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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문명의 충돌’이니 ‘문화의 차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특히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은 성경에서도 예언하듯이 결국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으로 비화되어 세계는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문화의 차이로 인해 민족과 민족 간의 수많은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세에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다.(마24:7)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서로 다른 문화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상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므로 민족 간에, 나라 간에,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한국의 월드컵을 앞두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요즘도 보면 어떤 외국 여성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의 개고기 문화가 잘못되었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한국 사람들이 “야, 너희 나라의 문화는 어떻고?” 하면서 상대방의 문화를 비판하는 모습을 봅니다.
즉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과 사상의 차이가 어쩔 수 없이 생겨나게 되고, 이로 인해 서로간의 감정이 매우 나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이 나빠지게 되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것을 두고 아주 큰 충돌이 생기고 나아가 전쟁도 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의 틈바구니에 끼여 희생물이 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와 얼굴이 같다고 할지라도 이곳 캐나다 문화를 많이 접하다 보니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속사람은 캐나다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화 충돌로 말미암아 싸움과 다툼이 나고 결국 불행이 다가오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더구나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이 결혼할 때에는 이러한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을 주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결혼을 할 때 과연 누구를 배우자로 맞이해야 합니까?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면 캐나다 사람입니까? 물론 많은 부모님들이 기왕이면 서로 문화와 사상이 같은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학력과 인물보다는 가치관의 차이, 성격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문화가 다르면 부부간에 서로 화합하기도 힘이 들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민 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은 많지 않고 더구나 이민 사회가 좁다 보니 서로간의 허물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배우자의 짝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자란 사람을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면 이곳의 문화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란 사람하고는 큰 갭(gap)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가정을 황폐하게 하고, 이민 사회를 힘들게 하고, 나아가 교회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와 같이 이민 생활에서 오는 문화의 차이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갔지만 그는 거기서 기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즉 먹을 것이 떨어져 또다시 애급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민을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아내 사래가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인데 애급 사람이 내 아내를 볼 때 남편인 나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이니까 내 아내를 누이라고 하면 안전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애급 왕이 사래를 보자 남편이 없는 여인이므로 취하여 자기 아내를 삼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엉뚱한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아브라함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애급 왕이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단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닙니까? 상대방의 생각과 문화와 사상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또한 애급에서 430년 간 이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 가장 염려한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들의 잘못된 우상 문화를 받아들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의 우상 문화를 받아들이면 결국 하나님을 등지게 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망하는 길로 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간 훈련시키셨습니다.
무슨 훈련이냐? 천국 문화에 대한 훈련입니다. 즉 하나님이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가장 좋은 천국 문화를 심어주므로 가나안의 우상 문화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좋은 문화 즉 천국 문화를 잃어버리고 가나안의 우상 문화를 좇아가므로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곳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과연 한국 문화를 좇아가야 할 것인가, 캐나다 문화를 좇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분은 아예 한국 사람들과 담을 쌓고 자녀들을 캐나나 문화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자녀들이 한국어는 잊어버려도 좋으니 빨리 영어만 마스터 하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진짜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잊어버리고 나니 나중에는 부모님 하고도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얼굴 모습은 분명히 내 자녀가 맞는데 생각과 사상은 아주 딴 사람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님이 아주 고지식하고 비이성적입니다. 반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내 자녀이지만 아주 싸가지가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 외국이라는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우리는 좋은 문화를 받아들이고 좋은 문화를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좋은 문화입니까? 각자의 의견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가 되는 문화가 좋은 문화요, 다시 말해 천국 문화가 가장 좋은 문화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가장 좋은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가장 좋은 천국 문화를 누리며 전파하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천국 문화를 잘 배우고 우리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바르게 가르침으로 그들이 이 이국땅에서 성공적인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국에는 술을 먹을 때 반드시 곤드레만드레 취해야 되고 따라서 일차, 이차 삼차까지 가는 아주 나쁜 술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도 굉장히 좋은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부모 공경, 노인 공경, 스승 공경, 남편 공경에 대한 아주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좋은 문화가 많이 약해져 노인과 부모와 스승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캐나다에서 보면 개인주의라는 잘못된 문화도 있지만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아주 좋은 문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곳에 이민 와서 한국의 좋은 문화를 잘 간직하고, 이곳 캐나다의 좋은 문화까지 잘 배운다면 우리의 이민 생활은 성공적이고 우리의 자녀들도 성공적인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세계의 모든 문화 중에서 가장 앞선 문화, 가장 좋은 문화는 바로 천국 문화입니다. 그 문화는 행복과 평화의 문화요, 정의와 사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천국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찬란한 헬라 문화를 배우고, 유대의 정통 문화도 배웠지만 천국 문화가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고(빌3:8), 천국 문화가 꽃피는 천국에 가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후5:8) 또한 자신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고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장 좋은 문화가 꽃피는 가장 좋은 나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천국의 지점인 교회에서 먼저 말씀을 통하여 천국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민 교회는 한국 문화, 캐나다 문화, 천국 문화가 충돌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세 문화의 충돌로 인해 이민 교회는 시끄럽게 될 소지가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한국적인 문화의 바탕 위에서 천국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캐나다 적인 문화의 바 탕 위에서 천국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 두 문화를 혼합한 바탕 위에서 천국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같은 교회에서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찬송을 부르고 같은 성경을 읽지만 한국적 기독교와 캐나다적 기독교, 그리고 이 둘을 혼합한 기독교의 차이점에서 오는 충돌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 중 한국에는 성도님들이 목사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 하나님의 종, 존귀하신 분, 영적 부모님이나 영적 스승님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 캐나다에서는 물론 목사님이란 직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각종 혜택을 정부에서 주고 있지만, 어떤 분들은 목사님을 자신들이 월급 주고 부려먹는 사원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을 사이에 두고 당파가 생기기도 하고,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한국적 기독교의 바탕에서 복음을 전하면 “목사님, 여기는 캐나다입니다.” 하고 캐나다적 기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반발을 합니다. 반대로 목사님이 캐나다적 기독교적 바탕에서 복음을 전하면 한국적 기독교 문화를 가지 분들이 그런 메시지를 받기에 애를 먹게 됩니다. 그렇다고 목사님이 혼합적인 복음을 전하면 목사님은 줏대도 없다고 흉을 봅니다.
고로 이민 교회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충돌이 일어날 소지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이나 목사님도 이러한 충돌로 인해 교회 생활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즉 이민 교회, 이민 사회는 각각의 사람들의 차이점이 큽니다. 그로 인해 사람마다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성도 간에도 쉽게 갈라설 소지가 많습니다. 고로 이민 생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문화의 차이를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가장 좋은 천국 문화로 생각과 사상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이 천국 문화를 한국과 캐나다의 좋은 문화의 그릇 속에 잘 담아서 천국 문화를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꽃피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천국 문화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좋은 한국 문화도 있고, 좋은 캐나다 문화도 있고, 가장 좋은 천국 문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국땅에서 좋은 문화, 좋은 사상을 전달하는 메신저들입니다. 특히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천국 문화와 천국 사상을 전달하는 천국의 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평화와 기쁨의 문화요, 행복과 사랑의 문화인 이 천국 문화를 이 이국땅에서도 마음껏 누리시고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