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야 할 일

날짜: 
2014/05/24
말씀: 
마5:21-26
말씀구절: 

21 <노하지 말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설교: 

한국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자 세계 각국에서 이를 애도하고 위로하는 글들이 전달되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동족의 슬픔을 애도하는 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있다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말이 북한에서 계속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북한이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한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하여 최근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도 한국의 세월호와 같은 큰 재난이 일어났습니다. 다름 아닌 23층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져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워낙 통제된 사회라 몇 명이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북한 공산당의 고위 간부가 인민들 앞에서 90도로 머리 숙여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사진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세월호와 같이 큰 사건이 터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무너진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씨가 최고 통치자가 되면서 인민들에게 아파트를 빨리 지어주라고 급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무리하게 아파트를 빨리 짓다 보니 부실공사로 이어지고, 결국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스런 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고 교훈을 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북한의 아파트 붕괴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급히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돈을 빨리 많이 벌기 위해 화물을 규정보다 많이 싣는 행위입니다. 이로 인해 결국 세월호는 복원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배가 쉽게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배가 심하게 기울어서 신속하게 승객들을 탈출시키고, 구조도 신속하게 빨리 되어야 하는데, 그만 너무 시간을 끌므로 큰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즉 급히 해야 할 일은 천천히 하고, 천천히 해야 할 일은 급히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간 조정이 거꾸로 되면 일이 틀어지고,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아버지--- 돌 굴러 가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충청도 사람들이 말과 행동이 느리다고 합니다. 하루는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만 큰 돌이 밑에 있는 아버지 쪽으로 굴러갑니다. 이를 보고 아들이 외치는 겁니다. 아- 이때는 빨리 외쳐야지요. 양반이라고 그렇게 천천히 외치면 어떡합니까? 아버지 죽잖아요.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기 캐나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얼마 전, 차로 밴쿠버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가고 오는 도중 산 속 도로에 이런 표지판이 많이 있습니다. 'Avalanche Area. No parking'(눈사태 지역, 파킹 금지) 실제로 여기 캐나다에서는 눈사태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Avalanche'라는 단어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사람들은 B 발음과 V 발음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만약 산에서 눈사태가 났다. 밑에는 캐나다인이 있고, 위에는 B와 V 발음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이 있었다. 위에서 한국 분이 외쳤습니다. Abalanche!' 그런데 밑에 있는 캐나다인이 그 발음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형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를 해봅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에 살다 보니 진짜 속 터지는 것이 있습니다. 가족 식구가 갑자기 크게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응급실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응급 처방을 빨리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죽는 사건이 몇 년 전에도 일어났습니다. 마치 세월호 사건이 연상되어집니다. 빨리 해야 할 것은 빨리 해야지요.

성경에 보면 빨리 해야 할 것이 있고 천천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야고보서 1:19-20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저의 경우 목사이고 늘 지도하는 입장이다 보니 참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이 하게 된다고 합니다. 잠언10:19 말씀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이 말씀에 따라서 제가 될 수 있으면 말을 하기 보다는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 캘거리 목사님들 모임에서도 될 수 있으면 말을 안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최고 고참이다 보니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 참! 별로 지혜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부정적인 말, 원망적인 말, 남을 비판하는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말들이 나도 모르게 급하게 내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구나 분노를 발하는 것이 매우 빠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성경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분노가 빠른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제대로 이룰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3-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고 속히 형제와 화목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와 이웃과 화목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말은 "I am sorry."라고 빨리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캐나다에 제법 오래 있으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I am sorry."를 참 잘합니다. 신속하게 그 입에서 "I am sorry."가 나옵니다. 제 딸도 캐나다 문화에 오래 접하다 보니 "I am sorry."를 참 빨리도 잘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하니까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습니다. 결국 상한 감정은 풀어지고 다시 정상적인 관계 회복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 아시지요. 미안하다는 말도 이렇게 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아-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남자가 되어서 조잔하게시리!" 지금의 일본과 한국 관계가 좋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한 대 때린 사람이 맞은 사람한테 정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서로 화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가 바로 이런 식입니다. "아-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니 사이좋게 지내자. 왜 한국은 조잔하게 자꾸 그러냐?"

성경에 보면 손해보상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그에 상당한 손해보상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이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레24:19-20)

사람이 누구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신속하게 그에 대한 손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손해 보상하는 일이 더디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더 큰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우리가 실수를 해서 자동차 사고를 냈다고 합시다. 여기 캐나다에서는 보험회사에다 연락만 하면 되지만, 한국의 경우는 손해를 당한 사람과 합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과 신속히 합의를 하지 않고 미루다가는, 그만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25절) 즉 화해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급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눅19:5) 즉 과거의 죄악 생활을 청산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는 예수님의 재촉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롯에게 말합니다.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창19:22) 즉 죄의 도성은 빨리 떠날수록 좋다는 화급한 명령입니다. 아직도 술 마시고 있습니까? 담배도 피우고 있습니까? 나쁜 습관이 있습니까? 내일 천천히 끊겠다고 하지 말고, 오늘 당장 신속하게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자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요11:29)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즉 예수님 영접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 구원 받아야 할 사람, 오늘 은혜 받아야 할 사람이 자꾸 내일로 모레로 늦추면 안됩니다. 예수님 영접하는 것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빨리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늦으면 죽음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막6:45) 즉 예수님은 몹시 급하게 제자들을 군중으로부터 떼어놓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물었습니다. 군중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합니다. 제자들도 그 환호에 기분이 좋습니다. 어깨가 으슥합니다. 그러다가는 제자들이 군중들에 따라 신앙이 움직이는 포퓰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고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을 지켜주기 위해서 제자들을 군중들에게서 급히 떼어놓았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는 TV나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가지고 오락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그런 음성을 들려줍니다. "야- 컴퓨터 꺼라. 스마트 폰 그만 하고 이제 기도해라." 이때 신속히 순종해야 합니다. 미적미적 대다가는 그만 아까운 세월만 낭비하고, 성령이 소멸되고, 마음이 좋지 않게 되고 맙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천천히, 나중에 해야 할 것도 있지만, 빨리, 급히 신속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빨리 해야 할까요? 전도! 빨리 해야 합니다. 기도! 역시 가장 빨리 해야 합니다. 회개! 빨리 해야 합니다. 순종! 빨리 해야 합니다.

성경에 빨리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하면 나태한 신앙이 되고 맙니다. 신앙이 타락하고 맙니다. 반면 성경에서 천천히 하라고 하는데 빨리 하면 실수가 많습니다. 고로 우리는 빨리 할 것과 천천히 할 것을 잘 분별하여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잘 가꾸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