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제 딸이 15살 정도 되었을 때 저와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 말을 할 때는 제 딸이 꼭 영어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말이냐? "Dad, I told you."입니다. 번역하면 "아빠, 내가 말했잖아."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도 이렇게 반문합니다. "니가 언제 말했니?" 여러분! 목사님의 사명 중 하나는 성도님들에게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은 목사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그 결과 성도님들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하늘의 상급을 쌓아가게 됩니다. 반면 제가 전해주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면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 이리저리 방황하며, 그 결과와 결말이 좋지 않게 됩니다.
제가 여기 캘거리에 와서 16년 동안 있으면서 많은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계산해보니 주일 예배 설교만 800편 이상이요, 수요 예배 설교도 800편 이상이요, 금요 예배 설교도 800편 이상이요, 새벽 예배 설교까지 합하면 5000편 이상의 설교를 했습니다. 참 많이도 했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제 설교를 듣고 어는 정도 기억하고 있습니까? 더 나아가 어느 정도 들려준 말씀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혹시 이런 경우는 아닙니까? "목사님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때 저는 참 난감해하면서 제 딸처럼 이렇게 말하겠지요. "I told you.(내가 말했잖아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 앞에서, 그리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는 나도 있겠다."(마18:20)고 말씀하신 예수님 앞에서 제가 다시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전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니 "목사님,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안 가르쳐줬어요?"라는 원망의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는 항구 도시로서 지금의 터키 땅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 에베소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한때 '아볼로'라는 아주 유식한 성경학자가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보니 성도님들이 12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로부터 성경을 배워서 성경 지식은 제법 있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신앙의 맥알 머리가 없고, 전도도, 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삶의 실천 또한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자 그들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자- 여러분! 저도 지금 이 시간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해봅니다. "여러분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질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거침없이 '아멘!'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분들은 오늘의 에베소 교인들처럼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성령이요? 그게 뭔데요? 예수 믿으면 다 성령 받은 것 아닙니까? 저는 물세례는 받았는데... 그게 성령 받은 것을 의미하나요? 예수님 믿고 또 뭔가 받아야 하나요? 우리 교회 사모님 이름이 '김성령'인데, '성령을 받으라.'는 것은 사모님을 잘 대접하라는 말씀인가요? 불 키는 성냥과 성령은 같은 말인가요?"
혹시 이런 식으로 대답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런 분들이 나중에 저한테 이렇게 원망할 가능성이 많은 분들입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안 가르쳐줬어요?"
여러분! 오늘 잘 들으세요. 또 가르쳐 줍니다. 성부, 성자, 성령, 아시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냥 한 분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 세 분이 모여서 한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굉장히 어려운 말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삼위일체 하나님'
누구든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면 이단이 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나타나 자기도 하나님이다, 자기가 구세주다, 자기가 보혜사 성령이다, 하면서 삼위일체가 아닌 사위일체를 주장하면 그 사람은 확실한 이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든지,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라든지, 하는 것도 이단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 각각 역할분담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하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구속사역을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오셔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가르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각종 능력과 은사를 주시므로 우리가 힘 있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즉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고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그 사람은 장래가 밝은 것이고,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성령을 받아도 성령을 소멸하면 늘 시험 들고, 늘 상처 받고, 결국 신앙의 탈락자가 되기 쉽습니다.
고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 것은 예수님 믿고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초등학교 국어 실력입니다만 성령을 받은 체험이 없는 신학자나 목사님은 가끔 큰 실수를 합니다.
즉 "너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말은 예수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건 특별한 신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국어실력이면 분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르는 내용을 보면 압니다.
즉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님은 믿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했고, 그 뒤에 사도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니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신, 예수의 영, 보혜사(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가르치시는 분)'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한 사람과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을 볼까요? 여러분! 삼손 아시지요? 힘이 무지하게 센 장사, 맨손으로 사자도 죽이고, 나귀 턱뼈 하나로 무장한 블레셋 군인 천 명을 죽인 사람, 알아요? 몰라요?
이 사람의 능력이 어디서 나왔나요? 성경을 보니까 이렇습니다.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더라."(삿14:6)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삿15:14)
여기서 '여호와의 신'이란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즉 삼손의 큰 능력이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기생 들릴라의 집에 드나들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이 잘리니까 그만 성령이 떠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힘을 잃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즉 성령이 임하면 힘 있는 삼손이 되는 것이고, 성령이 임하지 않거나 성령이 떠나면 그냥 힘없는 평범한 삼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이런 예언을 합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삼상10:6)
즉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신, 성령이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고, 하나님께 계속 불순종하고 회개하지도 않고, 마음이 교만해지니까 성령은 떠나고 악신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에 맞아 스스로 칼에 엎드러져 죽고 맙니다. 즉 성령이 임하면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도 하는 좋은 왕이 되지만 성령이 떠나면 악신이 들고 최후가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들을 직접 본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걷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3년 반 동안 성경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어린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즉 아무리 기적을 많이 보고, 성경공부를 해도 성령을 받지 못하니까 진짜 중요한 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배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그런 연약함을 아시고 부활 후에 그들에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요20:22)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
그리고 제자들을 비롯해 120명의 성도님들이 열흘 간 열심히 기도회를 하다가 모두 성령을 받고, 죽으면 죽으리라 순교도 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성령 받지 않거나, 받은 성령을 소멸하면 시험에 잘 들고, 믿다가 의심이 오고, 믿음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약한 신자가 되고 맙니다. 지금은 바르게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하고, 받은 성령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결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반면 성령이 있음도 모르고, 성령을 받지도 못하면, 결국 믿음이 식고, 주님의 일도 제대로 못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과 상급하고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때 가서 "목사님,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안 가르쳐줬어요? 나쁜 목사님!" 하고 저를 원망하면 안 됩니다. 저는 오늘도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I told you."
여러분! 말세에는 하나님이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금요 예배도 열심히 나와서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성령을 받으면 그때부터 뭔가 변합니다. 그리고 이미 성령을 받은 분들은 계속 성령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