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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치원 시절의 어렸을 때였습니다. 저희 집에 아버지 친구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당시 아버지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아버지 말을 되게 안 듣고 아버지를 굉장히 화나게 한 것 같습니다. 자녀들을 키워본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어른들 앞에서 유독 말을 안 듣고 더 버릇없이 구는 애가 있으면 참다가 참다가 결국 못 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저의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저를 갑자기 낚아채더니 마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우물 뚜껑을 열고 그 안에다 저를 빠트리려고 했습니다. 그 우물은 깊이가 10미터도 넘고 그 안에는 물이 2미터 정도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곳에 빠지면 그대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아니, 이 아버지가 미쳤나? 왜 그러는 겁니까? 얼마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 아버지 친구 분 중에 한 분이 아주 동작이 민첩한 분이 있었습니다. 우물에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그 분이 저를 구출해주었습니다. 어휴- 제가 그때 죽다가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저를 건져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가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아- 뭐긴 뭡니까? 순간적으로 분노가 조절이 안되서 그런 겁니다.
성경에 보면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그는 인물이 준수했습니다. 미남입니다. 성경에는 그 보다 준수한 자가 없었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효자요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을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뽑아주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란 아주 훌륭한 사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 일입니까? 다윗이 자기의 병을 낫기 위해 위해서 수금을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표창을 던져서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아니, 이 양반이 미쳤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다름 아닌 사위 다윗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질투가 생기고 다윗을 미워하게 되자 그에게 악신이 붙었습니다. 그 악신이 순간적으로 다윗을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떤 강력한 힘이란 것이 있어서 나를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오늘의 본문으로 표현하면 강권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4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복음을 전하면서 숫한 고생을 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 살 소망도 다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일어나 복음을 전합니다. 죽기까지 Keep on running입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위대한 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동기요 그 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이 자신들을 순교하여 죽기까지 헌신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사랑의 동력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군대 다닐 때 출퇴근 방위병 중대장으로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와 같이 대대에서 군대 생활을 한 작전장교가 있었습니다. 그 작전장교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면회도 오고 아예 붙어 다니는 사이입니다. 누가 봐도 조금 있으면 결혼할 사이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가 군 고위 장교입니다. 자기 딸이 그 작전장교와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군인 아버지가 딸에게 엄히 명령조로 말합니다. “애야, 그 녀석하고 빨리 끊어라.” “싫어요. 나는 그 오빠가 좋아요.” “애야, 이 세상에는 더 좋은 남자들이 많이 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 그 녀석하고는 당장 헤어져라.” 그러나 딸이 막무가내로 그 작전장교를 만나기 위해 계속 군부대에 면회를 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처녀가 면회를 왔는데 여름에 흰 털모자를 눌러쓰고 온 것입니다. 왜 그러지? 저게 요즘 유행하는 멋인가? 아무튼 뭐 예쁘긴 하네? 여러분, 군대에서는 치마 입은 여자는 다 예쁘게 보입니다. 제가 인사를 했습니다. “아, 모자가 참 잘 어울리네요.” 그러자 그녀가 쑥스럽게 웃습니다. 옆에 있던 그녀의 애인인 작전장교도 멋쩍어서 웃습니다.
나중에 애기를 들으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그 작전장교 녀석 만나지 말라고 머리를 빡빡으로 밀어버린 겁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더운 여름날 털모자를 눌러쓰고 무서운 아버지 몰래 집을 탈출하여 애인을 만나로 온 겁니다. 내가 봐도 그 작전장교 녀석은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고, 더구나 진급이 보장된 육사출신도 아니고, ROTC도 아니고, 삼사관학교 출신이라서 진급도 잘 안되는 케이슨데...
왜 그럴까요? 아- 뭐긴 뭐에요? 사랑 때문이지요. 그 사랑이 그녀를 강권한 겁니다. 그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런 거고요. 이도령과 춘향이도 그런 겁니다. 사랑의 강권! 이것 때문에 이성도 마비되고요. 이것 때문에 중요한 역사가 이어지기도 하고, 이것 때문에 중요한 역사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게이스가 있습니까? 그 옛날 사랑이 강권하여 지금의 남편 새끼와(아니 남편 분과) 결혼을 한 분이 있으면 한번 손을 들어보면 안되겠지요?
여러분,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오늘도 강권적으로 움직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나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하고, 직장에 가게하고, 학교에 가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교회에 나오게 하는가? 나는 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가? 왜 나는 매번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하는가? 도대체 그 무엇이 나를 어떤 일을 하게 하기도 하고, 하지 않게 하기도 하는가? 그렇게 나를 이끌어가고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똑같은 일을 해도 사람마다 동기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기가 무엇인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오는 겁니다. 또는 교회에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서 나오는 분도 있습니다. 혹은 찬양이 좋고, 예배가 좋고, 성도 간에 교제가 좋아서 나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이 되어서 교회에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합니다. 복 받는 것이 교회에 나가는 근본 동기라면 복을 받지 못할 때에는 그만 낙심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이성이 동기라면 그 이성이 다른 곳으로 가면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도 간에 교제가 동기라면 그 분과 관계가 자칫 틀어지면 교회 나오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현재의 모습을 보면 똑같이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있지만, 그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그 어떤 동기가 움직입니다. 좋은 동기를 가지면 결과와 미래가 좋아질 것이고, 나쁜 동기를 가지면 미래와 결과도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하도록 움직이고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의 삶을 결정하고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도대체 왜 이 캐나다 땅에 왔고, 왜 이 땅에 머무는 것입니까? 최근 어떤 분이 저와 대화하는 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왜 이곳 캐나다 시민권을 아직 안 가지는 거예요?” 제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국민연금 10년 부어놓은 것이 있어서 은퇴하면 한 달에 40만 원 정도가 나와요. 그리고 제가 독립유공자 자녀라서 한국에 들어가면 당장 40만 원 정도가 매달 나와요. 그리고 한국이 여기보다 좋은 것이 있잖아요. 특히 의료 시스템이 돈은 좀 들지만 가장 빠르잖아요? 치과도 그렇고요. 그리고 5년만 기다려서 65세가 되면 이중 국적을 가질 수 있어요”
즉 여기 시민권을 갖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돈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좋은 것이 제법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아직 이곳 시민권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돈 때문에 아침부터 일어나서 직장 다니는 것 아니에요. 치사하지만 상사 비위도 맞추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해도 직장에 계속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이것이 다 그 이유요 동기가 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뭐에요? 자기를 위해서, 혹은 자기 가족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혹시 주님을 위해서 직장에 다니고, 주님을 위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습니까? 할렐루야! 이런 분이 있다면 마땅히 큰 박수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도대체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 겁니까?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이곳으로 저곳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우리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분노가 자신을 움직입니다. 미움과 증오가 자신의 인생을 움직입니다. 분명한 것은 미움보다는 사랑이 낫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지내는 것이 훨씬 보람이 되고 행복합니다.
사람이 타락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이 타락하지 않으려면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고로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든지, 혹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지금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인가를 먼저 따져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나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체크해보십시오. 우리들을 섬기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분의 사랑 속에서 움직이면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그 일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기가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적인 동기가 끼였다면 결국은 갈등과 상처가 생기게 됩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것에는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날마다 확인하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외국 땅에서 보람되게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 성도님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느끼고 그 강권적인 그 사랑의 힘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