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감사해보라.

날짜: 
2015/10/11
말씀: 
살전5:18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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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상에 살면서 불평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평이 도가 지나쳐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범사에 원망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예 습관화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하다 보니 엄마 아빠가 불평을 많이 하면 자녀들도 그런 분위기와 그런 말들에 익숙해져서 집안 전체가 원망불평으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 가정의 행복은 달아납니다. 축복도 도망갑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 식구들이 인생의 낙오자와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의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뜻은 때때로(sometimes) 감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주(very often) 감사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모든 상황에서(in all circumstances)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즉 내 뜻대로 일이 잘 풀어질 때만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안되고, 도리어 일이 꼬이고 꼬여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생각만큼 돈을 못 벌고 있습니까? 생각보다 수입이 적습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비자나 영주권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남에게 선을 베풀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이 악이 돌아왔습니까? 비난이 돌아왔습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노처녀 노총각 여러분! 아직도 짝이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결혼하신 남편과 아내 여러분!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가 기대에 못 미칩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좀 더 좋은 시선, 좀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는데 도리어 나쁜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도리어 왕따가 되었습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겁니다.
혹시 몸이 아프고 병들었습니까? 하나님과 남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그래도 감사하라는 겁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추수한 것이 매우 적습니까? 그래도 감사하라는 겁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만약 누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하나님을 못 가졌으면 그 사람은 가장 불행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어도 하나님이 있으니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로 우리는 이로 인해 크게 즐거워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이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아 가장 불평하고 싶은 것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도리어 감사해 보십시오. 불평하고 싶은 사람, 욕해주고 싶은 사람, 꼬집어주고 싶은 사람,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은 사람을 향해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해 보십시오. 한 번 해보세요. "고맙다."
제가 여러분에게 위선을 떨라는 것이 아닙니다. 코미디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 중에 가장 원망 불평해야 하는 그 일, 그 사람에 대하여 감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싫어했던 그 일, 그 사람이 도리어 내게 유익이 된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 그런 사람 때문에 나의 교만이 깨지고, 그나마 내 인격이 이 만큼이라도 다듬어졌다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리를 깨닫고 불평을 감사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 어떤 분은 "싫어요. 나는 불평할 것은 불평하고 살아야겠어요." 하며 슬금슬금 불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불평을 타당화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국 그 불평의 결과 즉 열매는 자신이 거두게 됩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애급의 노예생활이 고달팠습니다. 그래서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힘들어 죽겠어요. 우리를 구원해 주세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모세를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하여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다시 조금만 틀어지고 고생이 다가오면 또다시 변하여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와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원망 불평하는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축복의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즉 성경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원망과 불평이 내 인생에 100% 해가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자고로 성도로서 이 진리 하나만 제대로 깨닫고 실천해도 상당히 괜찮은 크리스천이 됩니다.
구약 성경에 요셉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열한 번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당연히 배 다른 형들이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세상 말로 일순간에 인생 끝장났습니다. 인생 완전히 망쳤습니다. 요즘 같아도 누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어느 외딴 섬에 끌려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 인생 망친 것 아닙니까? 그 사람 인생 끝장 난 것 아닙니까?
하물며 옛날 인권이 유린되고 노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인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요셉은 앞날이 캄캄합니다. 더구나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자기 가족이요, 자기 형들인데, 그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끌려갔으니 얼마나 기가 찹니까?
세상에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인생이 더욱 꼬입니다. 애급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보고 살 시중을 들라고 합니다. 여기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은 '살 시중'이란 생소한 말을 잘 모를 겁니다. 무어냐 하면 흠- 그러니까 그런 겁니다. 그냥 짐작을 해보십시오.
요셉은 마나님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다가 도리어 강간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세상에 참- 이런 기막힌 일을 당했으니 요셉은 얼마나 억울합니까? 얼마나 미운 사람이 많고, 이빨을 갈 사람이 많습니까? 당연히 그는 원망 불평을 해야 합니다.
아니- 원한에 사무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죽일 연놈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원망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미움과 원한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노예 생활을 하면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한없는 용서의 사람, 자비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사람, 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때가 되매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큰 기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여러분의 장래를 예언해 줄 수 있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늘 감사하는 말이 나오면 그 사람 틀림없이 장래가 밝습니다. 미래가 좋아집니다. 반면 늘 얼굴과 입술에 원망 불평이 가득합니까? 조심하십시오. 미래가 어둡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가 반딧불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촛불을 주시고, 우리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신다." 즉 감사는 미래를 더욱 밝게 합니다. 반면 불평은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합니다.
제가 이전에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부교역자로 있었을 때 이런 희한안 일이 있었습니다. 대교구장 목사님들이 2년 정도 하다가 개척교회를 차리러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 분들은 나름대로 개척자금을 저축했습니다. 그러니까 심방을 가도 돈이 나오는 곳을 중심으로 심방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조용기 목사님이 아셨습니다. 그리고 대노하셔서 대교구장 목사님들을 여자 전도사님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남자 목사님들을 그 밑에다 집어넣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하극상이 된 겁니다. 여자 전도사님이 남자 목사님에게 명령을 하고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성도님들도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높은 거야? 목사님이 높은 거야?” 그때 모든 목사님들이 나서서 말은 못해도 "이건 너무 한다." 라는 불평의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저도 웬만해서는 불평을 안 하는 사람인데, 그때만큼은 좀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이 꿈에 이런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귀이개로 귀를 파고 있었는데 갑자기 '툭!' 하고 무언가 귀에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떨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았습니다. 세상에- 귓밥이 얼마나 큰지?
그때 누군가 옆에서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귓밥이다." 저는 그 꿈을 꾸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하- 내가 불평을 하는 것은 내 스스로 큰 귓밥으로 귀를 막는 것이구나! 불평을 하는 것은 영적으로 귀머거리가 돼서 그런 것이구나!"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절에 깨달아야 할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불평보다 감사가 훨씬 좋습니다. 감사하는 남편(아내, 자녀, 성도)이 불평하는 남편(아내, 자녀, 성도)보다 훨씬 좋습니다. 감사하는 가족이 많으면 가정은 화목합니다. 감사하는 성도가 많으면 교회는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오늘날 세상이 자꾸 험해지는 것은 자고로 불평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로 믿는 사람들은 무슨 큰일을 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말, 감사하는 표정을 지으며 세상과 함께 자기가 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다 같이 감사의 고백을 합시다. 저를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여보, 당신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앞 뒤, 옆에 분에게도 합시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런 감사 속에서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