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면 더 많이 주어집니다.

날짜: 
2009/05/10
설교: 

마26:1-16 섬기면 더 많이 주어집니다.
일본인 여성작가 시노오 나나미는 1970년 이탈리아 의사와 결혼한 후 로마에 살면서 로마역사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녀는 30년 동안 연구한 끝에 로마제국 흥망성쇠의 원인과 로마인들의 삶을 정리한 <로마인 이야기>란 책을 썼습니다. 그녀는 그 책에서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나아가 거대한 로마제국을 건설한 후 1,000년 동안 찬란한 로마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로마가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잃게 되었을 때 패망하고 말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말은 프랑스 말로 '귀족'이라는 의미의 '노블레스'와 '의무'라는 의미의 '오블리제'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합성어입니다.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 혹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라는 뜻입니다. 초기 로마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족층일수록 평민들보다 봉사를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재산을 기부하고, 국가를 위한 세금도 더 많이 냈습니다.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어 귀족들 사이에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 동안의 2차 포에니전쟁 기간,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제일 먼저 기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가에 갖다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합니다.
또 최근에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싸웠던 포클랜드 전쟁당시, 영국의 앤드류왕자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또 작년에는 영국의 해리스왕자가 아프카니스탄에 파견되어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특권만큼 의무를 다한다.'는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오랫동안 유럽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사회를 선진사회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에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라든가, 전체 국민총생산량이라든가, 1년 경제성장율 등, 경제적인 측면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다른 측면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중국은 많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정도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경제는 많이 발전하지 않았어도, 법을 잘 지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맡겨진 책임을 성실하게 다하는 국민들이 많은 유럽 국가들을 선진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선진국민이라고 부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후진국 국민일수록 국가를 위해 감당해야 할 의무보다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특권에 더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선진국 국민일수록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특권보다 국가를 위해 감당해야 할 의무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관심을 더 많이 쏟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만, 그 중에 가룟 유다와 마리아 두 사람이 특별히 눈에 띱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룟 유다는 주님을 섬기는 일보다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복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복보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오늘 두 사람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가룟 유다
갈릴리 출신이었던 다른 열한 제자들과 달리, 가룟 유다는 유일하게 유대 출신이었습니다. 게다가 전혀 공부를 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다른 제자들과 달리, 그는 고등교육을 받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또한 어부나 세리 등, 당시에 천하게 여기던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그는 로마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리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수만 명을 먹이는 등,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믿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나라를 빼앗긴 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많이 배우고 경력도 화려한 자기가 정부의 중요한 요직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기대와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로마제국을 무찌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줄 알았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2절)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며칠이 지나 유월절이 되면 당시에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해 팔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 가룟 유다의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출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로서 더 이상 특권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먹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같이 14절과 15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여러분, 누가 먼저 이 제안을 했습니까? 가룟 유다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까? 대제사장들이 먼저 제안했습니까? 가룟 유다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테니 얼마 주겠느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결국 그는 대제사장들로부터 은 30냥을 받는 대신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가룟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이란 존재는 정치적 독립을 위한 메시아로서, 자기가 출세하기 위한 수단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기 위해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메시야로서의 가망이 없어지자, 과감하게 팔아먹은 것입니다.
2. 마리아
본문 6절과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본문에는 단순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장 3절에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여기서 '순전한 나드'란 '나르도 스타키스 자타만'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진 향나무의 뿌리에서 추출되는 향을 말합니다. 이 향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 등 인도의 일부지방에서만 서식하고 있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유통되고 있던 향유 중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비싼 향유를 무려 한 근이나 가져와서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 부어드린 향유를 가격으로 따지면 무려 300데나리온이나 되었습니다. 1데나리온은 근로자가 하루 일하면 벌 수 있는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300데나리온은 근로자가 먹지 않고 쓰지 않은 채 안식일을 제외하고 1년 내내 일해야 모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인데, 마리아는 그렇게 엄청난 금액의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리아의 이 행동은 정상적인 행동처럼 보이지 않고, 또 가만히 계시는 주님도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주위에 있는 제자 중 머리가 비상하고 계산이 빠른 가룟 유다가 나섰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 이하에 보면 가룟 유다의 반응이 나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으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1:4~6)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주님께 부어드린 향유가 300데나리온이나 나가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값비싼 향유를 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면 좋았을 텐데, 주님께 부어서 낭비해버렸다고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가 구제목적으로 300데나리온을 바치면 그 돈을 자기가 빼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룟 유다와 마리아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큰돈보다, 이제 곧 고난당하실 주님께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달랐습니다. 그는 고난당하실 주님께는 관심이 없고, 300데나리온이라는 큰돈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드린 여인은 예수님을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데 반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이용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입니까?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입니까? 혹시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은 채, 주님께 축복만을 구한다면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섬김과 봉사는 하지 않은 채, 축복만을 구한다면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믿고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마리아처럼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마리아처럼 주님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시간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본문을 계속해서 보면 값비싼 향유를 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면 좋았을 텐데, 낭비해버렸다고 마리아를 책망하고 있는 가룟 유다의 속마음을 주님께서는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리아를 칭찬하십니다. 다같이 12절과 13절을 보겠습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얼마 있지 않아 고난당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은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마리아의 헌신이 함께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복음과 함께 기억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단지 300데나리온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300데나리온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그녀의 행적이 알려지고, 복음이 전해지는 동안 그녀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섬긴 것 이상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언 3:9-10에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서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섬긴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창고가 가득하게 되며, 포도즙 틀에 포도주가 가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며,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합심 기도 제목은 새신자에게 친절히 인사하고,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며, 그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새신자를 잘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나를 본받아 다함께 하늘나라를 잘 섬기는 일군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같이 칭찬받고, 같이 축복과 상급을 받자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으로써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들도 섬김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당신에게 섬기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정성스럽게 섬기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섬기는 것은 나중이 되지 말고 늘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에 전도하지. 사업이 안정되면 그 때 가서 선교하지. 영주권 나오면 그때 가서 섬기지. 시험 끝난 후 그때 가서 교회에서 일하지." 등의 이유를 되면서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제가 12년 째 이민 목회를 하면서 봅니다. 혹 영주권이 없어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고, 사업이 어렵고, 가정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하는 분들 중에 기적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분들을 많이 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믿고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에게도 '특권만큼 의무를 다한다.'는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섬긴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기왕이면 마리아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잘 섬김으로 주님께 칭찬받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