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요즘 영어 단어 중에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뜻을 가진 positive와 부정적인 뜻을 가진 negative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negative라는 단어보다 positive라는 의미가 더 좋습니다. 그래서 “너는 왜 항상 negative(부정적)니?”라고 말하면 좋지 않은 의미로 쓰입니다.
반대로 “아- 그 사람은 항상 positive(긍정적)이야?”라고 말하면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의학적인 면으로 해석하면 정 반대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 테스트를 받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결과가 나옵니다.
둘 중 하나가 나올 수 있겠지요. positive냐 negative냐 입니다. 어떤 것이 좋은 겁니까? 이때는 positive보다 negative가 좋습니다. 즉 이 두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일 때에는 positive(긍정적) negative(부정적)이란 뜻이지만 의학적으로 쓰일 때에는 positive(양성, 감염됐다.) negative(음성, 감염되지 않았다.)란 뜻입니다. 고로 요즘 이 두 단어를 헷갈리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헷갈리면 안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6.25전쟁이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겁니다. 나이 60이 넘은 저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어른 분들은 “6.25전쟁은 남침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 전쟁은 북침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정도가 그렇게 생각할까요? 제가 찾아봤더니 고등학생 응답자의 69%가 “6.25전쟁은 북침이다.”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뉴스가 보도된 시점을 보니까 2013년 6월 25일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그런데 좀더 사실을 파악해보니까 이렇습니다. 그렇게 6.25가 북침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북침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니 북침이 아닌가요?” 즉 그들은 남침과 북침의 표현을 혼동한 겁니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합시다. 남침 : 북쪽이 남쪽을 침략한다. 북침 : 남쪽이 북쪽을 침략한다. 그래도 헷갈립니까? 하여간 이 단어도 헷갈리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절대로 헷갈리면 안 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악인과 의인입니다. 도대체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하냐는 겁니다.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하여 중국의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렘17:9)고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가만히 나두면 알아서 죄를 짓고 알아서 죄의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아- 안 됩니다.
이를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다행히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보다 의롭게 살려고 오늘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와 여러분들이 그렇게 의롭게 살려고 합니까? 어떤 때에는 의롭게 산다는 것이 참 피곤하고 때로는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롭게 살려고 합니다. 왜 그래요? 그 이유는 바로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은 의로운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34:15)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각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의 기도를 더 잘 들어줄까요? 성경은 증언합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의인 10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 멸망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나서 세상이 멸망을 당할 때에는 노아 외에는 의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인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세가 되면 악인들이 많아진다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그래서 의인이 살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사는 저 의인인 롯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8)
아- 마음이 아픕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왜요?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잠29:2) 하나님은 선한데 그 백성이 악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이 탄식합니다. 아내가 선한데 그 남편이 악하면 아내가 같이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반면 남편이 선한데 아내가 악하면 남편도 같이 악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자녀가 악한 길로 가면 부모는 심히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선하기를 원합니다. 끝까지 착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애쓰고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선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를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하셨습니다. 또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라.”(시1: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특히 오늘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잠17:15) ”악인을 두호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잠18:5)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잠17:26)
여러분, 신앙생활의 목적은 악인이 회개하고 바르고 선하게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이 보장합니다. 물론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때로는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 혹은 그렇게 선하게 살다가 친구를 잃고, 명예를 잃고, 혹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가정도 가족들도 함께 파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다면 우리는 악인의 길로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떠나 거짓의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혹 잠시 악한 길로 갔더라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제가 요즘 어떤 분의 고백을 듣고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저보다 나이가 한 살이 적은 60년대 생입니다. 그 분은 최근 유튜브를 통하여 하는 일로 인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고,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성한 자기 아들이 아버지인 자기에게 염려하듯 말합니다.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처럼 옳은 사람이 다 성공하고, 잘 되고, 승리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 분이 대답합니다. “아들아, 물론 그렇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도 뻔한 옳고 그름, 거짓과 진실 앞에서 양심을 속이고 거짓의 길, 옳지 않은 길로 갈 수는 없다. 나는 인생을 그렇게 살지 않았다.”
저는 그렇게 말한 그 분을 보면서 “아하-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분에 대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그 분의 자기 소개서에 보니까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나의 인생 1막(학창시절), 인생 2막(연구원 생활), 인생 3막(기업 CEO 생활), 인생 4막(개인 연구소 설립), 인생 5막(절대 진리를 향한 여행길)
그리고 여기 인생 5막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그는 절대 진리를 향한 여행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 사람은 목사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만난 하나님,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통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그렇게 유튜브를 하다간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데.... 참으로 용감합니다.
누가 그를 그렇게 용감하게 했는가? 바로 그 안에 있는 진리의 예수님입니다. 그 안에 있는 의로운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비록 그가 목사님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만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인생을 살려는 그 용기에 크게 감동을 받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갑시다. 끝까지 착하게 살아갑시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비록 외국 땅에서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갑시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올바르고 착하게 산 사람들이 모이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기쁨으로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