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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스텐리 존스 선교사가 설교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설교 도중에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습니다.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소. 능수에 가면 석가모니가 이 땅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소. 그런데 지구 어디를 가도 예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소? 예루살렘에 가보아도 빈 무덤밖에 없지 않소? 예수는 정말 이 땅에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
이 말을 들은 스텐리 존스 선교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다른 점이요. 우리 주님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에 우리는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도 이 땅에 무덤이 있고,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이 땅에 무덤이 있습니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무덤도 중국의 장평양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썩었고 거기서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광장 한 쪽에는 모택동 미이라를 안치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붉은 광장 한 쪽에서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여주면서 국부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땅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거나, 예수님의 뼛조각 하나라도 이 땅에서 발견이 되었더라면 기독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입니다. 빈 무덤이야 말로 기독교가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해가 지면서 토요일 안식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도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100m 이상 걷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꼼짝하지 않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만 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 안식일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새벽이 되었습니다. 몇 명의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자들은 걱정하면서 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무거운 돌을 어떻게 여자들이 치울 수 있을 지 걱정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당시에는 장례는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 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이 막상 도착하여 보니 돌이 옆으로 굴러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댔습니다. 두 천사가 말합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자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늘 이렇게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이 빈 무덤은 우리들에게 있어 세 가지 배급소가 되었습니다.
1. 영생 배급소
무엇이든지 세상에는 욕망이 있으면 욕망을 채워줄 대상이 있습니다. 식욕이 있으면 식욕의 대상인 음식이 있습니다. 성욕이 있으면 성욕을 채워줄 이성이 있습니다. 명예욕이 있으면 명예를 채워줄 위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영생욕이 있습니다.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입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합니다.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그 분들에게 빨리 돌아가시라고 하면 큰 시험에 들고 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루라도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형수들이 사형을 당하러 갈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걸음을 느리게 하고 삐뚤게 간다고 합니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형수는 무엇인가를 땅에 떨어뜨리고 가다가 이렇게 말한답니다. “아- 조금 전에 내가 물건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되돌아가는 시간만큼 더 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영생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욕구를 채워줄 영생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영생을 채워 주는 배급소가 바로 예수님의 빈 무덤의 배급소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0-24)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는다고 확실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고, 우리 모두는 줄줄이 두 번째 세 번째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부활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영생의 배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평강 배급소
예수님은 무서워서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20-21) 여러분, 아무리 폭풍이 세차게 불어도 굴속에 있는 개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밖에 나와 있는 개미는 두렵습니다. 잘못하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제까지 자신들을 책임져주신 스승의 죽음은 그들에게서 평강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전쟁에 시달린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평화입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도 평강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는다는 자체는 평강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은 바로 평강 배급소입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과 더불어 이 외국 땅에서도 평강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3. 재사명 배급소
부활의 예수님은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12명의 제자 중에 11명이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시자 모두 갈릴리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자로 불렀던 갈릴리에서 다시 그들을 만나 재사명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예수님은 우리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낸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명령을 따라 간다고 하는 것은 사명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러라.”(막3:13-15)
마태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마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5-18)
누가가 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이러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즉 예수님이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한결같이 전도와 선교,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구원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혼구원 때문에 이 땅에 오셨고, 영혼구원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서 전도하며 영혼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이곳 캘거리에 와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만 이 큰 사명을 잃어버리고 낙심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다시 용기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으로부터 다시 사명을 부여받고 용기백배하여 모두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위인들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 중에는 실패하고 넘어지고 주님을 떠났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모세도 두 번째 다시 부름을 받고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12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모두 도망갔었습니다. 요나 선지자도 두 번째 부름을 받고 큰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명을 잃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옆길로 도망갈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주시기 원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방하였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방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였습니다. 링컨은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
링컨 친구들은 링컨에게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깎았습니다. 목욕도 하였습니다.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때 링컨은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러던 그는 중에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공화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치하였습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붙들고 다시 사명을 받아 새 출발하는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빈 무덤을 남기셨습니다. 빈 무덤은 영적인 배급소입니다. 첫째, 빈 무덤은 영생 배급소입니다. 둘째, 빈 무덤은 평강 배급소입니다. 셋째, 빈 무덤은 재사명 배급소입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영생과 평강과 재사명을 받고 믿음의 전진을 계속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