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뭔가 이해가 되지 않거나 남의 생각이 자기 생각과 다를 때 '왜?‘ 라는 질문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다보면 ’하나님,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선악과를 만들었어요?” “하나님,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해지도록 내버려두십니까?” “하나님,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수없이 ‘하나님, 왜?’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 ‘하나님, 왜?’라는 질문에 대해 때로는 하나님이 즉시 그 이유를 가르쳐 줄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즉시 그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고 나중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이유에 대해 아주 가르쳐 주지 않고,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부활의 그 날까지 해답을 미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왜?’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행하실 때 ‘너희를 위하여’ 좋게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불신과 오해는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불안과 염려는 평안과 안식으로 바뀌어 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에게는 외동딸이 있습니다. 이 아이가 어린이였을 때에 보통 부모가 자기 아이들에게 하듯이 저와 집 사람도 딸아이에게 늘 말합니다. "주희야, 밥 많이 먹어라." 그러면 제 딸은 싫은 표정을 하면서 대답합니다. “왜 엄마 아빠는 만날 나보고 먹어라 먹어라 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 부부는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애야, 다 너를 위한 거야. 아- 밥을 잘 먹어야 키도 크고 건강하지!” 그리고 이 아이가 자라나면서 우리는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애야, 공부 좀 해라.” 그러면 제 딸은 또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엄마 아빠는 만날 나보고 공부만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또 다시 이렇게 대답합니다. “애야, 다 너를 위해서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밥 많이 먹어라. 공부 좀 해라." 하고 말하는 것이 자녀에겐 때로는 납득이 안 가고, 자기를 귀찮게 하는 잔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부모의 마음은 다 자녀를 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 후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며, 계속하여 세상을 만드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마지막 6일째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은 '사람을 위하여'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너와 나를 위하여’ 세상을 만드셨고 에덴동산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산소를 채워 주셨고, ‘너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비를 내리시고 빛을 비취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에게 더 좋게 하기 위하여 일하시고 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로 드려라“ 그 당시 아브라함은 믿음이 자라났기 때문에 이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행하시는 일들을 낱낱이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뺍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는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런즉 네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아브라함은 처음엔 알지 못하였으나 순종하고 난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하, 하나님이 나에게 큰 복을 주려고 나를 시험하셨구나!”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하여’ 일하시는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비로소 하나님을 더욱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17살에 배다른 이복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를 하다가 또다시 그만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할 때마다 수없이, ‘하나님, 왜?’라는 질문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덧 아버지 품을 13년의 세월이 지나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에 그는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하, 하나님이 이래서 나를 고난에 처하게 하셨구나!“ 하고 깨달으며 좋으신 하나님을 보다 확실히 이해하며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에 대해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하나님,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도 정확한 대답이 있습니다. 바로 ‘너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축복하기 위하여, 너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너를 쓰기 위하여, 그리고 너를 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살다보면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때때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그리고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 질문에 대해 해답을 얻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외삼촌과 약속을 하고 7년 동안 외삼촌 밑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봉사의 대가로 드디어 결혼식이 열리고 야곱은 그토록 사랑하던 라헬과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 옆에 라헬이 아닌 외삼촌의 첫째 딸, 인물이 그다지 잘나지 않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은 ‘레아’라는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즉 야곱은 사기 결혼을 당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은 외삼촌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하나님, 왜?’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 야곱은 사기 결혼 당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외삼촌의 첫째 딸 레아를 통하여 6명의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중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유다 지파도 이 레아의 태에서 나온 것을 보며, “아하, 하나님은 다 나를 위하여 이렇게 하셨구나!” 하고 깨 닫으며 늘 감사하는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우리의 방법이 때로는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혼란에 빠져 ‘하나님,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까지 우리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목적이 ‘너희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신 것도 ‘너희를 위하여’ 된 것이며, 그가 채찍에 맞아 고난을 당하시고 가난하게 되신 것도 다 너희를 위하여‘ 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해 나타내신바 되었느니라.”(벧전1:20)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그리스도가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며”(벧전2:21)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나의 피요, 너희를 위하는 몸이니라.”(눅22:19-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본문) “그가 또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리라.”(요14:3)
예수님의 생애는 온통 ‘너희를 위하여’ 바쳐진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계속하여 ‘너희를 위하여’ 일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목적은 ‘너희를 위하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깨달음이 둔하여 납득이 안 갈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 분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다 알고 있고,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를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그 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지금도 너희를 위하여 일하고 있노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