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

날짜: 
2024/08/25
말씀: 
막9:47-49
말씀구절: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설교: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해부하고 조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부검의’라고 합니다. 얼마 전 한국의 모 부검의 분이 자신의 유튜브에 이런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죽기 직전에 98%의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아니- 도대체 그게 뭘까?” 너무도 궁금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항상 해상 구조대원들이 CCTV를 보면서 출동대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누가 물에 빠진 것을 보면 즉시 출동해서 구조작업을 펼치는데, 안타깝게도 모두는 다 살리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살시도를 하다가 구조대원들에게 의해 간신히 살아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죽기 위해 물속에 막 뛰어내리면서 무슨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그러자 그들 중 98%의 사람들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라고 크게 후회를 했다는 겁니다. 즉 1초 전에 죽으려고 스스로 자살시도를 했지만, 1초 후에는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미친 짓인 줄 알고 심히 당황하며, 크게 무서워하며 후회를 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성경에 가룟 유다가 생각납니다. 분명히 그도 예수님의 12 제자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사단은 믿는 자에게도 들어가고,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들어가 요상한 일을 합니다. 일단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 제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생각, 즉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예수님이 사형 판결을 받고 빌라도에게 넘겨지니까 그는 곧 바로 후회를 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 그는 자기가 받았던 돈을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이렇게 가룟 유다가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밧줄을 준비하고, 그 밧줄 속으로 자신의 목을 집어넣고, 발밑에 있는 받침대를 툭- 쳐서 ‘덜컹-’ 하고 목이 졸려올 때, 그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자살을 시도하는 98%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 하고 크게 후회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후회를 한들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밧줄이 뚝- 끊어졌습니다. 그렇게 밧줄이 끊어졌으니 그가 살아났을까요? 아니요. 도리어 밧줄이 끊어지면서 그의 몸이 땅에 곤두박질하며 떨어지면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 죽었습니다.(행1:18) 아- 가룟 유다야! 도대체 왜 그랬니? 그냥 12 제자로서 가만히만 있어도 될 텐데...

혹시 여러분들 중에 가룟 유다처럼 지금 몹시 힘들어서 자살 생각이나 자살 충동이 일어나고 있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의 생각과 충동이 있어도 이를 억누르고 컨트롤을 하며 그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진짜 자살을 시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자살시도를 해보신 분이 있습니까? 어때요?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그때 무슨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의 98%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라고 크게 당황하고 후회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죽는 것은 진짜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살고 싶다는 겁니다. 누군가 빨리 나를 구해주고, 나를 제발 좀 살려달라고 속으로 외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게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 정신을 잃고 기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죽음의 고통이 오면 너무나도 아파서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즉 죽음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죽음의 순간은 너무나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게 참 다행인 것이 만약 죽음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쉽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상당수가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했을 겁니다. 즉 죽고 싶은 생각은 다들 한 번쯤은 했지만, 그 죽음의 공포와 고통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죽지 않고 살았으니 천만다행입니까? 아니면 “에이 그때 콱- 죽었어야 했는데...” 하고 아직까지 죽음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습니까? 그런 분들이 앞으로 자살시도를 하면 1초 후에 즉시 어떤 생각이 든다고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 하고 크게 후회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크게 후회할 자살시도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아멘이지요?

혹 어떤 분은 “에이, 목사님! 그런 후회는 잠시구요. 5분 후에 죽고 나면 더 이상 후회도 없고, 고통도 없고, 평안해질 텐데 차라리 그 5분 정도의 후회와 공포와 고통을 감수하며 인생을 빨리 끝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목사님이 지금 내 입장이 되어 보세요. 진짜 죽고 싶을 겁니다.”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육체의 죽음 후에 인생이 그렇게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평안하게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어떤 상태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혼 앞에 죽음의 공포와 고통보다도 억만 배나 더 되는 끔찍한 지옥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영토록 꺼지지 않는 그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의 비명을 날마다 지르게 됩니다. 그것도 영원토록... “에이, 목사님! 나 그런 지옥 안 믿습니다. 괜히 있지도 않은 지옥으로 공갈치지 마세요.” 글쎄요.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이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코 제가 공갈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막9:47-49)

유튜브에 보면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사고로 인해 혹은 큰 병으로 인해 분명히 그 사람은 목숨이 끊어졌습니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눈을 떠보니 세상에- 진짜 말로만 듣던 지옥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지옥의 불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젠 자신이 그 지옥의 불속에 들어가야 할 차례입니다. “아- 안돼!”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깨어났습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합니다. “으악- 뭐야? 살아났어.(×2) 죽은 사람이 살아났어!” 이렇게 죽었다가 지옥을 보고 난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이 유튜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옥의 간증을 하시는 분들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시는 분들이 더러는 있을 것 같아서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이야기이니까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과장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누가복음 16:19-31의 말씀입니다.

어느 마을에 굉장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들이나 귀족들이 입는 고운 베옷과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를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문 앞에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가 종기투성이의 상처가 난 몸으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금세 세월이 흘러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는 즉시 천사들에 의해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 안, 즉 행복한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건강해서 안 죽을 것 같았던 그 부자도 마침내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위해 호화롭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게 뭔 소용이 있습니까? 그는 불타는 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옥의 불속에서 눈을 들어 보니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행복하게 있었습니다. 그는 간절히 애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이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좀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아브라함이 말합니다. “애야, 너는 살았을 때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온갖 좋은 것으로 쾌락을 누리고 살았지만,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받았으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거기 지옥에서 지금 고통을 당하는 것이니라.” 그러자 그가 애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저에게 형제 다섯이 있으니 나사로를 그들에게 보내어 이 고통 받는 지옥에 그들이 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을 보낼 테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아닙니다. 만일 죽었던 나사로가 가서 제 형제들에게 말을 하면 저희가 듣고 회개하리이다.”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저들이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말을 할지라도 믿지 아니하리라.”

어때요.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이야기도 꾸며낸 거짓말 같습니까? 물론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고, 또한 지옥이 있다는 것도 믿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함을 받고 심판의 지옥에 빠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분명히 믿을 겁니다. 아멘이지요?

아- 솔직히 말해서 이 땅에서 잘 살고 못 사는 것에 우리가 너무 아등바등하는데... 그거 아무리 잘살고 아무리 못 살아도 거기서 거깁니다. 그거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합니다. 일장춘몽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짜 잘 살고 못 사는 것, 그리고 진짜 행복과 불행은 죽음 후에 결정이 됩니다. 그날에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놀려대고 업신여겼던 예수쟁이가 된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아- 내가 예수님 믿은 것이 너무나 다행이다.“ 하고 절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죽음과 지옥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죽기 전 가장 후회하는 것 5가지’가 온라인상 여러 군데에 나와 있어서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이건 믿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고, 안 믿는 사람들의 관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는 자의 관점, 즉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충설명을 덧붙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1. 가족 등 타인이 바라는 삶을 산 것을 후회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인생은 남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자기 뜻대로 살아야 죽을 때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즉 우리들의 인생은 내 멋대로 살아도 후회하고, 다른 사람의 뜻대로 살아도 후회합니다. 결국 피조물인 우리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과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가장 보람되고, 가장 행복하고, 후회가 없는 삶입니다.

2. 일만 너무 열심히 한 것이 후회된다.

아- 이거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일도 일 나름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느냐에 따라 크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조금도 후회가 안 되고, 도리어 죽는 순간까지 그 일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즉 나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고 살면, 그것이 가장 보람되고, 가장 축복되고, 가장 행복해진다는 겁니다. 진짜 그럴까요? “안 그런 것 같은데요.” 하고 의심하는 분들은 현실의 짧은 세상만 바라봐서 그렇지, 저 영원한 천국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그의 일을 먼저 하고, 또 죽을 때까지 열심히 그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될 겁니다.

3. 세상을 더 많이 여행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는 아시다시피 잘 여행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 솔직히 말해서 여행할 정도로 돈도 없고, 시간과 여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여기 캘거리에서 주님의 일을 하다 보니 여기에 꽁꽁 묶여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여기 한 장소에 꽁꽁 묶여있고, 여행을 거의 못가니까 제가 크게 후회되는 인생, 불행하게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까? 노우(No). 절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65년간 인생을 살면서 여행한 나라를 살펴보니 총 4개 나라입니다. 한국,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여기 캐나다입니다. 제 나이나 직업에 비해 많이 여행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올해까지 27년간 여기 캘거리에 짱-박혀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살 겁니다. 저는 여기에 살면서 여행을 못해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 세계여행 해봤자 거기서 거깁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이 조그만 지구 안에 별로 특별한 곳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궁금한 곳도 별로 없습니다. 정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온라인으로 그 장소를 찾으면 동영상을 비롯해 별별 것들을 아주 쉽게 앉아서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가보고 싶고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하늘을 바라보면 저- 광대한 우주가 보입니다. 그 우주를 영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주가 지금도 계속 빠른 속도로 팽창중이라고 하는데 그 우주를 넘어 우주의 끝은 어떤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것은 죽어서 가야되겠지요? 사도 바울처럼 살아서 천국을 여행하면 더욱 좋고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죽음이 다가와도 아- 이 죽음을 통하여 내가 진짜로 여행하고 싶은 그곳에 여행하는 좋은 기회가 되니까, 죽을 때에도 뭐- 이 조그만 땅덩어리 많이 여행하지 못했다고 그런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4. 괜한 걱정으로 도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아- 물론 죽기 전에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 동영상을 보면서 “아니, 저런 위험한 일을 왜 하나? 쯧쯧쯧...”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츠 Top 10'입니다. 한번 알아볼까요.

10위. 스쿠버 다이빙 : 사망확률 1/200,000

9위. 스카이다이빙 : 사망확률 1/60,000

8위. 스키점프 : 사망확률 1/8,300

7위. 산악스키 : 사망확률 1/5,500

6위. 절벽 다이빙 : 사망확률 1/2,300

5위. 복싱 : 사망확률 1/2,200

4위. 맨손 암벽등반 : 사망확률 1/1,700

3위. 모터사이클(오토바이) 경주 : 사망확률 1/1,000

2위. 행글라이딩 : 사망확률 1/700

1위. 윙 슈트 : 사망확률 70%. 즉 100명 중 70명은 결국 죽는다는 겁니다. (아- 이거 모르시는 분이 많이 있을 텐데... 한번 사진 좀 보여주실래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런 위험한 것들을 도전하지 못한 것이 죽기 전에 크게 후회가 될 것 같습니까?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이런 위험한 도전은 절대 안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만큼은 죽기 전에 꼭 도전해봐라 하고 추천해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 도전 안하고 죽으면 반드시 죽기 전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그게 뭘까요? 예- 눈치 빠른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다름 아닌 신구약 성경을 한번 통독하고, 찬송가에 수록된 전곡을 마스터하고 부르는 겁니다. 할렐루야!

5.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여러분, 외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많이 표현하므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성적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죽을 때에 큰 아쉬움과 후회가 남게 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하고,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말도 못하고, 고마운데 고맙다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아주 싫은데 싫다고 표현을 못해서 속으로 매우 화가 나고, 또 그 화를 스스로 삭이려고 하는데 제대로 삭이지 못하여 원한이 맺히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되, 정제되고, 좋은 언어로, 혹은 좋은 글로 표현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말세지말이라 세상 살기가 이래저래 참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 힘든 내 감정을 다 분출하고 살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는 그때그때마다 내 감정과 기분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를 받아주는 분이 필요합니다. 그 분이 누구지요? 예- 바로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께 솔직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답답한 심정, 그 분노, 그 슬픔, 그 고통, 그 아픔을 모두 아뢰는 겁니다. 그러면 속이 뻥- 뚫립니다. 죽을 때에 후회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지 않습니다.

결론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고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그에 따른 후회를 합니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서 후회하고, 사지 말아야 할 물건을 사서 후회하고,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해서 후회하고, 건강을 잃고, 돈을 잃고 나서 후회하고, 과거의 이런저런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또 그렇게 후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지!”라는 1초 후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반대로 하나님을 뜻을 좇아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여 후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이 나를 보시고 후회스럽다고 말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얼마 살지 못하는 저희들의 인생이 후회의 인생이 되지 않도록 저희들을 늘 가르쳐주시옵소서. 인도해주시옵소서. 인생의 모든 일정이 마치는 날, 주님의 품으로 가는 날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