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9:18-29 행복한 가정, 파괴된 가정
가정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많은 가정이 파괴되어 있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자기 가정에 대하여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가 10% 정도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가정이 파괴된 가정일까요? 다음과 같은 가정은 파괴된 가정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1. 식구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가정이 파괴된 가정은 아닙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남편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거나, 혹은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정이 파괴된 가정은 아닙니다. 어느 가정이나 시간문제이지 사람은 누구나 다 죽기 때문입니다.
2. 가난한 가정을 파괴된 가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가난할 때가 있고, 부할 때가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속 교훈집인 ‘탈무드’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명예도 아니다.” 즉 사람들은 가난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이혼당한 가정이 파괴된 가정은 아닙니다. 이혼하는 것은 나빠도 이혼당하는 것은 오히려 크게 위로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4. 병든 식구가 있는 가정을 파괴된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서양의 어떤 가정이든지 그리고 누구든지 병이 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늙게 되면 몸이 약해지고 병이 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파괴된 가정이며,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의 가정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노아의 가정은 상당히 좋은 특징이 있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1. 하나님에게 가장 인정받는 의로운 가정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만연할 때 노아의 가정은 죄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킬 때, 이 지구상에서 오직 노아의 한 가정 8식구만을 하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노아와 아내, 그리고 세 아들과 세 며느리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가정이 있지만, 그리고 그 모든 가정들이 죄악에 빠져 있을 때 노아의 가정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성결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개인, 의로운 가정, 의로운 국가를 인정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죄를 한 번도 안지은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니 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12장 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즉 죄와는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기를 좋아하며, 죄에 대하여 경계심을 갖지 않고 죄를 합리화하면서 사는 것은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지름길입니다. 오늘날 한국에 보면 많은 가정들이 죄로 인하여 파괴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잃은 것도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죄의 파괴력이 큽니다. 당시 노아의 가정은 죄로 인하여 파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의 파괴로부터 자신들의 가정을 보호했습니다.
2. 가족 전체가 합력하여 방주를 지은 가정입니다.
노아의 8식구들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 300규빗, 넓이 50규빗, 높이 30규빗입니다. 오늘날의 축구장의 1.5배입니다. 그런데 3층입니다. 그런 큰 방주를 노아의 식구 8명이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120년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만들었습니다. 가족들의 인내가 필요하고, 협동이 필요한 큰 작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라는 오해도 당하고 조롱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은 바를 실천하면서 가족들이 모두 협력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족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교회에서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최고로 인정하고 화목하게 지냈던 노아의 행복한 가정이 홍수 후에 엉망진창이 되고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 시초는 천하에 의롭다고 한 노아였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는 긴장이 풀어졌습니다. 술을 너무도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취하여 대낮에 옷을 벗고 잠을 잤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제일 먼저 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대낮부터 술 먹고 취하여 추한 모습으로 벌거벗고 있다고 가족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감추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첫째 아들 셈과 셋째 아들 야벳은 옷을 뒤로 가지고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스런 부분을 보지 않고 살며시 덮어 드렸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함의 넷째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습니다. 여러분, 함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마 넷째 아들인 가나안이 아버지 함과 함께 할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더욱 드러낸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가나안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가나안 일곱 족속은 우상을 섬기며 죄악에 물들어 늘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아무튼 노아는 축복해야할 손자를 저주했습니다. 저는 아직 손자를 보지 않았지만 손자를 보신 분들은 자식보다 손자가 더 예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예뻐해야 할 손자 가나안을 도리어 저주하였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노아의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가족 식구들끼리 서로 허물을 감싸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가정이 파괴되고 맙니다.
감옥을 내 집 드나들듯이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전과 16범이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드나드느라고 결혼도 못하였습니다. 어느덧 그는 4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바로 살아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드디어 착실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평생 처음 맛보는 행복을 맛보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문제로 부부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화가 난 두 부부는 감정적인 말을 쏟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극단적인 말들이 오고 가다가 여자가 말했습니다. “전과범이라 할 수 없지!”
이 말을 들은 남자는 견딜 수 없어 그만 감정이 폭발하였습니다. 갑자기 앞에 있던 리모콘으로 아내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습니다.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져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된 감정이 가정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아픈 곳을 건드리면 더욱 큰 상처를 느끼게 됩니다. 고로 부부가 싸워도 상대방의 아픈 곳이나, 치부를 드러내면서 싸우면 감정이 심히 상하게 되고, 이에 대한 치료기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미처 그 상처가 치료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그 상처를 건드리면 나중에는 부부라도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이 지내다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이웃간에, 교인들 간에 가까이 지내면 몰랐던 허물이 보입니다. 이때 그 허물을 드러내면 서로 상처를 주게 되고 서로가 파괴당하게 됩니다. 고로 부부가, 친구가, 이웃이, 교인들이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허물을 감싼다는 결단도 아울러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행복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이웃이 가까이 지내다보면 때때로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난다고 자녀를 저주까지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노아의 가정은 파괴당하고 맙니다. 만약 노아가 아무리 화가 나도 손자를 저주만 하지 않았다면 노아의 가정의 그렇게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한계를 지켜야 하는데 화가 나면 물불을 안가리고 죄를 짓기가 쉽다는 뜻입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특히 부부가 살다 보면 다툴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툼과 분노를 잠자리까지 가지고 가면 안됩니다. 미련한 여인은 부부싸움을 할 때 화가 난다고 분방을 합니다. 별거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나쁘게 몰아가고 맙니다. 성경은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부부가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그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로 시험하지 못하게 함이라.”(고전7:3-5)
여러분, 성경은 부부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분방을 하게 되면 사단의 시험에 들기 쉽다고 경고합니다. 즉 가정 파괴의 주범은 부부의 다툼과 분노를 그 날에 풀지 않고 잠자리까지 가져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조그만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고, 도리어 확대를 하고, 한계를 넘음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한 노아의 가정이 파괴된 배후에는 술이라고 하는 매개체가 있었습니다. 노아는 자신을 타락으로 몰아가는 술을 가까이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어찌된 영문인지 술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술로 말미암아 결국 자신의 가정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이스라엘의 교훈집인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루는 사탄이 와서 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라. 어머니를 죽이겠니? 여동생을 창녀로 팔겠니? 술을 10잔 마시겠니?” 그 사람은 어머니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여동생을 창녀로 팔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10잔 마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술 10잔을 마시고 나서 취하여 어머니를 죽이고 여동생을 창녀로 팔아 버렸습니다. 즉 술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노아는 950세까지 살았습니다. 처음 600년간은 화목하고 의롭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350년간은 파괴된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훌륭한 신앙의 가정이 파괴된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술이라고 하는 매개체, 노아의 수치를 드러내는 가족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녀를 저주하는 노아,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모습으로 파괴되지 않고 끝까지 행복하게 지켜지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한 가정, 파괴된 가정
날짜:
200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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