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면 줄 텐데

날짜: 
2014/08/03
말씀: 
요일5:14-15
말씀구절: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설교: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이 우주만물에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즉 이 광활한 우주와 세밀한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누군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운행하시는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더듬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우주 만물을 보면서도 이것들이 그냥 우연히 혹은 진화로 생겨났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감정을 다시 해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성품과 그 분의 계획을 보다 확실하고 세밀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성경을 보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왠지 불신자들이나 믿음이 적은 분들에게는 관념적이고 학구적이기에 때문에 직접 어필이 되는데 좀 거리가 있습니다.

고로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표어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즉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자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까요?

다름 아닌 바로 기도입니다. 여기서 기도라고 하니까 당장 “아- 목사님! 저는 기도 못합니다. 저는 아직 초신자입니다.” 하고 기도를 매우 어려워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하나님께 달라는 것, 구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을 하십시오. 마치 애들이 부모님에게 “엄마, 아빠, 저 이것 주세요.” 하듯이 그냥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냥 구하고 달랬는데 어- 이상하게 그렇게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어- 이거 뭐야? 진짜 달랬더니 주네! 이거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거야 뭐야?” 하고 서서히 하나님의 존재가 자신의 생활 속에 체험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하는데 자꾸 주니까 “아-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뭐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혹은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한번 하나님께 구해보십시오. 거창하게 기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냥 달라고 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지 체크를 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이 말씀에 보면 “너희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길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아- 물론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습니다. 누구지요? 홈리스(거지)입니다. 가끔 제가 차를 타고 다운타운 가다보면 홈리스가 다가와 구걸을 합니다. 이때 참 묘한 감정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여기 캐나다는 은근히 인종차별이 있습니다. 특히 동양인이 영어도 잘 못하면 인종차별과 같은 시선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는 서양인이 홈리스가 되어 나한테 동냥을 하면, 그래서는 안 되는데 괜히 우월감이 듭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손해보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에 있는 동전통을 열어서 대충 2불 정도를 건네줍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상대방은 연신 고맙다고 “Thank you very much.”를 연발합니다. 어떤 경우는 “Thank you very much."에 덧붙여 "God bless you."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 제가 속으로 “야- 그 말은 목사인 내가 해야 되는데...” 하면서 그 사람에게 화답해줍니다. “May God bless you!"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우리가 거지이기 때문에 한 푼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거지라면 하나님에게 “선생님! 죄송하지만 한 푼만 적선하시겠습니까?“라고 손을 비비면서 어렵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담대하게 뻔뻔하게 말을 합니다. ”아버지! 돈 좀 주세요.“

이때 죽은 아버지가 아니고 살아 계신 아버지라고 하면 분명 대답을 하실 겁니다. “뭐에 쓰려고? 얼마나 필요한데?” 그러면 나름대로 자녀는 설명을 합니다. “예- 이것저것을 하는데 돈이 얼마가 들어갑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래, 알았다. 옜다.” 하고 돈을 주시든지 아니면 “언제 필요한데?” 하고 또 물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거 아시지요? 아버지가 자녀가 구하는 것, 예를 들면 돈을 아무리 달라고 해도 못 줄 때가 있습니다. 언제지요? 아버지도 “해브 노 머니” 돈이 없을 때입니다. 그때는 아버지라고 아무리 구해도 안 됩니다. 아버지가 능력이 없는데 계속 달라고 떼를 쓰는 자녀는 불효자녀입니다. 철부지입니다.

지금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저의 아버님이 생전에 차매를 보면 늘 저한테 말을 합니다. “애야, 차매 많이 먹어라.” 그리고 제가 차매를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훔칩니다. 왜 그런가요?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와 같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여름철이었는데 누군가 리어카에서 맛있는 차매를 팔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차매를 먹고 싶어서 아빠에게 저거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안 사주는 겁니다. 제가 가만히 있겠어요? 땅에 주저앉아 땡깡을 났지요. 그런데 제가 아주 심하게 땡깡을 부리니까 아버지가 저를 한 대 때린 겁니다. 그러니까 어린 제가 막 울었잖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때 우리 아버지는 실업자였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차매 하나 먹고 싶다고 해도 사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됐습니다. 부모 마음에 그것이 원한이 맺혀 제가 다 컸을 때에도 아버지는 차매만 보면 자꾸 사주려고 합니다.

여러분!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육신의 부모는 아무리 자녀에게 이것저것을 해주고 싶어도, 또한 자녀가 아무리 요청을 해도 능력이 딸릴 때가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제 딸이 치과를 간다고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치과는 왜 가려고?” “응- 그냥! 어떤 치과에서 연락이 왔는데 X-ray를 비롯해 모든 검사를 하는데 50불이래. 싸지? 아빠!

제가 즉시 대답했습니다. “가지 마라. 너 거기 가면 그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돈을 뽑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거기에 넘어갈 것이고... 그리고 너 알지? 여기서 이빨 교정을 하려고 하면 거의 만 불정도 들어간다. 아빠 지금 그런 능력 없다. 그러니 아예 치과 근처도 가지도 마라. 아빠 마음 상하려고 한다.” 그리고 제가 속으로 스스로 위안을 합니다. “야- 너 이 교정 안해도 시집가는데 지장 없다.”

여러분! 육신의 부모는 종종 능력이 달립니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도 못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십니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고로 무엇이 필요하면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저와 여러분들은 원래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가 되게 만든 죄를 다 청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고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은 이제 들으십니다. 그리고 합심하여 기도하면 더욱 잘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고로 가족들이, 청년들이, 학생들이, 여성들이, 남성들이 서로 합심하여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얻으십시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 “그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기도해야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앞으로 변호사가 되어서 불쌍한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보살펴주는 보람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이번 법대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젊은이를 선교사로 쓰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젊은이와 하나님 사이에 줄다리가 시작됩니다. 누구 고집이 더 셀까요? 때로는 하나님이 져줄 때도 있고, 때로는 하나님이 끝까지 이기려고 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와 하나님이 조건을 달고 딜(deal)이 성립되기도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항상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알고 내 자신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께 구하다가도 뒤에 가서는 “주여, 제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마칩니다.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와 같습니다. 그때 주님의 기도 기억나시지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는 신앙인의 올바른 습관이 들면, 그때부터 우리는 인간의 권모술수나 욕심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3)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욕심을 부리고 권모술수를 쓰면서 무엇인가를 더 가져보려고 바동바동 하는 분이 있습니다. 옆에서 보기가 참 딱해 보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구하면 줄 텐데, 왜 하나님께 받지 못하고 자꾸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써서 사람간의 화목도 깨트리고, 스스로 추하게 사는가?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으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받지 못하고 살면 인생이 추해집니다. 인생이 조잡해집니다. 인생이 비굴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나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합니다. 고로 인생을 어렵게 살지 마십시오. 단순하게 어린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고, 그 구한 것을 하나님께 받고 사십시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이 평생도록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계속 나의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확신 속에서 평안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