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내니이까?(동영상)

날짜: 
2013/07/07
말씀: 
마26:21-25
말씀구절: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시41:9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막14:21, 요17:12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설교: 

마26:21-25 주여, 내니이까?

성경에 보면 예언이란 세계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차 미래에 될 일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가리켜 예언의 책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될 일을 자세하게 기록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많은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하여 미리 알고 싶은 것 중에 무엇이 있습니까?" 상당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로또 복권 일등 번호를 미리 알고 싶습니다."

중국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할 때 보면 조그맣고 달콤한 맛의 가운데가 찌그러진 과자가 나옵니다. 그 과자를 쪼개서 까보면 조그만 종이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대개가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보면 숫자가 여러 개 적혀 있습니다. 그 숫자가 무엇입니까? 로또 복권 번호입니다. 로또 복권을 살 때 그 번호로 한 번 시도해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그 번호로 시도해 보신 분이 있습니까? 어땠습니까? 꽝이었지요?

여러분! 내일 일, 장차 될 일을 미리 안다는 것은 인간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의 세계요, 신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점치는 귀신이 든 사람은 내일에 대하여 제법 맞추기도 합니다. "그래서 귀신같이 맞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 중의 신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될 일들을 단지 예언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될 일을 얼마든지 바꾸기도 하시고, 조정도 하십니다. 그리고 미래의 일들에 대하여 자기가 택한 사람들에게 미리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선견자, 혹은 선지자라고도 하는 분들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서 미래의 일들을 예언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선지자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즉 미천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장차 될 일을 가르쳐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17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오늘은 예언의 세계 중 저와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봅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들과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이 말에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하려는 거야?" 제자들은 각자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가룟 유다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주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는데 가룟 유다는 혼자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가룟 유다의 마음은 예수님은 주님이 아니고 단지 선생 중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주인에게는 배신하면 안 되지만 선생에게는 배신을 해도 좋을 듯싶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거침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다." 즉 " 그렇다. 바로 너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제자들이 이 대화를 들었습니다. 즉 가룟 유다가 범인입니다. 장차 예수님을 팔 자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배신자가 될 것을 모든 제자들에게, 그리고 가룟 유다 본인에게 공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제가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면 저는 가룟 유다에게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 너 그게 사실이냐? 너 미쳤어? 너 그러면 안 되잖아? 빨리 회개해라."

그리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그래, 바로 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돌이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인자를 파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분명히 경고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의 마음은 강퍅해질대로 강퍅해졌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 봅시다. 이번 캘거리 코스타 집회에서 목사님들을 위한 세미나도 있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강사였습니다. 캘거리의 한 목사님이 질문했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을 세우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사님이 대답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세우십시오. 장로 잘못 세우면 큰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무인도에서 살기가 힘듭니다. 감옥의 독방에서 살기가 힘듭니다. 왕따가 되면 죽고 싶습니다. 즉 사람은 살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유익한 만남이 되어야하고, 하늘나라를 세우는데 유익해야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가 그렇지 못합니다. "차라리 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나중에 후회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만남이 후회가 아니라 좋은 추억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타락한 인간의 성품으로는 서로에게 하나의 상처도 주거나 받거나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상처준 사람을 계속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용서 없이 사는 사람은 상대방이 계속 미워지고, 결국 스스로 고립의 길로 가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가룟 유다의 경우처럼 예수님을 배반하여 그가 지옥으로 가는 것을 손쓸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미리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용서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내가 배신자입니까? 내가 지옥에 갈 주인공입니까? 내가 바로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줄 사람입니까?"

여러분! 기분이 나쁘지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번 해보십시오. "주여, 내니이까?" 여러분의 그 질문에 주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너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혹시 주님이 "그래, 네가 말하였다. 바로 너다."라고 대답을 들으신 분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의 본문을 대하면서 여러분과 같이 이런 기도를 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저는 가룟 유다와 같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영등포 교도소에 예배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수백 명이 모여서 질서정연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옆에 사람과 잡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배드리는 중에 문자를 날리거나 문자를 쳐다보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목사인 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멘!" 하며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아멘 소리가 너무 커서 제가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전혀 죄를 지을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시무시합니다.

더구나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도 착하고 순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목을 보면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합니다. 살인, 강도, 강간, 폭력... 도대체 어찌하여 그들이 그런 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그가 특별히 다른 제자들보다 악해서가 아닙니다. 사단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그 마음을 지배하여 회개도 못하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나 사단이 역사하면 악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이 기도는 문제나 어려움에 내가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하고, 한편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작은 죄를 지으면 작은 형벌을 받고, 큰 죄를 지으면 큰 형벌이 따릅니다. 물론 예수님 믿으면 죄의 심판인 지옥을 피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 믿은 후에도 큰 죄에 빠지면 안 됩니다.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사단이 내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모두 가룟 유다가 될 죄성이 숨어있습니다. 나는 너에게 죄를 지을 수 있고, 너는 나에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힘들게 할 수가 있고, 네가 나를 힘들게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다가 예수님을 멀리하고 타락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누가 그럴까요? "주여, 내니이까?"

한국의 수사반장이란 TV 프로가 있습니다. 분명히 범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범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리송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범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겁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가장 힘들게 할 사람, 가장 큰 악을 저지를 사람이 하필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즉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먼데 있는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원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원수가 누구입니까? "주여, 내니이까?" 오늘 주님은 솔직하게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

얼마 전부터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이런 기도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주여, 살려 주세요. 저를 살려 주시고, 재를 살려 주시고, 아무개 성도를 살려 주세요."

여러분! 목사는 한평생 자기에게 맡겨준 성도들을 위해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여, 아무개 성도를 살려 주세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출애급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계속하여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모세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백성들을 살려주세요. 이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다 죽이시면 하나님의 이름도 이방인 가운데 조롱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죽이지 말고 살려주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깊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갇혀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 하고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십니다.

아니, 어떻게 그를 살릴 수 있느냐고 의심하며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내 능력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나의 자비함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살린다고 하면 이미 죽은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죽인다고 하면 팔팔하게 산 사람도 죽고 맙니다.

가룟 유다가 "랍비여, 내니이까? 내가 죄를 짓고 영원히 죽을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그래, 바로 너다."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오늘의 이 질문과 대답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지기를 원합니다. 사단이 강하게 역사하고, 회개의 길이 막히면 나도 가룟 유다와 같은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용히 눈을 감아봅시다. 그리고 주님께 한번 물어보십시오. "주여, 내니이까?" 이 질문에 주님이 무슨 대답을 하십니까? 오늘의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한번 점검하시고, 장차 시험에 들지 않도록 미리미리 깨어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