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8:1-8 속히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며칠 전 이런 뉴스가 신문방송에 보도되었습니다. “2008년 11월 15일, 중국 하이커우에서 목이 없는 여자 시신 한 구가 발견되어 경찰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현지 경찰에 의하면, 하이커우시 공안국이 15일 정오쯤 시멘트 길가의 사탕수수밭에 시체가 있다는 주민의 신고를 접수, 현지 파출소 경찰이 출동해 상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시체는 머리가 없는 25-30세의 여성이었으며, 사인은 타살이 확실시되었다. 사안이 매우 충격적인 만큼 시 공안국과 지방 분국은 특별수사대를 조직하는 등 각별히 수사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특수 경찰대도 수사에 투입되었다.
수사 결과, 피해자는 하이커우에 거주하는 30세 여성 모 아무개 씨로, 하이커우 문화예술극단 소속 배우로 밝혀졌다. 경찰은 타살자가 유부남 왕 모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포착, 그의 아내 왕 모씨(26)를 사건 용의자로 체포했다. 조사 결과, 남편의 애인인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어 온 왕씨는 11월 4일 새벽 덩 모씨(34)와 모의해 피해자를 살해 지점으로 유인, 살해한 후 목을 베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덩씨의 집을 급습해 체포했으며, 살인 혐의에 대한 일체의 자백을 받았다. 살인자들은 피해자를 살해 후 머리를 베어 내 다른 곳에 묻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경찰은 살인자들을 대동해 시체의 머리를 찾아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이런 말이 생각이 납니다. “여자가 원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와- 무섭다! 남자들이여- 바람피우면 목이 달아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우월시대라고 하기에 이 말을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요? “남자가 원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와- 무섭다! 여자들이여- 바람피우면 목이 달아납니다.”
아무래도 “여자가 원한이 맺히면”이란 표현이 “남자가 원한이 맺히면”이란 표현보다 좀더 리얼하고 무서운 느낌이 더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한이 맺히는 영화나 귀신 이야기를 보면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여자가 더 많은 것을 봅니다. 아무래도 여자는 성격상 남자보다 좀 내성적이고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힘이 없다 보니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큰 고통과 슬픔을 당할 때에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법을 즉시 취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마음에 더욱 원한이 맺히고 그로 인하여 나중에 그 원한이 폭발할 때에는 몸서리쳐질 정도로 무서운 장면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옛날 한국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성동마을의 어귀에는 방죽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곳엔 늪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늪에는 물귀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1562년(조선 명종 18년)경 그 마을에는 과거시험을 준비 중인 곽영음 이란 젊은 선비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양반 가문의 사람이나 집안은 가난하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곽선비를 흠모하는 강씨 성을 가진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곽선비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며 그 곽선비를 정성스럽게 보살폈습니다. 곽선비는 그녀의 도움으로 과거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그녀와 결혼을 하고자 약속을 했습니다.
이윽고 과거 날짜가 다가오자 곽선비는 한양으로 향했고, 강처녀는 울며 그를 배웅 했습니다. 곽선비는 과거 시험에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게다가 운이 좋아선지 한 관리의 눈에 띄어 그에게 자신의 사위가 될 수 없냐는 제의를 받았고, 곽선비는 기뻐하며 그 제의를 수락 했습니다. 그는 강처녀를 배신했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후 한양에서 약혼을 한 그는 고향을 잊고 살려고 했으나 고향에서의 일이 소문이 날수도 있어서, 고향으로 가서 강처녀와의 관계를 정리 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금의환향 했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습니다. 곽선비가 한양으로 간 후 강처녀는 늘 그를 기다리며 새벽마다 마을 성황당으로 가서 치성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와 같이 선황당으로 간 그녀는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이 마을 어귀의 조그마한 늪에 빠져 죽은 그녀를 발견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장례를 치렀으나 그 후에도 늪지 근처에서 성황당으로 향하는 강처녀의 모습이 보여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강처녀의 부모는 곽선비에게 영혼결혼식이라도 치러서 그녀의 혼을 달래 달라고 곽선비에게 부탁을 했지만 곽선비는 이미 그녀에 대한 애정도 없는데다가 관직에 있는 몸으로 미신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곽선비는 헛소문이 마을의 안녕을 해친다는 핑계로 사람들을 시켜 강처녀가 빠진 늪에다 돌을 쌓아 둑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늪을 반쯤 막았을 무렵 곽선비가 실종됐고, 다음날 곽선비는 늪에 하반신이 잠긴 채 죽어 있었습니다. 곽선비가 죽자 공사는 중단됐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에도 매년 총각 하나씩이 늪에 빠져 죽는 이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몇 차례 치성을 지내고 영혼결혼식을 하여, 강처녀의 원한을 달래고, 둑을 쌓을 수 있었는데, 그 후에도 비가 오고 궂은 날이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마을의 어르신들은 궂은날이나 어두운 밤에는 이 곳을 지나기를 꺼린다고 하네요.“ 이상 전설의 고향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귀신 사상은 전혀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예부터 한국에는 사람이 원한이 맺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된다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귀신은 때때로 죽은 사람과 똑같은 목소리를 흉내 내고, 죽은 사람의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력까지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에, 성경적인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원한이 맺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귀신론은 기독교에까지 침투해서 한국의
김기동 목사라는 분은 “귀신이란 제 명을 살지 못하고 죽은 불신자들의 영혼”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이단적인 귀신론이 나온 이유는 귀신들이 나타날 때 과거에 죽었던 인간의 모습을 입고 나타나는 현상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불신자들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신은 예전에 예수님을 잘 믿은 사람이나 천사의 모습을 입고 나타나기를 더욱 좋아합니다. 그래야 더욱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에는 일찍이 유교사상으로 말미암아 조상에 대한 제사 문화가 들어왔습니다. 혹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귀신은 종종 꿈속에서 죽은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애야, 왜 제사를 지내지 않니? 내가 배고파 죽겠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즉 자손들에게 조상이나 부모 공경 사상을 이용해 귀신이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귀신 숭배를 단호히 배격해야만 합니다.
이야기가 오늘의 설교 제목과 좀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만 귀신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바로 아는 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시 오늘의 주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아주 심한 상처를 입고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주어지지 못할 때 원한이 맺힙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원한’이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마 인생을 살면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이 땅에 살면서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은 아직 완전한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원한을 우리의 마음에 품고 살면 그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이나 육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응어리지고 원한에 사무친 마음은 우리에게서 기쁨과 행복을 뺏어갑니다. 고로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한 맺힌 것을 치료해 주십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시10:14)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단7:22)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렘3:58)
오늘의 본문 이야기입니다. 한 도시에 과부가 살았습니다. 남편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도, 명예도, 빽도 없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원한에 사무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한을 풀 수 있는 빽도, 돈도 없으니 변호사도 사지 못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재판장에게 가서 사정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재판관에게 찾아갑니다. 아침 일찍 집 대문 앞에서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 사무실에서 나오면 또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화장실에 갈 때에도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 이발소에 가도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 목욕탕에 가도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
그리고 또 그 다음 날도 졸졸 따라다니며 외칩니다. “재판관님,
제 원한을 풀어주소서!” 그렇게 계속 과부가 재판관을 따라다니며 졸라대자 재판관이 속으로 말합니다. “아이고, 노이로제 걸려 죽겠다! 과부여, 네 원한이 무엇인가? 내가 너의 원한을 풀어주마!”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18:7-8)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통한 일이 있어 마음이 응어리지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잘 아시고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당신의 원한을 하나님께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아뢰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요, 하나님께 합한 사람인 다윗도 인생을 살면서 원통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시142:1-2)
여기 캐나다 땅이 아무리 살기 좋아도 여기 역시 천국이 아닙니다. 여기도 억울한 일, 원통한 일이 생기고, 얼마든지 원한 맺히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은 우리들에게 고향 땅이 아니기에 더욱 큰 원한이 맺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귀신이 되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원한 맺히게 한 그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원한이 맺힌다고 사람이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우환과 원통함을 토해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앞에 원통함을 토해내고 아뢰면 그 억울한 것을 신원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18:7-8)
여러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당신의 원한이 곧 풀립니다. 자고로 하나님은 예부터 원한 맺힌 자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사정과 형편을 이미 다 아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외국 땅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도 다 아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우리를 넉넉히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속히 원한을 풀어 주리라.”
속히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날짜: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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