씀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고 먼저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두 소경의 간절한 소원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지만 먼저 저들의 신앙을 타진해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두 소경과 같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이 두 소경처럼 "주님이 우리의 눈을 반드시 치료할 수 있다." 라는 확신을 갖고 절대적인 신앙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연한 생각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마치 649 복권을 사면서 "재수가 좋으면 나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할렐루야 !"라는 아주 막연한 기대감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막연한 기대감도 없이 "에이, 오늘 교회에 안 나가면 또 그 잔소리 ! 어이구, 듣기 싫어 !" 혹은 "에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교회 가자 !" 하고 그냥 끌려나오는 사람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기적과 응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보다 확실한 기대감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내 눈을 고침 받을 수 있다. 예수님에게 나아가면 내 인생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슬픔과 어두움에서 기쁨과 빛으로 바뀌어진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여, 믿습니다."라는 분명한 믿음으로 나아와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 두 소경들은 보기를 위해서 아마 별 수단, 별 방법을 다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눈은 여전히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조금 전에는 죽은 소녀까지도 살리기까지 하셨어 !"
이런 소문을 들은 이 두 소경들이 "야, 우리도 한번 예수님을 만나러 가볼까 ? 혹시 우리 눈을 고칠 수 있을는지 모르잖아 ? 아, 못 고치면 할 수 없고 ! 까짓 것 밑져야 본전이라는데 가서 한번 사정이나 해보자 !"
뭐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에이, 예수님 믿는다고 병이 낫는가 ? 그러면 죽을 사람 하나도 없게 ?" 하면서 아예 예수님에게 나아오지도 못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당신께 나아올 때 단지 50 % 즉 반신반의하며 나오는 것보다 100% 확실한 믿음을 갖고 나아오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6절에도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우리는 내 눈앞에서 다른 병자가 낫는 것을 분명히 목격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확실한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에이, 예수님이 그 사람의 병은 고치셨지만 내 병은 고칠 수 없을 꺼야 ! 내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고 손을 들었는데 뭐 ! 혹시 재수가 좋으면 고칠 수도 있을는지도 모르지 !"
뭐 이런 생각을 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에 두 소경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즉 "내가 수많은 병자를 고쳤는데 너희들의 그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느냐 ?"라는 뜻입니다.

물론 처음에 소경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장차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된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피상적인 지식에 불과하고 온전한 신앙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즉 지식이 곧 신앙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저들에게 깨우쳐 주시며 저들의 신앙을 타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일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이 생길는지 모릅니다. 사업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결과는 모릅니다.
이러한 때 주님께 기도를 드리며 구하지만 막연한 기대를 걸뿐이고 속마음으로는 "이 일만은 주님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꺼야 !"라고 불신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단지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구하는 것 뿐 입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 주일 예배 시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며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주문을 외우듯 형식적으로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옛날 성경 속에서만 나타나신 분이시고 지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신 하나님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수없이 고백을 하지만 매사에는 불신과 부정의 소리를 같이 발하는 모순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이 물음에 스스로 한번 대답을 해보십시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
만약 이 물음에 "글쎄요. 성경 속에서는 믿지만 현실에서는 안 믿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외국 땅이에요 ? 아무리 예수님이라고 해도 이 일은 안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주님은 굉장히 섭섭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음에 본문의 두 소경처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믿습니다."라고 100 % 확신하는 대답을 한다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여러분,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라고 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여, 믿습니다."라고 입으로는 대답을 잘 하지만 현실과 행동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우울해하고, 또 다시 부정과 불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지적으로는 인정을 해도 실제로는 아직 의심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한국에 줄타기로 아주 유명한 남사당패의 줄타기 광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많은 관중 위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번 한 뒤에 그는 관중석에 있는 한 소년에게로 와서 "너는 내가 너를 안고 저 줄 위에서 걸어갈 수 있다고 믿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예, 믿습니다."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광대는 "그럼 나와 같이 가자."하고 그 소년을 안으려 하자 소년은 "싫어요 !"하고 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소년은 분명 조금 전에 광대가 다른 소년을 안고 줄 위를 걸어가는 것을 보았으므로 광대의 재능을 믿기는 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그에게 맡기기는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란 단지 지적 인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전폭적으로 자신을 주께 내어 맡기는 행위가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은 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일에 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옛날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것은 확실히 믿으면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실 것을 믿으면서도 지금 자신의 병은 고쳐주실 것은 별로 기대하지를 않습니다.
옛날 하나님이 수많은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은 믿지만 자신에게도 그 기적이 나타난다고는 별로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직접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는 못하고 맙니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할까요 ?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내 소원을 들어 줄리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심과 두려움이 생기고 자신을 주님께 전폭적으로 맡기지도 못하는 불신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줄타는 사람이 관중의 환호와 박수를 받을 때 그에게 안겼던 소년도 함께 박수를 받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고 맡기면 주님의 승리가 바로 우리의 승리이고 주님의 영광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고로 주님께 전폭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생활,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외국 땅에서도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실패의 원인은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지혜, 능력, 기적 그리고 축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예수님도 자라나셨던 나사렛 마을에 가셨을 때 동네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많은 권능을 행하실 수가 없었습니다.(마13:58) 즉 주님의 권능은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생각나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때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품에 안기어 자신을 기쁨으로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좀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만 이런 글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1979년 9월 6일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에 1등으로 당선된 셰릴 프리위트(Cheryl Prewitt)양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 왼쪽 다리를 다쳐서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불구자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그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세포가 죽었기 때문에 발육이 정지되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2인치나 짧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뛰어난 용모를 아까워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열심히 교회에 다님으로써 훌륭한 신앙의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던중 1974년 10월 21일 미시시피주의 잭슨시에서 열린 부흥회에 그녀는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300여명이 참석자 가운데 섞여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자기 다리를 낫게 해 달라고 열심히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 자기의 왼쪽 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 보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인치나 짧던 왼쪽 다리가 오른쪽과 똑같아졌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52대 미스아메리카로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미스 아메리카는 미스 유니버스나 다른 미인들과는 달리 용모만이 아니라 교양이 많은 사람이 당선되므로 거기에 뽑히는 사람은 더 명예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간증을 통해서 "주님 외에 누가 저를 고쳤겠습니까 ?" 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를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믿느냐 ?" 물으십니다.
그리고 "주여, 그러하외다."라고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도 믿음으로 대답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