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개정된 새 찬송가를 보면 여러 곡의 찬송가가 새로 첨부가 되었습니다. 그 중 좀 특이한 찬송가가 첨부된 것이 있습니다. 367장 ‘인내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입니다. 이 곡이 특이한 것은 5/4박자입니다. 이런 5/4박자의 찬송가를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찬송가를 새로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이 찬송가 괜찮네. 가사도 좋네. 언젠가 이 찬송가로 영감을 받아서 설교를 하면 좋겠다.” 그리고 2021년 1월 1일 새해 첫날도 제가 하루 찬송가를 100장 부르는데 그 날 이 찬송가를 부르게 되었고, 이 찬송가에 필이 꽂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이 찬송가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인내하게 하소서.’
이 찬송가 가사에 보면 한 사람의 인생 속에 여러 종류의 슬픔이 가득 찼습니다. 더구나 질병도 생겼습니다. 금방 낫는 병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왔고, 또 지금도 이 질병이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짜증이 나고 화도 납니다. 그리고 슬픔이 낙심이 되고, 무기력과 우울함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이때 이 찬송을 부릅니다. “인내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슬픔 가득차고 질병 있을 때, 주여 주여 주여 참는 맘을...” 인류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났습니다. 노와의 홍수로 인해 환경도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과 그의 졸개인 귀신들이 우리들을 노예로 잡고 너무도 잔인하게 인정사정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피곤합니다. 괴롭습니다.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인생을 살다가 그만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달려가기가 벅찹니다. 그러나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니까 눈물이 납니다. 좀 두려움도 생깁니다. 이때 이런 찬송이 나옵니다. “인내하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슬픔 가득차고 질병 있을 때, 주여 주여 주여 참는 맘을...”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너무도 자주 접했던 인생 명언이 있습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책상 앞에 이 명언을 붙여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 명언이 무엇이지요?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라는 분이 말한 것입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를 달다.”라는 명언입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특이한 몇 명의 학생을 제외하면 공부가 참 힘이 듭니다. 특히 한국은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하루 4시간 자면 대학에 들어가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한참 자야할 나이의 학생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몇 년간, 몇 달간 버티면서 공부한다는 것이 고문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주위 시선이 있습니다. 당시 대학 입학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대학을 못가면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도 “여기서 낙오하고 떨어지면 내 인생은 끝장난다. 망한다.”란 강박 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때로는 졸릴 때 자기 살을 꼬집으며 잠을 쫒아내기도 하고, 수시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공부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답답합니다. 그러나 책상 앞에 쳐다보면 이 글이 보입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이 글을 보면서 장차 인내 후에 다가올 좋은 열매를 기대하며 또 다시 마음을 먹고,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했습니다.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인내의 덕목이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성경이 예언한 말세의 시대는 환난의 시대입니다. 고통의 시대요, 인간성이 극도로 나빠지는 시대입니다. 한 마디로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더구나 작년부터 시작된 COVID-19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캐나다도 Lock-down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여파로 경제도 어려워지니 사업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이 듭니다. 새해에도 방구석에서 갇혀 지내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 답답합니다.
이때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는 세상에서 말하는 인내와는 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인내는 위험한 시기, 안 좋은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기대하며 이를 악물고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환난도 우리에게는 인내라는 덕목을 만들어 주니까 좋은 것이요, 인내를 통하여 내가 아름다운 인격으로 갖춰지고, 그로 인해 결국 하나님의 소망,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즉 어떤 사람들이 환난을 통하여 같이 10년을 참고 견디고 인내해도 10년 후 더욱 좋은 성품으로 변화되는 사람은 인내를 바르게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품의 변화가 전혀 없이 그냥 이를 악물고 ‘두고 보자.’ 하며 미움과 원한을 품고 버틴 사람은 성경적으로 바른 인내를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인생을 살면서 고난을 겪게 되고 그것을 참기는 참는데 성질은 더 못돼지고 더러워지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고난을 통해 자신의 인격이 보다 아름답게 변화가 되는 바른 인내를 하는 사람입니까? 사람마다 각각 인내하는 모습과 그 양과 질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근데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인내’라는 덕목이 있습니다. 즉 성령님이 내 안에 인격으로 오셔서 그 분의 힘으로 바르게 인내하는 겁니다. 내 힘과 내 인격을 가지고는 아무 이유 없이 내 오른 뺨을 때리고 왼 뺨도 때리고, 계속해서 나를 모욕하는 사람을 참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때에도 참을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인내하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인내하는 겁니다. 사람의 인내가 아니라 신의 인내입니다. 성경에서 말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나와 예수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 새로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일단 저보다 나이가 먹은 사람을 나보다 낫다고 보는 겁니다. 어떤 면이 낫냐면 저보다 한 살을 더 먹은 사람은 일 년을 저보다 더 참고 인내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두 살을 더 먹은 사람은 2년을 저보다 더 인내한 사람이고요.
그리고 어떤 부부가 70세가 되어도 같이 사는 사람을 보면 “아- 저 분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참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그래도 잘 참고 버텼구나! 대단하다.” 하고 존경심이 듭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아하- 그래서 성경에는 머리가 흰 노인 분들 앞에서 일어나고, 그 분들을 존경하라고 했구나!”
특히 제가 목사이다 보니 은퇴할 나이가 돼서 정상적으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봅니다. 여러분, 말세에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잘 참고 인내했으니 참 위대해 보이고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다짐합니다. “나도 끝까지 잘 인내하며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자. 홧팅!” 할렐루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때때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난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통하여 인격을 갖추고, 그 좋은 인격으로 하늘나라를 가꾸고, 더욱 좋은 미래의 희망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즉 내 삶에 있어서 고난이 크면 인내도 크고, 인내가 크면 인격도 크고, 인격이 크면 더욱 큰 희망이 이루어집니다.
혹시 “나의 인생은 왜 이리 힘들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다 큰 희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인내를 크게 한 사람은 큰 희망을 얻을 것이고, 작은 인내를 한 사람은 작은 희망을 얻게 될 것이고, 인내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미래의 희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인내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도 씨를 심고 열매를 바라보며 인내를 합니다. 운동선수들도 달리면서 숨이 차고 포기하고 싶어도 인내합니다. 예술가도 그 수많은 반복의 연습 속에서 인내합니다. 너도 나도 지금도 내일도 사람들은 인내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인내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예수님도 계속 인내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느니라.”(약5:11)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결론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잘 인내했습니다. 작년도 잘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새해에도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인내를 통해 미래의 희망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결말, 큰 축복에 다 같이 참예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