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어린 아이의 신앙이 좋은 건가요? 어른의 신앙이 좋은 건가요? 우리는 어린 아이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까요? 어른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질문이 잘못 됐습니다. 즉 어떤 경우에는 어린 아이의 신앙이 좋고, 어떤 경우에는 어른의 신앙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주님,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이 한 어린 아이를 불렀습니다. "애야, 너 이리 와서 여기 한 가운데 서 보아라." 그 어린 아이는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 즉 어른처럼 쓸데없이 높아지려고 다투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낮아지며 겸손한 신앙이 좋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겸손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천국에서는 높게 쳐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의 신앙, 즉 겸손한 신앙이 좋습니다. 또한 어린 아이는 아무래도 어른보다 순수합니다. 어린 아이는 어른 보다 덜 계산적이고, 덜 의심적이고, 덜 세상적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도 어른의 신앙보다 어린 아이의 신앙이 더 좋습니다. 고로 어른은 어린 아이의 이런 순수한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어린 아이의 겸손함과 순수한 모습에 감동하며 그들에게 이런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10:14-16)
또한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이런 고백도 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즉 하나님의 진리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계시되고 알려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경에 보면 어린 아이처럼 되지 말라고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아무래도 어린 아이는 어른처럼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른처럼 깨닫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가 겸손하고 순수하기는 한데, 깨닫고 분별하는데 있어서는 어른보다 많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어른처럼 성숙하고 장성한 신앙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육적으로 성장이 되어야 하듯이, 신앙도 성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당시에 몇몇 고린도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는 신앙이 계속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안타깝게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1-2)
이 말씀에서 보면 어린 아이는 젖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 어른은 밥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젖과 밥은 무슨 뜻일까요?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목사님이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축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세요. 반드시 성공하세요."
이 말씀에 성도님들이 모두 힘차게 "아멘!" 했습니다. 목사님도 성도님들도 다함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 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을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세요. 십일조도 드리세요." 그러자 성도님들의 아멘 소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아멘 소리가 마치 소 울음소리처럼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어메-"
그리고 이어서 목사님이 성도님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과 인내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성도님들의 마음이 점차 무거워졌습니다. 그 중에 어떤 성도님이 속이 매우 불편해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에이, 오늘 괜히 교회 왔네! 목사님이 지치고 고단한 영혼에게 힘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야지. 그런 부담되고 무거운 설교를 하면 어떡하나!"
물론 어린 아이는 당연히 젖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성하면서 딱딱한 음식을 먹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젖을 먹어야 할 단계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젖병을 손에 들고 다니며 젖을 먹으려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문제가 있는 아이입니다. 신앙도 계속해서 자기가 좋은 말씀만 먹으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며칠 전,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이 아침 모임이 있었습니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데 한 목사님의 음식을 먹고 난 후의 접시를 보니까 채소는 먹지 않고 모두 한쪽에 남겨놓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 목사님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건 브로컬리잖아? 이 귀중한 걸! 이걸 먹어야 진짜 건강한 건데..." 그리고 옆에 있는 저를 비롯해 다른 목사님들이 그것을 대신 먹어주었습니다.
여기 햄버거 가게에서도 봅니다. 'Kid's meal'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이에 맞게 햄버거가 나옵니다. 특징은 무엇입니까? 야채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린 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채소를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업소에서도 아예 채소를 빼고 주는 겁니다. 더욱이 애들은 쓴 음식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어른은 씁쓰름한 맛도 즐길 줄 압니다.
얼마 전에 성도님들이 저에게 인삼 엑기스를 선물로 줘서 잘 먹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삼은 맛이 씁쓰름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맛을 즐길 줄 압니다. 그러나 제 딸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지난번에 제 딸에게 엄마가 인삼 엑기스를 꼭 먹으라고 싸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하나도 안 먹고 그냥 남겨 놓았습니다. 이것도 제가 가져와서 잘 먹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급 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쓴 나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들은 젖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점차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쓴 음식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적응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이 자라서 힘든 고난도, 십자가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해도 용서하고 인내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자기 기분대로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 신앙이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즉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릴 3년 들으면 개도 풍월을 읊는다는데, 하물며 개도 아닌 사람이 그렇게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는데 아직까지 어린 아이처럼 그러면 어떡합니까? 그러나 반면 특별하게 신앙이 잘 자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잘 받고 순종합니다. 결국 나중 되었으나 먼저 됩니다. 성숙하고 모범되고 훌륭한 신앙인이 됩니다. 주님께 충성하며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성숙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은 여기까지 자라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4-15)
어린 아이 신앙은 사람의 궤술, 간사한 유혹, 세상 풍조에 빠지기 쉽습니다. 즉 어린 아이 신앙은 자주 시험에 빠집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주 넘어지듯이, 신앙이 어린 사람을 보고 있으려면 언제 또 넘어질까 염려스럽습니다. 또 그 입에서 언제 "에이, 하나님, 안 믿어. 이제 교회 안 다닐 거야." 하고 말할까봐 불안불안 합니다. 이런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처럼 자라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라고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고 요동치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13-1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즉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할 줄 알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은 어른의 신앙을 가진 자요,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여 악과 죄에 빠지면 어린 아이의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법도 경우에 따라 변합니다. 악한 지도자들이 정치를 하면 나쁜 것도 좋다고 하며, 좋은 것도 나쁘다고 없앱니다. 어떤 때는 좋다고 했다 어떤 때는 나쁘다고 합니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나라가 동성애자들은 잘못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리어 동성애를 반대하면 잘못되었다고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동성애자가 떳떳이 자기는 동성애자라고 공표를 합니다. 동물들도 본성적으로 동성애를 하지 않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동성애를 좋다고 한다는 것은 만물보다 가장 타락한 자가 인간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타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헷갈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과 선을 분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것이고, 좋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즉 성경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 신앙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고로 성숙한 어른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종종 우리를 징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냥 오냐오냐 하고 가만히 나두면 한없이 잘못된 길로 갑니다. 고로 하나님은 종종 채찍으로 우리들의 방향을 바로 잡아줍니다. 그래야 제대로 어른 신앙이 됩니다. 성숙하여 하나님께 제대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이 자라나게 하기 위해 종종 힘든 고통과 고난을 통과하게 하면서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즉 인내를 통과 하면서 사람은 사람다워집니다. 인내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성숙도가 떨어집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가 인내하는 것 보았나요? 어린 아이는 보면 보는 대로, 들으면 듣는 대로, 입으로 다 말하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많은 것이 어린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고통을 통과해 보지 못했기에 인내를 모릅니다. 결국 인내를 이루는 사람이 온전해지고 성숙해 집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를 보면서 그들의 순수함과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이를 보면서, 어린 아이 같은 나의 신앙이 보다 성숙하고 바르게 자라나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잘 자라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모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