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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담에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가야될 길로 가지 않고 이상한 길, 잘못된 질, 가지 말아야할 길, 곁길로 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곁길로 가면 시간 뺏기고, 돈 낭비하게 되고, 몸도 피곤해지고, 마음도 지쳐 고단해지고 맙니다. 만약 중요한 약속이나 행사를 앞두고 곁길로 가면 일도 망칠 뿐만 아니라 신용이 없는 사람,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바른 길로 가고 있습니까? 혹은 곁길로 가고 있습니까? 한번쯤 자신을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체크를 하느냐? 신앙의 나침반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요즈음에는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을 많이 달고 다닙니다. 혹은 스마트 폰을 통해 자기의 위치와 목표 방향을 수시로 체크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방향감각을 잃고 곁길로 나가면 괜한 고생을 하고 시간도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에 따른 여러 가지 업무와 생활에 불편과 타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만 곁길로 새므로 낭패를 당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는 곁길로 가므로 자신들에게만 사망과 저주, 가시와 엉겅퀴만 난 것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이런 비극을 안겨준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갔지만 그 땅에 기근이 닥치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이 원치도 않는 곁길인 애급으로 내려가므로 자신의 아내를 애급 왕에게 빼앗기는 수치와 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요나라는 사람도 보세요. 하나님이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만 “에이, 그 못된 원수의 나라에 내가 뭐하려고 가느냐?” 하고 하나님의 낮을 피해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려고 배타고 도망을 쳤습니다. 이 같이 곁길로 새므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갑자기 풍랑이 대작하고 전기 시설도 없는 캄캄한 물고기 배속에서 사흘 간 죽음의 공포 속에 떨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명심하세요. 곁길로 가면 고생합니다. 피곤합니다. 슬픔의 주인공이 되고 맙니다. 사울왕을 보세요. 그가 처음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일하는 용감한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이라는 곁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부부가 별거하고, 이혼하고, 서로 원수가 되고,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군가 진리를 떠나 곁길로 갔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이혼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기 고집대로 곁길로 가므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이때 누구를 원망하시겠습니까? ‘다 내 탓이로다.’ 하고 자신을 책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이 왜 바른 길로 안가고 곁길로 가서 고생과 수치를 당해야 합니까?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 때문이 아닙니까? 특히 말세인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잘못된 방법으로 자기만족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곁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 교회에 왜 못 오느냐? 혹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니 목사님, 밥 먹고살아야지요, 돈 벌어야지요, 누가 돈 갖다 줍니까?”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그 시간에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밥 안 먹여 줍니까? 하나님이 돈 안 줍니까? 우리가 그렇게 무정하고 무능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을 못 믿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제자로서 잘 나가던 가롯유다가 왜 곁길로 갔을까요? 그 이유는 명예, 탐욕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재무부 장관정도 할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곳에 없다”고 하시자 가룟 유다는 “에이, 예수님 통해서 장관도 못 할 걸 뭐하려고 좇아가냐? 이제까지 쫓아다닌 내 인생이 아깝다, 내 인생 돌려줘!” 하며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을 곁길로 가게 하였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세상쾌락입니까? 인생은 곁길로 가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예수님 믿다가 곁길로 새고 나서 돌아오면 그만 머리가 희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삼손이라는 사람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위대한 용사요,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인 1000명을 무찌른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릴라라는 기생과 불륜관계를 맺고 곁길로 가게 되자 두 눈이 뽑히고,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웃, 친척, 친구를 따라 곁길로 가지 마십시오. 반드시 후회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악인, 죄인, 오만한 자를 좇아 곁길로 가면 복이 없다(시1편)고 합니다. 또한 철야예배, 새벽 예배드려야 할 사람이 안 드리는 것도 곁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사람이 기도나 전도하지 않는 것도 곁길로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4에 보면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 말씀하시기를 “처음 사랑을 저버렸도다. 열심이 식었도다. 곁길로 갔도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더러운 곳에 들어 눕는다.”(벧후2:22)고 했는데 에베소 교회가 바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또한 데마의 경우도 보십시오.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딤후4:10)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간 곁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또한 뚜렷한 하늘나라의 목표와 소망이 없이는 곁길로 가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까 그만 우상숭배라는 곁길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 나라는 망하고, 자신들은 포로, 노예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너무 어렵고 힘들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세상 열락, 걱정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향하여 곁길로 빠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비록 지금 당장 어렵고, 내 마음에 안 맞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렵다고 참지 못하고 곁길로 가면 고생합니다. 피곤합니다. 위험합니다. 비록 축복의 속도나 하나님의 응답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늦어지고 아무리 답답해도, 하나님을 떠나 곁길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정도를 향해 나가다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배반하고 곁길로 가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전에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제가 마라톤 경주를 하는데 기분 좋게 일등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시원한 숲이 있는 샛길이 있기에 그 길로 가다가 헤매고 돌아와 보니 100등으로 처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다가 곁길로 가는 것은 금물입니다. 기도하다가 말고 딴 짓 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괜히 이상한 일이 일어나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갑자기 바퀴벌레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 바퀴벌레 잡는다고 이리저리 뒤다 보면 그만 기도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기도시간만 되면 괜히 화장실이 가고 싶고, 딴 일이 생각이 나고, 몸이 근질근질하고 답답합니까? 여러분, 곁길로 가려는 요런 마귀 생각을 단호히 떨쳐 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술, 도박, 음란이 나를 곁길로 가게 만들면 이런 것도 단호히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곧 길이요(요14:6)”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길 따라가지 않는 인생은 이미 곁길로 가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렇게 곁길로 한참을 가다 보면 후회와 고생, 낭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인생을 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길도 아닌 곳에 자동차 몰고 가다간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이때 바르게 생각하는 분은 깨닫습니다. “아하, 내가 지금 곁길로 가서 이런 고생을 하는구나!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수님의 탄탄대로로 갈 수 있게 하옵소서! 자꾸 내 생각, 내 고집대로 곁길로 가려는 마음 제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로 가게 하옵소서!”
여러분,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망하고, 저주를 당하고, 고생길로 가기를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길, 축복의 길, 소망의 길, 행복의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로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인도 하심 따라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