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라

날짜: 
2016/07/02
말씀: 
시37:4
말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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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그 교회에 보낼 당시에 그는 로마 옥중에 투옥되어 심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쁨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옥중에서도 기뻐하고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신병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혹은 자신은 지도자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또한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려고 억지로 기뻐하려고 애쓴 것도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해 바울 자신에게는 기쁨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실컷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옥중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고 매를 맞는 것도 그들에게는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감옥 속에서도 그 찬양 소리를 같은 감옥 속에 있는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렇게 감옥 속에서도 찬양하는 바울과 실라가 혹 너무 매를 많이 맞아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찬양 소리가 무르익어 갈 때 갑자기 그곳에 큰 지진이 났습니다. 그 지진으로 인해 옥문이 열어지고 모든 사람의 매어진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 은혜에 사로잡혀 찬양하는 분들은 느끼셨을 겁니다. 찬송을 하면 점차 마음이 안정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 기쁨으로 승화됩니다. 도대체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면 왜 그렇게 평안하고 기쁠까요? 바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기뻐하므로 그 기쁨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먹고 마실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기도하고 나와 함께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이 좋아하는 찬양을 하므로 주님의 마음이 좋아지고 그 기분이 나에게 전달되어 지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황소로 번제를 드림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찬양을 드리면서 생각이 듭니다. “아- 오늘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황소보다 더 좋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했으니 내 마음이 심히 기쁘도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도 말씀합니다. “네가 찬양을 부르며 기뻐하니 나도 마음이 기쁘다!” 그러면 또 제가 이렇게 화답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기뻐하시니 저도 또 기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어도 인상 짓고 불평하며 믿으면 기적이 안 일어나지만 기쁨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내가 기대하지 못한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나름대로 기쁨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돈이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돈을 버는 기쁨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분들도 있고, 술을 마시면서 기뻐하는 분들도 있고, 쇼핑을 하면서 기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나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귀한 특권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혹시 순서가 틀리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즉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분명히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어서 기뻐한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니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남녀가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혹은 그 남자가 돈이 많아서, 그 돈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은 좀 보기에 안 좋습니다. 만약 돈이 떨어지면 싫어한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돈보다도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면 상대방은 그러한 사랑을 하는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그 분이 무언가 좋은 것으로 날마다 여러분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좋아합니까? 혹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으신다면 어떻습니까? “에이, 이제 봤더니 하나님도 별 수 없네. 그렇게 능력이 없는 하나님은 안 믿겠습니다. 오늘부터 별거하고 내일부터는 남남으로 지냅시다. 안뇽! 바이바이!”
여러분! 우리는 이 순서를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그리하지 않으실지라도 즉 오늘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순수한 사랑, 순수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 순수한 기쁨과 사랑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소원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무슨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그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예배드리러 나오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 드리고, 성경 보면서, 기도하면서, 봉사하면서, 전도하면서, 사랑하면서, 헌금하면서, 청소하면서, 음식을 만들면서, 혹은 집에서 가사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도 그 소원을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기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인 성령으로는 가능합니다. 즉 우리는 성령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1에 보면 예수님도 성령으로 크게 기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1:6에도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으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어디서인지 기쁨이 몰려옵니다. 이전에는 교회 다니는 것이 부모님이 교회에 가자고 하니까 할 수 없어서 갔었는데, 혹 결혼하신 분들은 아내가 다니자고 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다녔는데, 성령을 받으니까 교회 다니는 것이 미치도록 재미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위하여 수고 하는 것,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아멘입니까? 노멘입니까? 노멘이 아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구나 이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도 하늘나라를 세우려고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하고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얻을 수 있는 크나큰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이것도 노멘이 아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천사도 부러워하는 특권인 주님의 일꾼이 되어 헌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인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기뻐하고, 그리고 기 기쁨 속에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지니 또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또 기쁩니다. 하여간 예수님 믿는 것은 이래저래 기뻐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시97:12)
우리는 자칫 외국의 바쁘고 힘든 삶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그 기쁨을 깜박하고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게 살면 나중에 지치고 고단해집니다. 심령적으로 병이 들고 맙니다. 고로 느헤미야는 삶이 힘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여러분! 혹시 이 외국 땅에서 살면서 힘이 떨어졌습니까? 피곤하고 지쳤습니까? 신앙의 권태기가 다가왔습니까? 예수님 믿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까? 하나님 일을 하는 즐거움을 상실했습니까? 다시 주님과 첫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주님과 함께라면 이곳이나 저곳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다시 헌 번 더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그 기쁨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소원을 응답받고 한 번 더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