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0-11)
제가 얼마 전 주일예배 때 말씀을 전하면서 유튜브(You Tube)에 있는 영상물 중, 두 개를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Getting prepared for the rapture(임박한 휴거를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25분짜리 영상물은 지난번에 같이 교회에서 보았습니다. 이 영상물은 우리가 어떻게 휴거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찾아서 꼭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Greatest Disasters(대재난)'이라고 하는 15분짜리 영상물입니다. 이 영상물은 지금까지 나온 재난 영화중에 특별히 재난 장면만을 모아서 편집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나는 장면, 별들이 지구에 부딪히는 장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장면 등, 여러 가지 재난들이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한국 영화중에 '해운대'라는 영화의 장면도 나옵니다. 특히 도로나 간판에 한국말이 나오니까 반갑기도 합니다. 제가 굳이 이 영상물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영상물을 보고 겁을 집어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성경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러한 재앙들이 글자로 표현이 되어서 아무래도 보는 것보다 이해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물질과 기술력으로 표현된 이러한 영상물을 보면 말세의 재난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빨리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딸에게 이 영상을 보여 주니까 제 딸이 놀랍니다. "와- 와- 으악! 아빠, 이게 진짜 앞으로 일어나는 거야?"
"그래,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것보다 더 심한 재앙이 앞으로 닥쳐온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너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제 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제가 덧붙여 딸에게 말합니다. "나도 이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재앙들이 다가오기 전에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어디냐?" 제 딸이 대답합니다. "하늘나라! 휴거!" "그래, 맞다. 맞아."
여러분! 사람들은 '하늘나라 즉 천국, 그리고 휴거'라는 말을 들으면 믿는 사람들조차 거부감이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좀 알아볼까요? 첫째, '하늘나라' 즉 '천국'이란 말에는 '죽음'이란 말도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다른 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분 어제 하늘나라에 가셨어!"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 분 어제 죽었어!"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늘나라=죽음'이란 공식이 성립됩니다. 고로 기분 나쁩니다. 나 죽기 싫다고요.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있어서 하늘나라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이 계신 곳이기에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입니다. 고로 우리들에게는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오히려 우리를 하늘나라 주님 계신 곳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하늘나라가 여러분에게 두려운 곳인가요? 아니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인가요? 얼마 전 우리 교회 이집사님 부부가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와서 이야기 합니다. "와- 거기가 천국입디다!" 여러분! 저는 하와이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좋긴 좋은가 봅니다.
여기 캘거리에서 영하20-30도 추위 속에서 지내다 영상 27-28도 정도 따뜻한 곳이니 당연히 좋겠지요. 그러나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하와이 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당장 하와이 가고 싶지, 천국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럽니까? 천국은 좋긴 좋지만 죽어서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이 싫다는 겁니다.
둘째, 사람들이 하늘나라나 휴거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겁니다. 한 마디로 이 땅이 좋은 겁니다. 돈도 제법 있어요, 건강도 있어요, 나 지금 잘 나가요. 그러니 이 땅에서 떠나기 싫다고요. 천국이 아무리 좋아도 좀 나중에 갑시다. 더구나 큰 꿈을 품고 살기 좋은 캐나다에 막 왔는데 하늘나라로 가라고 하면 괜히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마치 자격심사에 떨어져 강제출국을 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버림당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너 같은 것은 캐나다에 오지 말고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합니다. 더구나 이제 막 장가나 시집을 가서 한창 신혼을 즐기고 있는데 하늘나라로 가라고 하면 "뭐야, 이거? 왜 우리의 행복을 깨는 거야?" 하고 시큰둥합니다.
더구나 이제 막 어여쁜 자녀를 출산했어요.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까꿍!" 하고 행복에 젖어 있는데 "하늘나라로 가라. 휴거 하라."고 하면 내 사랑하는 자녀보고 죽으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강제로 이별당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 목사가 신혼부부나 갓난아기들이 있는 성도님들에게 하늘나라나 휴거 이야기를 하면 웬만큼 믿음이 있고 성경을 이해하지 않는 분들 외에는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든 사람은 도리어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처럼 믿음이 아주 좋아서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경우도 있지만, 오늘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도피의 수단으로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의 6.25 전쟁 시에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셋째, 사람들이 천국이나 휴거에 대하여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이 단어들이 주는 어감이 부정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이비, 이단 집단들이 하도 말세나 휴거 이야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물의를 일으키다 보니 '휴거'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납니다. 불신자들은 물론 믿는 사람들조차도 '휴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그리 고상하게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세나 휴거를 말하는 사람을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 못 말리는 광신자로 봅니다. 못 배워먹은 무식쟁이로 봅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어울리기 싫습니다. 그러기에 목사님들도 막상 휴거의 시기가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휴거에 대해 설교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다 보니 재림이나 휴거에 대하여 전할 메시지가 별로 없습니다.
저의 경우도 이런 설교를 이렇게 자주 한다는 것이 참 부담이 됩니다.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제가 목회한지 이제 25년이 됩니다. 저에게도 얼마든지 성도님들 듣기 좋은 설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요즘 저에게 너무도 강력하게 주님이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주님의 재림과 휴거를 준비시키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저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전하라고 하는 메시지를 제가 전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다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그 메시지가 왕이나 백성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때, 그들에게 불편한 메시지가 될 때에는 감옥살이도 하고, 죽임도 당했습니다.
요즘 저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웬만한 것은 성도님들의 의견을 묻고 양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강력하게 다가오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말씀합니다. "종아, 두려워 말고 전하라. 이 말은 너의 메시지가 아니라 나의 메시지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들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죽으신 분입니다. 그 분이 자기 종을 통해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목숨 걸고 챙기듯이 주님도 자기의 사랑하는 신부들을 목숨처럼 챙기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의 시대에 앞으로 큰 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아의 삼판과 같이 말세의 심판입니다. 이때 주님은 여러분들을 살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환난에서 미리 건져내야 합니다. 환난이 오기 전에 피난처로 미리 대피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피난처인 하늘나라에 안 가려고 합니다. 하와이로 휴가를 가는 것은 모두가 간절히 원하지만 하늘나라로 휴거가 되는 것은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하늘나라나 휴거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빨리 버리십시오. 하늘나라, 천국은 하와이보다 훨씬 더 좋은 곳입니다. 비록 죽음을 통해서 가는 곳일지라도 그곳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입니다. 하늘나라는 절대로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가 살아있을 때 오시면 우리는 죽음을 보지 않고 곧 바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님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고 갈망하며 기다렸던 휴거입니다. 휴거는 옛날부터 성도님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휴거 생각만 하면 위로를 받았습니다. 극한 고난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도 이런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세상아 잘있거라. 나는 가노라. 7년 환난 오기 전에 나는 가노라. 세상에 시달림도 이제 끝이고, 최후에 대승리는 이것이란다."
그러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휴거되어 올라간 사람은 역사상 딱 두 사람만 있었습니다. 아담의 7대 손자인 에녹과,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모든 성도님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휴거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그들의 시대에는 안타깝게도 주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고로 그들은 이 특권을 꿈만 꾸었지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잘하면 여기 있는 우리들은 이러한 특권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기가 막히게 좋은 시대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에 주님이 오시고, 우리가 깨어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럭키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이 어찌 참 신앙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휴거는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신랑신부가 만나는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이 날은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서 코피 터지도록 싸우는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주님께 책망 받는 날이 아닙니다. "너 왜 인생을 그 따위로 살았니?" 하고 주님께 야단맞는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신랑이 신부를 다정하게 포옹해주는 날입니다. "그 동안 이 험한 세상에서 사느라고 수고했다." 하며 위로해 주는 날입니다. 특히 말세의 고통 하는 시기에 잘 인내하며 참고 사느라고 애를 썼다고 나에게 상을 주시는 날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10)
주님은 다시 오셔서 일단 우리들을 이 땅에서 피신시키십니다. 즉 우리를 휴거시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가기 싫어하고, 휴거되기 싫어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이 땅에 남고 싶어 발버둥 친다면 어떡합니까? 결국 주님의 말씀처럼 하늘나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한 사람은 적게 되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제가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부연 설명합니다. 이 땅의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주님이 오실 때에 후회 없이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겁니다.
롯의 아내처럼 다시 이 땅을 뒤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늘 정리하면서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남하고 원수 진 것 있으면 신속히 풀고, 남의 돈 떼어먹은 것 있으면 빨리 갚고, 주님 일에 태만한 사람은 열심을 내고, 악한 사람은 좀 더 선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이 땅에 남아서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을 챙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가끔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 분의 일의 휴거의 경쟁률을 뚫고 휴거가 되라고 하는 말은 여러분의 가족 모두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휴거되기 위해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지, 여러분께 그런 경쟁률을 제시하여 여러분들을 미리 낙심케 하거나 시험 들게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늦지 않게 메시지를 주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리 믿음이 약한 분일지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충분히 가족 모두가 휴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안 돼!" 하고 미리부터 포기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다 휴거가 되기 위해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준비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후회 없이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열심히 사랑하고, 성도님들끼리 열심히 사랑하고, 적어도 더 이상 남하고 원수지지 마십시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할렐루야! 어떤 신학자는 교회도 7년 환난을 통과한다고 말을 합니다. 혹은 7년 환난 중, 전 3년 반의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순복음 교회를 비롯해 많은 교단의 목사님들이 교회가 7년 환난을 겪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에 두 번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혹 어떤 분들이 교회도 7년 환난을 당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7년 환난을 당하십시오, 그러나 나는 7년 환난 안 당하렵니다. 그 전에 주님 오시면 휴거되어 올라가렵니다."
어떻게 보면 조용기 목사님의 이런 말씀이 참 당돌하고 무례하게 들립니다. "그래도 조목사님과 반대로 말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신학자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칼로 두부 자르듯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나?" 저도 처음에는 조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 할수록 참으로 "조목사님이 맞구나!" 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 조목사님처럼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앞으로 다가올 7년 환난은 성도를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트레이닝이 아닙니다. 테스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글자 그대로 대환난입니다.(계7:14) 어린 양의 진노입니다.(계6:16) 고로 예수님의 신부요,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심판은 원수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 자기의 사랑하는 신부를 불 속에 던져 죽이고 나서 신부 없이 결혼잔치를 치루는 정신 나간 신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부 없이는 결혼식이 성립이 안 됩니다. 즉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7년 환난 전에 우리를 데리러 오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했습니다. 신부단장을 잘하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잘 준비하여 그날의 환난을 면하고 모든 식구들이 휴거가 되어 천국잔치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