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얼마 전부터 제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는 잘못했고, 주님은 잘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이러한 기도를 들으면서 “목사님이 왜 이런 기도를 하실까?” 하고 생각하며, 제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에 대하여 감이 오시는 분이 있습니까?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가 이전에 굉장히 오랫동안 기도한 제목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주일 예배 출석 인원이 153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 제목이 달성되는데 교회를 개척한 후 거의 10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사연도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탄력을 받아서 3년 전에는 주일 예배 출석인원이 200명이 넘어선 주간도 몇 주 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주보를 자세히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일 예배 출석인원이 153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주일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이 다 나오면 153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 후 제가 출석 인원을 체크해보면 가끔 혹은 자주 주일 예배를 빠지시는 분들이 항상 생깁니다. 그래서 153명이 안됩니다. 약 한 달 전부터 제가 줄어든 성도님들의 수를 채우기 위해 다시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가 우리가 이전에 기도했던 153명입니다.
사실 이 목표는 지금도 손에 잡히는 목표입니다. 휴가 가고 여행가신 분들이 모두 돌아오는 9월 첫째 주나 둘째 주 쯤에는 되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일 예배를 마치고 출석인원을 세어보면 153명이 안됩니다. 이번 주는 어느 가정이 빠졌고, 청년들 중에는 누가 빠졌고...
기도하고 계산하다가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잘못했고, 주님은 잘하셨습니다.” 즉 오늘 주일 예배 때에 153명이 되지 못한 것은 저의 잘못이고, 이나마 참석하게 만들어 주신 것은 주님이 잘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저는 책망을 받아야 하고, 주님은 칭찬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느 목사님이든지 성도님의 숫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물론 목사님들 중에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역시 성도님들의 수에 관심이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사실 목회를 하는 목사님에게 있어서 성도님은 얼마나 귀합니까? 더구나 이민 교회를 하는 목사님들에게는 성도님들이 더욱 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캐나다 이민 정책이 바뀌어 이민자 수가 줄어들 때는 더욱 귀한 것이 성도님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성도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이런 귀한 분들이 교회를 다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서 떨어지면 목사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물론 여러분들과 같이 교회를 다니고 친한 분이 떨어지면 여러분들도 마음이 좋지 않을 겁니다. 이때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혹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스스로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경우가 발생할까봐 염려가 됩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한창 예민한 시기의 자녀들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남들에 비해 집안이 좀 가난합니다. 인생 살다 보면 부할 때가 있고 가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자녀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 집은 왜 이래? 우리 아빠 엄마는 왜 이래?”
그러면서 어린 애가 부모님 앞에서 한숨을 푹- 쉬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부모님이 보고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 왜 기 분 나쁜 일이 있니? 뭐 근심스러운 일이 있니?” 그러면 아이가 퉁명하게 대답합니다. “몰라도 돼.” 그리고 아이가 집에 있기 싫어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짜증을 잘 내고 부모님에게 말대꾸를 하고 사나워집니다.
이때 부모님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도 하루 빨리 부자가 되어서 자녀의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돌이키고 싶습니다. 아이의 한숨을 기쁨으로 바꿔주고 싶습니다. 아이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싶습니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보다 떳떳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요즘 그런 심정입니다. 지금 여기 캘거리에는 27개의 한인 교회가 있습니다. 성도님 숫자로 보면 우리 교회가 5번째 혹은 6번째입니다. 27개 교회 중에 자체 성전을 가지고 있는 6개 교회 중에 우리 교회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전이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년도로 보면 지금 우리가 쥐고 있는 성적표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못났지만 하나님이 목사로 세워 주셨고,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은사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지금보다 성도님 수가 더 줄어들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님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원망 불평을 비롯해 여러 가지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153명을 회복시키시고, 그 두 배인 306명, 그리고 그 세 배인 459명도 달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있습니다. 성도님 숫자가 아무리 중요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받는다는 겁니다. 결코 인간적인 수단이나 잔꾀를 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 캘거리 한인 교회들 중에서 끝까지 Fair Play를 할 겁니다. 결코 반칙을 해서 우리의 동료들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또 이것도 아시지요? 제가 뭔가 해보려고 해도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즉 주님이 능력을 주셔야 할 수 있고, 주님이 도와주시고, 주님이 역사해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제가 기도하고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오늘의 설교 제목으로 나타납니다. “주님, 저는 잘못했고, 주님은 항상 잘하셨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 제목에, 여러분의 소원에 하나님이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혹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제대로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목표가, 여러분의 계획이,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가 되지 못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기분이 상했습니까? 그리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지는 않습니까? 본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후6:2)
요즘 제가 딸 운전 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부모로서 자녀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입장인데, 자녀에게 운전 연습을 시키니 얼마나 잔소리가 많아집니까? 사실 운전 연습은 거의 칭찬이 나오는 과목이 아니잖아요? 운전을 정상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운전을 잘못하면 아무리 신사라도 화가 나고 욕이 나오는 것이 운전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처음 운전을 배우는 사람은 그 잔소리, 아니 그 귀한 가르침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운전하고 긴장하다 보니 들리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실수를 연발합니다. 그러니 또 옆에서 잔소리를 해야 합니다. 하- 참!
하나님도 우리에게 많은 잔소리, 아니 수없이 교훈을 주셨습니다. 너무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실수를 연발합니다. 시험(Test)에서 자꾸 떨어집니다. 분명히 실수는 내가 하고 시험은 내가 잘못해서 떨어진 겁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제대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몇 번이나 수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결국 나는 잘못했고 하나님은 제대로 잘하신 겁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좀 불행해질 때가 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형통을 바랬지만 불통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행복을 누려보려고 했지만 도리어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뭐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하나님이 고작 실력이 이것 밖에 안됩니까? 정 이러면 나 하나님 안 믿습니다. 교회 안 다닐 겁니다.” 여러분! 이런 태도로는 평생 신앙의 철이 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계속 속만 썩이는 불효자식이 되고 맙니다. 이때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잘못했고 주님은 잘 하셨습니다. 저는 부족했고 주님은 완전하셨습니다. 실패는 저의 탓이고, 성공은 주님의 공로입니다. 저도 주님처럼 보다 완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실수를 줄여주시옵소서.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성경을 보십시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했던 이유도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런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뭔가 잘 안되면 하나님에게, 모세에게 그 잘못을 돌렸습니다. 좋을 때는 좋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항상 원망 불평이 나왔고 반역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망했습니다.
아담의 경우도 보십시오. 그가 배우자가 없어서 외로울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외칩니다.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다.” 이 말 뜻은 “하와, 나는 너가 최고다. 나는 너가 무지무지하게 좋다. 나는 너 없이는 못산다. 너가 없는 세상 앙꼬 없는 찐빵이요, 김빠진 맥주요, 불 없는 항구요...” 뭐 이런 뜻입니다.
이랬던 그가 선악과 문제로 인해 하나님이 아담을 책망하자 아담이 싸가지 없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제게 짝지어 주신 그 여자가 열매를 먹게 하므로 저는 먹었을 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자기는 잘못이 없고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언제는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 때문에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니, 이제는 일이 꼬이니까 왜 하나님께 그 잘못을 들립니까? 이때에는 제가 요즘 하나님께 기도하듯이 이렇게 기도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는 잘못했고, 하나님은 잘 하셨습니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하나님, 저는 잘못했고, 하나님은 잘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어도 때로는 종종 불통이 올 때가 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고 상황이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쓸데없이 미련하게 원망불평을 하거나 스스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때에는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잘못했고, 하나님은 잘 하셨습니다. 저도 하나님처럼 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올바른 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계속 도와주시고, 결국 하나님이 일을 성취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어려울 때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잊지 마시고, 끝까지 좋은 태도로 주님과 함께 천국까지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