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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제가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이곳 캘거리 서쪽 동네인 시그널 힐(Signal Hill) 근처에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송사리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제 딸 김주희가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연못에 있는 송사리들이 제대로 크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 다름 아닌 물이 안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또 다른 한 사람이 비닐봉지에다 싱싱한 송사리를 잔뜩 담아서 그 연못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안 좋아 저것들이 제대로 자랄까?“ 하는 염려를 하면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나서 “물이 좋아져야 하는데!”라는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한국 나이트클럽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물이 (안)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안 좋으면 어떻게 되나요? 좋은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결국 장사는 안 되고 맙니다. 교회도 물이 좋아야 좋은 교회가 되고 제대로 부흥이 됩니다. 고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물이 좋은 물고기(생선)인가?” “우리 교회는 물이 좋은 교회인가?”
성경에서 물고기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우리는 가끔 자동차 뒤에 붙어 있는 물고기 모양의 표시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물고기가 그리스도인임을 상징하는 것임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 유래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또한 많지 않습니다.
이 물고기 문양은 1세기경부터 로마의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서 사용하던 그리스도인의 표식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인에 대한 박해가 매우 심했던 시기에 박해하는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 그리고 의사소통과 신분확인을 위한 암호의 한 형태로서 땅이나 카타콤의 벽에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거기에 그려 넣는 방법 등을 사용하여 서로간의 신앙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이 물고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헬라어의 약자가 적혀 있습니다. "ΙΧΘΥΣ" (ICHTHUS : Iesus=Jesus, CHristos=Christ, THeou=of God, Yios=Son, Soter=Saviour). - 헬라어로 ‘ICHTHUS’는 물고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물고기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매번 바뀌는 예배장소를 찾아 올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물고기 모양은 초대교회에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근래에 와서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차 뒤쪽이나 대문 앞에 이 물고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할 때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았나요? 두 배에 가득차서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 후에 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때에는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습니까? 153마리입니다. 이를 배수로 하면 306, 612, 1224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가 부흥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숫자입니다. 여기 캘거리에서 이민 교회를 개척하여 주일 출석 인원 153명을 달성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출석인원 200명이 되는 데에는 2년을 더하여 대략 1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캘거리 경제의 어려움과 때를 같이하여 사람들이 빠지므로 다시 153명 수준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다시 이 숫자가 306명으로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올해의 기도 제목 중 하나인 “한 번 더 쓰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저의 기도입니다. 즉 다시 한 번 더 306명으로, 더 나아가 612명, 1224명으로 도달하기 위하여 제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쓰이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입니다.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는 송사리가 아니라 모두 먹을 수 있는 물고기였습니다. 제가 25년 전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교구의 성도님들을 모시고 안내자 겸 통역관으로 동행을 했습니다. 그때에 갈릴리 호숫가 옆에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베드로물고기’라는 요리가 나왔습니다. 기름에 튀겨서 주었는데 제법 맛이 있었습니다.
물이 좋은 갈릴리 바닷가에는 물고기가 많이 있고 경치도 좋은데 비해 사해에는 물고기가 없습니다. 경치도 황량한 광야입니다. 사해는 왜 물고기가 없을까요? 물이 안 좋기 때문입니다. 물을 받기만 하고 내 보내지를 못하니까 그만 물이 고이고, 따가운 햇볕에 물이 말라버려 짠 소금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솟아납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고, 허리에 이르더니 이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흘러 사해로까지 들어가니 그 소금물인 사해조차 단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도 물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물고기가 득실거리게 됩니다. 물고기의 종류도 다양해서 지중해에 있는 물고기 종류만큼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렁이나 웅덩이에 고인 물은 여전히 물이 안 좋아 물고기가 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웅덩이는 악취가 나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마음의 성전에서 생수가 흐르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성전에서 지금 어떤 물이 나옵니까? 혹시 독극물이 나오지는 않습니까? 똥물이 나오지는 않습니까? 일본처럼 방사선에 오염된 물을 흘러 내보내지는 않습니까? 그런 물에 오염이 되면 물고기가 어떻게 됩니까?
요즘 물고기나 스시 해산물을 안 먹는 분들이 생겨납니다. 왜 그럴까요? 방사선에 오염이 된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물고기들 중에는 이상한 물고기로 변형이 된 것이 있습니다. 크리스천 물고기가 아니라 마귀의 형상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더러운 물에 오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설교 후에 제가 주기철 목사님이 작사한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이란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면서 저는 계속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의 표정을 보니까 눈이 말똥말똥합니다. 저는 속으로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아- 이거 나만 너무 오버 액션을 하는 것이 아니까? 설교자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아무리 감정을 억제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겁니다. 저는 계속 눈물이 납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은혜의 눈물이 메말랐구나! 슬픈 드라마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는 눈물을 흘리는데 왜 순교자의 찬송을 부르고 듣는데 눈물이 안 나는가? 때로는 이 외국 땅에 와서 신세 한탄의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는데 왜 은혜의 통곡을 하지는 못하는가? 혹시 여성의 경우 화장이 지워질까봐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교회에 와서 제발 좀 눈물을 흘리세요. 괜찮아요.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찡- 하게 감동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물의 의미를 아시고 하나님은 그 다음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혹시 성령의 눈물샘이 막히지는 않았습니까? 요즘 안구건조증이 있는 분들이 제법 많이 생겼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스마트 폰을 많이 봐서 그럽니다. 세상 것을 너무 많이 보고 들으면 은혜의 눈물샘이 막히고 맙니다. 신앙생활이 건조해집니다. 그리고 자주 신앙의 염증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은혜의 눈물샘이 막히지 않게 하옵소서.
열매 맺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이 좋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생수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과일 나무가 자라고 과일이 끊어지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잎사귀만 가지고도 만국을 치료하고 소생시키는 약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교회에 좋은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생수를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가정도 삽니다. 원망불평과 같은 쓴 물을 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죽고 맙니다. 이상하게 마귀의 자식으로 변형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의 은혜의 물을 내야 합니다. 물론 나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나의 마음속에 성령의 생수를 부어주셔야 됩니다.
저의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 건축업을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서대문구 응암동 산꼭대기에 저희가 살 집을 크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우물을 팝니다. 당시에는 수돗물이 산꼭대기까지 공급이 안 되던 시기이다보니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지 않으면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산꼭대기인데도 물이 나옵니다. 반면 골짜기에도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주님은 환경이 척박한 광야와 사막에도 물을 내고 강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름같이 성령의 생수가 우리 믿는 자들의 뱃속에서 흐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즉 내 마음에서 하늘의 생수가 흐르면 그곳이 천국이 되는 곳이고, 세상의 더러운 물이 흐르면 그곳이 지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식구 한 식구의 마음속에서 성령의 생수가 나오면 천국과 같은 교회, 천국과 같은 가정이 되지만 세상의 더러운 물이 나오면 모두가 그 물에 오염되어 찌들어 죽고 맙니다.
고로 오늘 우리들의 기도제목이요 숙제입니다. “주여, 내가 있는 곳에 좋은 물이 생기게 하옵소서. 나도 좋은 물을 내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좋은 물로 인해 나도 살고 너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는 성도님들이 좋은 물로 인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고 잘 자라나게 하옵소서.“
옛날에 한국에서는 물을 사서 먹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사서 먹거나 정수해서 먹습니다. 그만큼 물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쁜 물을 먹으면 일찍 죽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참으로 물이 좋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물이 각자의 마음속에서 솟아나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좋은 물이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물고기들이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아무쪼록 각자가 이런 좋은 물로 인하여 밝고 맑고 행복하고 깨끗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