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 나쁜 영, 이상한 영

날짜: 
2015/03/07
말씀: 
요7:12-13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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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의 설교 제목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음. 제목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제목이 나쁘다고 생각하시는 분?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사실 설교에 있어 제목 선정은 상당히 어렵고도 중요함. 제목은 마치 장사하는 사람들의 간판과 같음. ‘Tim Horton' 하면 커피, 도넛, 샌드위치가 생각나고, ’Mcdonald' 하면 햄버거와 프라이가 생각나는 것처럼 제목을 일단 잡게 되면 그에 맞는 내용을 집어넣고 풀어나가면 됨.

저의 경우 일단 설교 제목이 영감으로 떠오르면 그때부터 ‘요-땅!’ 설교 준비를 함. 그런데 제가 설교 준비를 하면서 항상 신경이 쓰이는 것은 적어도 성도님들을 졸게 하거나 주무시게 하는 지루한 설교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다짐함. 그러다보니 제목 선정도 기왕이면 성도님에게 어필이 되고 관심을 끄는 것을 택하게 됨.

물론 저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를 보지 못했음. 단지 이 말이 유행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에 설교 제목도 여러분의 관심을 끌려고 잡은 것임. 그리고 이 제목으로 설교하면 좋은 내용의 설교가 나올 수 있다고 영감이 왔기 때문임. 오늘 설교 제목이 뭐라고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아니고 ‘좋은 영, 나쁜 영, 이상한 영’임.

먼저 본문의 내용부터 들어가 볼까요.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평가가 엇갈렸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나쁜 사람, 미혹케하는 사람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향하여 고개를 꺄우뚱하며 “이상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음.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워낙 당시 민감하고 위험한 사안이기에 감히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음.

예를 들어볼까요. 오늘날 순복음 교단에서 굉장히 민감하고 위험한 질문이 있음. 조용기 목사님에 대한 평가임. “그 분이 좋은 분이냐? 나쁜 분이냐? 이상한 분이냐?” 물론 주님의 종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음.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14:4)

세상 사람들이 최근 조용기 목사님에 관한 뉴스를 듣고 나름대로 평가함. 대부분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을 하는 것이 사실임. 그러면서 “왜 순복음 교인들은 계속 그 교회에 다니느냐? 이상하다. 집단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니냐?” 하고 고개를 꺄우뚱 함. 여기 캘거리에 있는 저의 친구 목사님들 중에도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음.

이에 대해 제가 순복음 교단에 30년 정도 있었기에 조금은 이야기해 줄 수 있음.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고, 이상한 점도 있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시간에 따라, 세월에 따라 변하기도 함. 그리고 제 자신을 볼 때 저 역시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이 있음.

그런데 그러한 평가를 할 때 기준점이나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임. 즉 일부분만 보고 평가하는 것은 좋지 못한 평가임. 질문을 해볼까요? “여기 있는 김목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에 어느 쪽입니까?”

저의 좋은 점을 보는 분들은 저를 좋은 목사라고 말을 할 것이고, 저의 나쁜 점을 보시는 분은 저를 나쁜 목사라고 말을 할 것이고, 저의 이상한 점을 보시는 분은 저를 이상한 목사라고 말을 할 것임. 그런데 사람이나 물건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부분만을 보지 말고 전체적인 평균을 내서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정확함.

그래서 여기 캐나다 부동산 통계를 낼 때에도 Average Price를 내고, 더 나아가 Median Price를 냄. 즉 모든 매매되는 집의 평균치를 내야 좀더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음. 죄송하지만 저 역시 성도님들을 평가할 때 어느 일부분을 보는 것보다 그 동안 있었던 것을 종합한 평균치를 냄.

오늘 또는 최근 상태가 나쁘다고 나쁜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오늘과 최근에 좀 나빠도 과거의 점수가 좋으면 그것과 합산하여 평균치를 냄. 조용기 목사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임. 그 분이 지금, 현재, 최근에 좀 나빠도 우리는 그 분의 과거의 우수한 점수를 기억하고 있음. 젊을 때부터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한 것을 알고 있음.

그러기에 현재의 상태가 나빠도 그 분의 평균점수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점수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주의 종으로 그 분에 대하여 판단할 형편이 못됨. 다윗왕의 경우를 보십시오. 한때 그는 음행의 죄, 살인죄를 저질렀음. 물론 실수임. 그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크게 받았음.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평균 점수를 좋게 매기고 있음. 그래서 다윗왕은 아직도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인정을 함.

제가 여기 캘거리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같이 오랫동안 지냈던 교회 일군들이 있음. 새로 오신 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분들의 점수가 형편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름. 그러나 저는 그분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종합된 평균점수를 알고 있음.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 교회에서 별 탈 없이 10년 이상 꾸준하게 충성하면 일단 그 분은 평균점수가 합격점에 들어감. 누가 뭐래도 좋은 분임.

물론 여전히 나쁜 면이 있고, 이상한 면도 있음. 그러나 평균 종합은 좋은 점수임. 저의 경우도 이제까지 목회 25년을 하면서 제 스스로 평균점수를 내게 됨. 아주 훌륭한 목사님들 말고, 평범한 목사님들과 비교해 볼 때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함. 물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참으로 부족하고 형편이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못난 점들이 여러분에게 비춰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같이 따라해 봅시다. 위해서 기도해줍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하여 그 날에 최종 평가를 정확히 함. 좋은 성도(나무, 물고기)냐? 나쁜 성도(나무, 물고기)냐? 이상한 성도(나무, 물고기)냐? 알곡이냐? 가라지냐? 쭉정이냐? 양이냐? 염소냐? 그리고 그에 따른 상과 벌을 정확하게 줄 것임.

영의 세계도 나쁜 영이 있고, 좋은 영이 있고, 이상한 영이 있음. 사단은 원래 하늘의 천사장이었음. 좋은 영적 존재였음.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쫓겨나 나쁜 마귀가 되었음. 그리고 그때 사단과 함께 반역에 동참한 천사 1/3도 같이 쫓겨나 귀산들이 되었음.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2/3의 좋은 천사와 1/3의 나쁜 천사 즉 귀신들 속에서 살고 있음.

그런데 귀신들이 가끔은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 우리들을 미혹하기도 함. 이상한 녀석들임. 저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좋다고 하고,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짐정은이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 귀신에게 미혹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함.

처녀 총각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중 좋은 사람을 고르려고 할 것임. 그런데 그거 아시지요. 지 눈이 안경! 노란 안경을 쓰고 보면 노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고 보면 빨갛게 보이고... 아무쪼록 보는 것을 제대로 보는 복된 눈이 되시기를 축원함.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옴. 주님은 그들의 좋은 점을 칭찬하시고, 나쁜 점은 책망하시고, 이상한 점은 고치라고 함. 특히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구나!” 하시면서 책망을 하셨음.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안 믿는 것인지 요상 야릇한 신자라는 것임.

예수님은 말씀하셨음.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짠 맛을 잃으면 더 이상 소금이 아님. 얼음도 아닌 것이, 눈도 아닌 것이 이상한 녀석임. 차라리 얼음이면 팥빙수를 만들어 먹기나 하고, 눈이라면 눈사람이라도 만들 텐데, 짠 맛을 잃어버린 이상한 소금은 쓰레기에 불과함.

우리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좋은 신자로 출발하다가, 중간에 이상한 신자로 변질되고, 나중에는 나쁜 신자로 타락하는 경우가 제법 있음. 스스로 지금 자신을 체크해 보십시오. 나는 좋은 신자(남편, 아내, 자녀)인가? 나쁜 신자(남편, 아내, 자녀)인가? 이상한 신자(남편, 아내, 자녀)인가?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나옴.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었음. 그러나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변함. 그리고 나중에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맘. 솔로몬 왕도 마찬가지임.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왕이었음. 그러나 점차 이상한 왕이 됨. 그리고 나중에는 나쁜 왕이 됨. 그러나 처음에는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일지라도 나중과 끝에는 좋은 사람도 있음. 제대로 된 신자임. 거듭난 신자임.

마가복음을 쓴 마가라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실 때 벌거벗고 도망간 사람임.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와 전도 여행을 하다가 힘들다고 중간에 도망을 간 사람임.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더욱 힘들게 했음. 맥 빠지게 했음.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바르게 섭니다. 다시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바울의 죽음의 순간에도 유익한 사람으로 끝까지 남습니다.

결론임. 지금은 나빠도, 지금은 이상해도, 갈수록 좋은 신자(남편, 아내, 자녀)가 되었으면 함. 그리고 인생의 끝 날에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좋은 모습으로, 칭찬받는 모습으로 섰으면 좋겠음. 그리고 그 날에 좋은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 만났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