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갑질 을질

날짜: 
2020/09/27
말씀: 
마20:25-28
말씀구절: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설교: 

혹시 ‘갑질’ 또는 ‘을질’이란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이것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에요? 나쁜 말입니다. 추천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장난질, 자랑질, 서방질, 계집질, 곁눈질, 신경질, 선생질, 강도질, 도둑질.... 모두 나쁜 말입니다. 즉 명사형에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사용하여 부정적인 단어를 만든 겁니다.

특히 ‘갑질’이란 갑이란 사람이 행하는 좋지 못한 행동을 뜻하는 것이고, ‘을질’이란 을이란 사람이 행하는 나쁜 행동을 뜻합니다. ‘갑’과 ‘을’은 계약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면 “임대인 아무개는(이를 ‘갑’이라고 칭함) 임차인 아무개에게(이를 ‘을’이라고 칭함) 어쩌고저쩌고...

일반적으로 ‘갑’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고용인, employer)이고, ‘을’은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사람(피고용인, employee)이 됩니다. 그리고 권리관계에서 보통 강자를 ‘갑’이라고 칭하고 약자를 ‘을’이라고 칭합니다. 즉 강자가 자기의 힘을 믿고 나쁜 행동을 하면 그게 ‘갑질’이고, 반면 약자가 교묘하게 강자를 협박하면 그게 ‘을질’입니다. 갑질과 을질 모두 좋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인이 해서는 안 됩니다.

좀더 공부를 해볼까요. 동양의 역법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에 ‘십간십이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십간’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개입니다. 그리고 ‘십이지’는 ‘자(쥐) 축(소)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 12개입니다. 여러분들 생일을 표시할 때 종종 개띠, 소띠, 말띠, 닭띠,,, 이런 것이 바로 ‘십이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들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해서 60개를 만드는데 이를 ‘육십갑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육십갑자가 한 주기 돌아와서 61년째가 되면 ‘회갑’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조합해서 년도를 정하는데 예를 들면 갑자년, 을측년, 병인년, 정묘년... 이런 식으로 60개를 만듭니다.

한국 역사에 보면 이 ‘육십갑자’를 사용하여 어떤 큰 사건을 표시합니다. 예를 들면 ‘갑신정변’은 갑신년에 일어난 정치적 변란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을미사변’은 을미년에 일어난 사변이란 뜻이고 ‘임오군란’은 임오년에 일어난 군대의 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삼일절 노래에 보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즉 삼일 운동은 1919년 기미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동물을 비롯해서 인간이 사는 세상에도 강자와 약자 간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고 불협화음이 있습니다. 즉 갑질과 을질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괴롭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러한 갑질과 을질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낙원이 되지 못하고 점차 지옥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유명한 갑질을 소개하면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입니다. 소위 ‘땅콩회항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하루는 항공사 주인이 자기 회사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승무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등석은 규정상 땅콩(마카다미아)을 접시에다 가져와야 되는데 그냥 봉지째 가져왔습니다.

주인은 이를 서비스 규정에 어긋났다고 승무원을 질타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대놓고 승무원의 인격 모독을 하고 아예 비행기를 이륙시키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강자가 힘이 없는 약자를 찍어 누르는 갑질입니다. 특히 이런 갑질을 부린 분이 젊은 부유층 여성이고, 갑질을 당한 분이 가난한 남성 승무원이다 보니 남성우위의 유교사상이 있는 한국인 남성들이나 가난한 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큰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한국의 정치인들인 중에 이런 식의 잘못된 갑질을 마치 부르주아 계급의 가진 자들 모두가 저지르는 횡포라고 은근히 혹은 대놓고 국민을 선동하고, 국민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둘로 나누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반면 ‘을질’이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저녁 장사로 한창 바쁜 오후 7시, 서울 강남에서 식당을 하는 A씨에게 메시지가 들어왔다. ‘사장님, 오늘부터 일 못 나가겠어요. 3일 치 알바비(아르바이트비) 9만6000원은 ××은행 ××××-××× 계좌로 보내주세요. 어제 생수통 교체는 업무 외의 일이었으니까 좀 더 계산해서 보내주세요.’

A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이 빠진 자리를 메우느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문자 메시지에 곧장 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메시지가 또 왔다. ‘혹시 알바비 떼먹는 건 아니시죠? 고용노동부에 신고합니다.’

A씨는 괜히 입씨름을 해봐야 내 속만 썩는다는 표정으로 인터넷뱅킹으로 송금을 했다. 다른 식당보다 아르바이트 비를 조금 높게 책정해서인지 다행히 금방 일을 하겠다는 직원을 구했다. 새로 오기로 한 직원은 ‘주말에 부모님께 다녀와야 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근무 첫날이니 약속된 시각보다 조금 일찍 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오기로 했던 직원은 그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모두 불통, 말 그대로 연락 두절이었다. A씨는 열흘 동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주방과 홀 서빙을 도맡아야 했다.“

여러분, 어때요. 이런 을질도 좋지 못하지요? 그래도 이 정도의 을질은 제법 양호한 편입니다. 6.25 한국 전쟁 중에 공산당이 한국을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가진 자인 부자들을 증오하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지주 밑에서 하인을 했던 이들이 갑자기 공산당 붉은 환장을 차고 주인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겁니다. 이건 뭐 을질을 넘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서는 이런 갑질과 을질이 당연히 없겠지요? 그치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갑질과 을질이 심한 교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힘이 있고 지위와 명예와 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리고 가진 자도 그것을 가지고 없는 자를 섬기는데 쓰고, 강자도 그 힘을 가지고 약한 자를 돕기 때문에 갑질과 을질이 성경적으로 교회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론상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성경적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교인들끼리 갑질과 을질을 서로 주고받으며 상처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교회에 오래 된 묵은 신자는 갑이고, 새로 들어온 신자는 을이고, 뭐 그런 것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은 갑이고, 믿은 지 얼마 안된 성도님은 을이고 이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고 자매입니다. 그러니 갑질도 을질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서로 돕고 사랑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성도가 회사에 가면 자기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갑질 을질 부릴 필요 없고요. 이런 성도님들이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되도 갑질 을질 부릴 필요 없고요. 이런 성도님들이 학교에서 교수님이나 학생의 입장이 되도 갑질 을질 부릴 필요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습니다. 때가 되면 그 영원해 보였던 갑의 권세도 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감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갑의 입장일 때 잘해야 하고, 을의 입장일 때 역시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주제 파악이 안 되는 분이 있습니다.

즉 자기가 을인데 갑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을질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착각을 하여 자꾸 갑질을 해대는 겁니다. “아니, 저건 지가 을인데 왜 갑질을 해?”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종종 이런 갑질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정 이따구로 굴면 저 교회 떠납니다. 십일조 안 냅니다.” “아이고, 무서버라.”

특히 이민교회의 작은 교회일수록, 그리고 개척한지 얼마 안 되는 교회일수록 이런 성향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민 교회를 개척해본 목사님들은 이런 되도 안 되는 갑질 을질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목사님들도 이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피곤해집니다. 우리 교회에는 김주희 아빠를 위해서, 김성령 남편을 위해서 이런 갑질 을질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실 제가 이런 설교를 할 정도면 저는 갑질 을질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갑질 을질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할렐루야! / 가정에서도 보면 가족 식구들끼리 갑질과 을질이 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가정은 피곤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부모는 갑이고 자녀는 을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를 을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에게 막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히스테리를 부립니다. 주위에 그런 자녀들 있지요? 구약 시대는 자녀가 부모에게 이런 갑질을 하거나 을질을 하면 죽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 시대이니까 그냥 뭐 좋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믿는 자녀들이 이러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학생의 경우 부모에게 마음이 안 좋으면 “나 오늘 학교 안 가!” 그러고, 어린 자녀도 부모에게 삐치면 “나 밥 안 먹어!” 그럽니다. 아- 이건 뭡니까? 이거 갑질입니까? 을질입니까? 하여간 말세에는 부모에게 이런 갑질 을질 하는 자녀가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때 부모가 참 어이가 없지요. 자식새끼 힘들게 키워났더니 이런 험한 꼴을 당하면 부모는 정신이 나갑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집니다. 한 성깔 하는 부모는 “이 놈아! 이 년아!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자식과 심하게 싸우고 가정이 파탄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 부모는 좀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 자녀가 그런 갑질과 을질을 하도록 주의 교양과 훈계로 바르게 키우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영적인 면도 생각해 보십시오. 내 자녀에게 혹시 귀신이 순간적으로 역사하여 부모에게 갑질과 을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자녀가 부모를 모독하고 공격하는 것이 실지는 그 자녀안에서 역사하는 귀신일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그 자녀에게 들어가 역사하는 귀신을 쫒아내야만 합니다.

같이 따라합니다. “내 자녀에게 들어가 부모를 공격하고 부모에게 갑질 을질 하는 귀신아! 물러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 제가 좀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힘이 없는 을일 때는 비굴할 정도로 살살대고, 반면 자기가 힘이 있는 갑이라고 생각되면 갑자기 돌변하여 을인 사람들에게 인정사정없이 갑질을 해대는 인간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갑이어도 낮춤과 섬김으로 을을 돌보는 성도, 그리고 자신이 을이어도 전혀 비굴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하늘나라를 가꾸며 세상에서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비록 외국 땅에 살아도 갑질 을질에 휘둘리지 말고 참다운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