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당하신 3대 고난

날짜: 
2010/03/29
설교: 

마26:36-46 예수님이 당하신 3대 고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예수님이 죄를 지어서, 잘못하셔서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타락한 인류를 저주와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자원하셔서 당한 대속적인 고난이었었습니다. 그 예수님의 고난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저주가 축복으로, 사망이 생명으로,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3대 고난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영적인 고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중에 가장 깊은 고난이 바로 영적인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이 하나님과 분열된 적이 한 번도 없었었습니다. 예수님은 만세 전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하나님과의 뜨거운 사랑과 교제가 끊어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때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죄는 필연적으로 형벌과 심판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비롯해 나의 죄, 너의 죄, 인류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따른 형벌과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형벌 중에 가장 큰 형벌은 바로 사랑하는 하나님과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당하는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힘들 때에,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에 가장 사랑하는 분, 가장 의지하는 분,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너무도 처절하셨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시편 22:1-2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치 아니하시나이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사람은 종종 친구에게 버림당할 수 있습니다. 애인에게 버림당할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에게 버림당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혹은 자녀와 부모에게 버림당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자살도 하려고 합니다. 그 큰 고통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사람 다 나를 버려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이 큰 슬픔, 이 큰 고통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 수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큰 고난에 처하고 심지어 사자 밥이 되어도 찬송을 부르며 담대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에는 아버지 하나님마저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너무도 철저하게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좋아했던 자상한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너무도 냉정하고 너무도 비정하게 예수님을 모른 척 했습니다. 이로 인한 그 큰 슬픔, 그 큰 당황함, 그 큰 고통을 예수님은 홀로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고난을 홀로 당해야 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가 되어 지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로 우리는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생각하며 눈물로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2. 심적인 고난
인생을 살다보면 종종 원수에게 배신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인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자로 부르고, 그를 신뢰하여 돈궤를 맡긴 제자, 같이 떡을 먹은 제자, 한국말로 하면 3년간 한 솥 밥을 먹고 지내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 배신으로 인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배신으로 인해 발가벗겨져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감옥에도 같이 가고 죽는데도 같이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다 도망갔습니다. 주님이 잡혀서 끌려갈 때에는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예수님 옆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만큼은 죽는 데에도 따라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도리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또한 그 동안 예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은 군중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자기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군중들의 모습을 보시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하고 주님을 찬양했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와 같이 극한 마음의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하신 것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절망과 탄식이 꽉 들어찬 세상에서 희망을 맛보며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환난가운데에서도 담대함을 가지고 승리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외국 땅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하며 밝게 살게 하기 위한 대속의 고난입니다.
3. 육체적 고난
예수님은 목요일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 후 잡혀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끌려가 심문을 받으며 매를 맞으셨습니다.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주먹으로 때리고, 수염을 뽑고, 발길로 차고, 온갖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시달림을 받고는 이른 새벽에 빌라도의 관청에 끌려가서 빌라도의 심문을 받고 급기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군인들에게 끌려가 머리에 길고 굶은 가시로 만든 관이 씌어져 머리와 얼굴에 피가 흘렀습니다. 또한 쇳조각과 뼛조각이 박힌 채찍을 맞아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졌습니다. 그 찢겨진 살갗에서는 선지피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너희가 병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병의 고통에서 놓여나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질게 채찍에 맞으신 후 예수님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심문 당하시고 매 맞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은 너무나 지쳐서 도저히 십자가를 지실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는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렇게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은 빨가벗겨서, 십자가에 눕혀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는 고통을 당하며 타는 목마름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오후 3시에 주님의 영혼이 떠나기까지 6시간 동안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실 때 군중들은 그를 향해 외쳤습니다. "네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을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다 구원했어도 자기는 십자가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모든 인류는 자기 죄로 다 죽어야 합니다. 고로 예수님은 남은 구원해도 자기를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저와 여러분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것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죄 너의 죄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영적으로 버림받고, 심적으로 처절한 고독과 절망에 처하고, 육체적으로 극한 괴로움을 겪으므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으면 구원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희생을 당하시고 그 무시무시한 죄악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많은 철학이 있습니다. 많은 교육이 있고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해 이 큰 고난을 감수하신 사랑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이 큰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면 보내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얼마나 아프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