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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세 가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첫째로 대신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고, 두 번째는 대물관계, 즉 물질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며, 마지막으로 대인관계, 즉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 때에도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로 선을 악으로 갚으며 사는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고, 둘째는 선은 선으로 갚고 악은 악으로 갚는 사람 보통 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악을 선으로 갚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러한 세 종류의 사람을 같이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같기를 원합니다.
1.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
사울이란 사람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하나님께 특별히 뽑힌 사람이요, 상당히 인물이 상당히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후에 이스라엘에 돌아오니까 여인들이 칭찬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고 자기보다 다윗을 더 높이며 칭찬하는 말을 듣고 사울의 마음이 시기 질투로 불안해지기 시작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에는 사울에게 악신이 힘 있게 내렸다고 했고, 그 결과 다윗이 왕위를 빼앗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사울왕은 자기를 위해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지고 몇 번이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한 구국 공신이요, 자기를 위기에서 구원한 은인이요, 그래서 자기 딸까지 준 자기 사위인데도 불구하고 다윗을 계속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즉 악령에게 사로잡혀 선을 악으로 갚으려는 사람입니다.
왜 악령이 사울에게 역사합니까? 그것은 왕이 되기 전과는 달리 교만하고 완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자기보다 남이 더 칭찬 듣고 높임을 받으니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칭찬과 존경을 받을 때 교만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되고, 남이 칭찬과 존경을 받을 때에는 질투하지 않도록 또한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에 마귀가 역사하고 자칫 마귀의 길을 걷기 쉽습니다.
그리고 악령에게 잡히다 보니까 사울은 결국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되었고, 그 결과 전쟁에서 패하고, 급기야는 자기 칼로 자기 배를 찔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즉 하나님과 멀어져 선을 악으로 갚는 마귀의 길을 걸어가면 결국 패배와 비극의 종말을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선생이요 은인이신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다가 이익의 소망이 끊어질듯 하니까 은 30냥에 스승을 배신하고 팔아먹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에게도 마귀가 틈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13: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리고 요한복음 6:70에는 "12제자 중 하나는 마귀니라."고 했습니다. 즉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은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살림 잘하는 아내를 공연히 미워하고 다른 여자하고 바람피우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요, 반대로 직장에서 수고하고 가정을 위해 충실한 남편을 공연히 구박하고 불평하고 남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는 여자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기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을 박대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도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요,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또한 교회에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영혼을 구원받게 하고,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불철주야로 말씀 전하고 기도해 주는 목사님을 공연히 원망불평하고 모함하며 괴롭히는 사람도 틀림없이 마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선을 악으로 갚고, 은혜를 원수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고, 자비를 무정함으로 갚는 사람들은 남의 행복과 평안, 가정의 행복과 평안, 하늘나라의 평안과 행복을 짓밟는 사람들이요, 결국 자기 자신이 그 열매를 먹게 되고 비극적인 종말을 고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에게 결코 행복한 종말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2. 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
본문에 보면 밤에 다윗이 장군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키던 군인들과 사울 왕이 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밤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의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즉 악은 반드시 악으로 갚겠다는 말입니다. 원수는 원수로 갚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적으로 당연한 말인 듯싶지만 이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이 가르친 최선의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문안하는 자에게 문안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도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형 맏아들은 아버지가 송아지 잡고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 마음이 심히 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자식을 위해서는 살진 소를 잡고 나를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습니까?"
즉 맏아들은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며 떠난 둘째 아들에게는 선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녀석은 마땅히 욕을 얻어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인간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가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은 선으로 갚고, 악은 악으로 갚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최선의 모습은 아닙니다.
3.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악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악령을 좇아 사는 사람이 선을 악으로 갚는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 아비새 장군이 죽이자고 명령만 내리라고 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그리고 다윗은 사울 왕의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건너편 산으론 와서는 사울 왕을 지키던 아브넬 장군과 부하들의 불충성을 도리어 책망하며, 사울 왕에게 간곡히 말합니다. "왕이여, 이 종을 어찌하여 좇으시나이까? 왕이 나 같은 미천한 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메추라기나 벼룩을 따라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람이요, 사울을 죽이기만 한다면 피난 생활을 끝내고 왕위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져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를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
즉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말대로 사울 왕은 전쟁에 패해서 자기 아들은 전사하고 자기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원수를 갚아 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12:9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3-45)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원수를 만들지도 말아야 하지만, 더구나 원수 갚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는 인간이 갚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 갚는 것은 나보다 하나님이 더 잘 갚아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내 심령에 상처만 받고 제대로 원수도 갚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두고 보자.‘는 모든 복수심을 버리고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나에게 큰상을 베풀어주며 나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알고 있습니까? 원수는 어디에 있지요? 먼 데 있지 않고 항상 가까운데 있습니다. 가장 친했던 사람, 가장 신뢰했던 사람, 가장 믿었던 사람이 가장 큰 원수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인간의 역사였고, 성경의 역사였습니다. 고로 인생을 살면서 가까운데서 원수가 생길 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한탄하거나 비관하거나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그냥 그러려니 하십시오. 예수님도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고 팔려고 할 때도 그렇게 열 받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찌합니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주니까 가룟 유다가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즉 누구든지 마귀가 들어가면 마귀의 길을 갑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은혜로 갚을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과 방향은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어찌하든지 갚으려 하고, 나 같은 악인 사랑해준 하나님의 사랑에 어찌하든지 보답하려고 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나도 받았으니 너도 받으라고 사랑과 은혜의 빚진 자로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 바른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마귀의 길, 사람의 길, 하나님의 길이 당신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길로 가든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열매는 각자가 반드시 먹어야만 합니다. 그날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얻기 위해, 비록 지금은 어렵더라도 끝까지 악을 선으로 갚는 하나님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그날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다 함께 웃어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꿋꿋이 하나님의 길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