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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아가서 8:6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말을 좀 더 변형시켜 도리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사랑의 힘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더구나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한 하나님의 사랑만큼 강력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이와 같은 총칼보다 강한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무수한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온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그 분의 사랑이 죄에 팔려 마귀와 함께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구출해 주었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크리스천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향한 그 분의 사랑은 오늘도 강력하게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사로잡고, 주관하며, 강권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강권적인 주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절벽을 향해 떨어지듯 우리는 파멸이요, 절망이요, 영원한 저주 아래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강권적인 사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를 향해 “너 이리 와라.” 하고 강권적으로 끌어당겨 우리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저주와 슬픔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를 향해 “너도 이리 와라.” 하고 강권적으로 섭리하셔서 우리가 축복과 기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심히 어리석어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므로 그 결과는 큰 수치와 뼈저린 후회였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강권적인 사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고로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평안합니다. 기쁨입니다. 감사입니다. 행복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우리는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너와 내가 잘났기보다는 단지 하나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뒤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강권적인 사랑의 힘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신앙의 위인들이 고백했듯이 오늘의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당신도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그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미쳤다’라는 소리를 듣고, 수없이 옥에 갇히고, 사형수들이 맞는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이나 맞고, 각종 죽을 위험에 처하고, 춥고,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도 교회를 위해서 날마다 염려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강권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4) 한 때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까지 무섭게 핍박하던 사람이 변하여 위대한 사도 바울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의 힘이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을 보십시오. 3년 동안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모두가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분의 강권적인 사랑을 회복하자, 돌멩이에 맞아도, 칼로 죽임을 당해도, 톱으로 켬을 당해도, 사자의 밥이 되어도 꿋꿋이 신앙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능히 그 환난을 감당치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그들이 그 무서운 시험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어린 목동인 그가 사자와 곰을 물리치고,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것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다윗을 사용하셨기에 가능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3m가 되는 거구에 갑옷을 입고 칼과 단창을 차고 무장한 용사 골리앗을 어린 목동 다윗이 갑옷도 입지 않고, 돌멩이로 무찌른다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셔서 다윗이 던진 돌멩이를 골리앗의 급소에 맞게 하시므로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사무엘, 삼손, 기드온을 비롯해 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적은 군사로도 그들보다 훨씬 수가 많고 강한 적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한 것도 그 사람이 잘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강권적으로 사용하시어 그들이 큰일을 행할 수 있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를 봅니다. 주의 종이 되리라곤 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옛날 세상 친구들은 제가 목사가 되었다는 말을 아직도 큰 수수께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캘거리까지 와서 교회를 세우는 것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밀어주셨기에 주의 종이 되고 이제까지 주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캘거리 순복음 중앙교회 교회를 봅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성전을 교회 개척 3년 만에 구입했습니다. 이렇게 단시일에 얻은 것은 너와 내가 잘났기 보다는, 너와 내가 부자였기 보다는, 하나님이 이 성전을 얻을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이 성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내 힘으로는 절대로 주의 일을 할 수도 없고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있어야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공적인 이민생활과 유학생활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필요하고, 행복한 가정, 축복된 사업을 위해서도 내 생각,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주일 날 교회 오는 것도, 철야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라고 강권적으로 섭리해 주셔야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미련하여 제대로 축복의 길, 천국의 길로 가지 않고 자꾸 저주의 길, 지옥의 길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 우리의 생각과 방식과 맞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는 때도 있지만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뜻대로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17살에 이복형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먼 나라 이집트에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끌려가면서 그는 목 놓아 살려달라고 형들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그를 이집트로 끌려가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강간범이라는 치사하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었습니다.
당시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나를 고생시키실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팔자가 셀까?” 도저히 납득이 안 갔지만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요셉은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고, 큰 흉년이 다가왔을 때 그와 형들의 온 가족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요셉의 인생을 강권적으로 몰아가듯이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인생을 강권적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그 강권적인 힘이 당시에는 우리에겐 쓰라린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은 결국 우리를 더욱 좋은 세계로 인도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 하시는 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정 간증을 해봅니다. 제 아버님은 건축업을 하면서 공사장에서 지내다 보니 늘 술을 즐기고, 믿음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보다 자신의 주관이 앞서다 보니 신앙의 발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수표가 터지고, 150일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사업도 하루아침에 망하고, 이로 인해 가정도 심히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런 고난이 우리들에게 닥쳐왔는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통해 저의 아버님은 감옥에서 술도 끊고, 성경도 몇 번이나 읽고, 신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더욱 겸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기에 때로는 징계를 하더라도 그 자녀를 강권적으로 인도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우리를 강권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고집을 부려도 하나님은 종종 더 강한 의지로 우리를 다스립니다. “만약 이러한 강권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 육신의 눈으로 주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육신의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너무나 강력하게 우리를 위하여 역사 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그리고 사단이 아무리 강해도 사단의 세력이 결코 우리를 몰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악하고 더러운 마음이 우리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헛된 생각이 우리를 조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강권적인 사랑이 우리의 인생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는 결국 잘됩니다. 고로 우리의 결론은 성공입니다, 결국은 희망입니다. 끝에는 행복입니다. 그 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고 있기에,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를 강권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영원한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강권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