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서 우리 주의에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염려, 근심, 불안, 두려움을 느끼며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종과 언어, 문화와 음식이 다른 이민생활, 객지 생활을 하다 보면 사소한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근심 걱정이 다가와 그만 마음이 무거워지고, 스트레스와 짜증이 다가오며,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심 걱정은 자신만 불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하늘나라의 지점인 교회까지도 불행의 늪에 빠트릴 위험이 있습니다. 즉 근심 걱정은 결코 하늘나라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와 근심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나중엔 마음이 분열되어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나아가 육체도 질병에 들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의학은 인간의 거의 모든 질병이 마음의 병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을 합니다. 즉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과 불행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13)
즉 염려와 근심은 심령만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단단한 뼈까지도 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근심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아무리 강하고 튼튼한 사람도 영적으로 혹은 육적으로 병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근심 걱정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술, 마약, 도박, 혹은 각종 오락을 의지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지성적인 사람은 독서나 각종 좋은 취미생활을 통해 근심 걱정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방법들은 마치 거미줄을 제거하는 일시적인 방법은 될지언정 거미를 잡는 근본적인 방법은 되지 못합니다. 즉 인간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방법도 우리 인간을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 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스트레스라는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질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없습니다. 모든 인류가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근심하고 괴로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여러분! 이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철학가, 종교가, 정치가가 모든 인류, 모든 사람을 근심,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자유케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 중 몇몇 특별한 사람들만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남녀노유,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종 문제로 인해 근심이 다가올 때,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어린이도, 학생도, 청년도, 어른도, 노인 분들도 마음속에 근심이라는 무거운 짐이 있을 때, 그리고 이로 인해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릴 때,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말라.”(마6:31) “너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6:3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요14:1)
여러분! 예수님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간을 뺏으러 오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귀찮게 하기 위해 오신 분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리에게 종교의식을 강요하러 오신 분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은 결코 종교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고 참 평안과 안식을 얻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즉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오면 그 분만이 주시는 참 안식과 평안을 분명히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이 넘게 교회에 나왔어도 예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안식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교회는 나왔지만 결코 바르게 신앙생활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예수님이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주시는 좋으신 분으로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옛날 한국에 자동차가 귀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다가 한 아낙네가 큰 보따리를 이고 구슬땀을 흘리고 고생고생하며 걸어가고 있기에 전도도 할 겸 도와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차에 태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시골 아낙네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계속 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아니, 그 무거운 보따리 내려놓지 않고 왜 그리 머리에 이고 고생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 아낙네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아니, 선교사님이 차 태워주신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무거운 짐 보따리까지 내려놓겠습니까?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요.”
조금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오늘날도 이렇게 안타깝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불러준 목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함인데 교회에 들어와서도 혼자 쓸데없이 걱정 근심을 하고, 우울해 하며, 슬퍼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봅니다. 참으로 미련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도 안타깝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탁함. 정녕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예수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우울해 하거나 밥맛을 잃고 끙끙대지 마십시오. 주님은 안타깝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오늘 있다가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27,30)
혹시 여러분 중에도 이런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다 맡기라고 하셨는데 스스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 할 뿐만 아니라, 옆에서 보는 사람도 힘들게 하고, 주님도 힘들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크리스천의 특권과 사명은 근심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기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고, 그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과 평안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 “너희 행사를 다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맡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굴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큰 바위를 짊어지고 산으로 옮기려면 굉장히 힘이 들지만 반대로 산 밑으로 굴려버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즉 문제가 있을 때 혼자 그것을 지고 끙끙대지 말고 하나님께 그 문제의 무거운 돌을 굴려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무거운 짐을 굴려버리느냐고 묻는다면 성경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즉 자신이 당하고 있는 문제를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대신 맡아 주시고, 그 응답으로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107:6)
자고로 신앙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때 모세는 이렇게 솔직하게 기도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책임이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민11:11,14)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모세야,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민11:17) 여러분!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큰 근심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들이 여러 가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인해 기쁨을 잃고 근심에 빠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짐, 사업과 직장의 짐, 물질의 짐, 질병의 짐, 죄의 짐, 각종 무거운 짐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어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계속 무거운 짐을 맡기며 평안하게 사십시다. 하나님은 어제만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68:19)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