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어- 이건 좀 의외다!” 하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현재 가톨릭의 교황 이름이 ‘프란체스카’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기독교 교단마다 다르지만 동성애에 대해 아무래도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이 최근에 좀 더 포용적인 입장을 취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본 뉴스의 제목은 “프란체스카 교황,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다.”라는 제목이었고, 이에 대해 교황청에서 해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해명은 이렇습니다. “교황께서 동성애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즉 교황이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는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 이건 뭐야?”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얼마 전 프란체스카 교황이 이탈리아에서 200명의 주교들과 비공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때 모임의 주제는 가톨릭 신학교에서 동성애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사제가 되는 것은 안 된다. 즉 동성애자들의 신학교 입학을 제한해야 한다고 논의 중에 나온 말입니다.
그때 교황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신학교에는 프로차지네(frociaggine)가 꽉 찼어.” 여기서 ‘프로차지네’(frociaggine)는 이탈리어 말로 남성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며 일컫는 말입니다. 아니- 가톨릭 신학교에 동성애자가 꽉 차면 이건 뭐지요? 우리가 알기로는 신부님들은 결혼을 안 하시는 걸로 아는데... 근데 섹스는 하나요? 그것도 동성애를요?
아- 이거 뭐가 뭔지 굉장히 혼란이 옵니다. 가톨릭이 세상을 향해 겉으로는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포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실지 고위층 내부에서는 동성애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암튼 교황이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를 썼고, 이에 대해 “그거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발언이 아닌가?” 하고 물의가 일어난 것이 최근 뉴스입니다.
만약 그런 동성애자에게 대한 혐오 발언이 캐나다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캐나다의 법은 고의성 있는 혐오 표현을 쓰면 최대 징역 2년 형의 처벌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고의성과 관계없이 혐오 표현을 할 때에는 준사법기관인 인권재판소를 통해 규제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캐나다보다 더 강력하게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을 가진 나라는 독일로서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되어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아직 ‘혐오 표현 금지법(Hate Speech Prohibition Law)’이 기독교인들의 반대로 통과가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즉 중요한 쟁점이요, Hot Issue입니다.
근데 왜 기독교인들은 ‘혐오 표현 금지법’을 찬성하지 않고 반대하고 있을까요?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여기 캐나다에서 살다보면 종종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깔보고 비하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남을 깔보고 혐오하며, 그런 표현을 대놓고 하는 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잖아요. 그걸 막자고 법을 만드는 건데 왜 기독교인들이 이 법을 반대합니까?
그 이유는 그 법에 감춰진 나쁜 의도, 좋지 못한 독소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성애 문제입니다. 즉 혐오 표현 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대놓고 나쁘다고 말을 못합니다. 뭐- 말을 해도 되긴 되지만 혐오 표현 금지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혐오 표현 금지법=차별금지법=동성애 허용법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 법을 반대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 그거 동성애를 허락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마다 다 성적 취향이 다를 수 있는데... 아니 그걸 뭐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들에게도 자기 취향대로 성적 만족을 누릴 자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요즘은 뭐 동성애가 솔직히 죄도 아니잖아요.”
아- 저도 목사가 아니고, 성경을 몰랐다면 아마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자기의 생각을 우리들에게 나타내신 법입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법이 있습니다. 특별히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법과 도덕 기준을 만드셨습니다. 창조주는 자기가 만든 세상에 그런 법을 만드실 권리가 있습니다.
그 법인 성경에 의하면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법에 어긋납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가증하니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증하니라’를 공동번역에서는 ‘망측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망측하다’라는 뜻은 “이치에 맞지 않아 어이가 없어 차마 보기조차 어렵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NIV 영어 성경에는 ‘detestable'이란 단어를 쓰고, KJV 성경에서는 ’abomination'이란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이는 요즘 말로 하면 ‘혐오스럽다'(disgusting)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캐나다 법을 적용하면 동성애에 대해 이런 혐오스런 표현을 성경에다 쓴 하나님은 증거가 분명하니까 빼도 박도 못하고 징역 2년 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너무나 자주 동성애에 대해 ‘가증하니라’라고 성경에다 적어놓았습니다. 아마 괘씸죄가 적용되면 하나님은 징역 2년형보다 더 무거운 형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성경에 ‘가증’이라는 단어가 총 157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물건도 있고, 가증한 동물도 있고, 가증한 사람도 있고, 가증한 행동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증한 물건의 대표적인 것은 우상입니다. 그리고 가증한 동물의 대표적인 것은 뱀입니다. 여러분 어때요? 뱀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까? 아니면 징그럽고 혐오스럽습니까? 그리고 가증한 사람의 대표적인 것은 동성애자이고, 가증한 행동의 가장 대표적인 것도 동성애 행위입니다.
아- 이건 저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성경에다 기록해놓은 것을 제가 소개하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을 봅시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렘18:22) 여러분 혹시 동성애를 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그런 거 왜 하냐고요? 아- 좋으니까 하지요. 나쁘면 하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 동성애를 경험하신 분들이 없으신 것 같은데... 그러면 제가 겪은 동성애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엥- 뭐야? 우리 목사님 알고 보니 동성애자였어? 아- 그게 아니고요. 일단 들어보십시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일입니다. 당시 제가 중학교 학생 때였습니다. 서울의 낙원상가에 있는 극장에 친구와 같이 영화 관람을 갔습니다. 그때 컴컴한 중에 어떤 아저씨가 저의 옆에 슬며시 다가오더니 제 거시기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저는 “아- 이 아저씨, 되게 심심하신 모양이다. 그래, 만지고 싶으면 실컷 만지세요. 뭐- 남자끼린데 뭐가 어때?” 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제 친구가 저에게 다가오자 그 아저씨가 매우 아쉽다는 듯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아- 저 아저씨 되게 웃기다. 왜 내 거시기를 자꾸 만지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놀라며 말합니다. “뭐-? 그 아저씨 게이인 모양이다.” 저는 물었습니다. “게이가 뭐야?” 예- 맞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 낙원상가가 당시 게이들이 모이는 집합소였습니다. 하마터면 제가 50년 전 중학교 때 그 게이 아저씨에게 저의 고귀한 순결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면 아마 되게 큰 트라우마가 생겼겠지요? 휴- 다행입니다. 하나님이 저의 순결을 지켜주셨습니다.
제가 겪은 또 다른 동성애 이야기입니다. 이번엔 40년 전 일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ROTC 장교 후보생 1년차였을 때입니다. 종종 2년차 선배들이 학교 ROTC실에 새벽 몇 시까지 집합하라고 비상을 겁니다. 그러면 집에서 잠자다말고 부리나케 학교에 가야합니다. 새벽에 버스가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 새벽 시간에 택시도 잘 없습니다. 당연히 제 시간에 모이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한바탕 얼차려가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저희 1년차 후배들도 선배가 비상을 걸 것 같은 낌새가 있으면, 아예 그 전날 학교 앞 여관에다 방을 잡아놓고, 거기서 출동 대기를 하며 잠을 잡니다.
저의 동기들이 그날도 비상 낌새가 있어서 학교 앞 여관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새벽에 비상이 안 걸렸습니다. 근데 제 방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웬 젊은 남자가 들어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여관에 청소하러 오는 직원인줄 알았습니다. 그 청년은 저의 옆에 다가오더니 장난스럽게 저의 거시기를 만지려고 합니다.
“아- 이 자식, 왜 그러지? 저리 비켜. 임마! 너 혹시 게이냐?” 그러자 그 청년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야- 근데 어쩌냐? 나는 게이가 아닌데... 사람 잘못 골랐네.” 그러자 그 청년이 자기도 옛날에는 게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원도 산골에서 군대 생활을 하면서 여자가 하도 귀하다 보니, 같은 남자 군인들끼리 동성애를 하면서 게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말합니다. “이거 처음에는 좀 어색해도 해보면 굉장히 좋아요.” “좋긴 뭐가 좋아. 임마! 너나 좋지. 나는 징그러우니까 좋게 말할 때 저리 꺼져라.” 여러분, 그 동성애자에게 대놓고 “징그러우니까 저리 꺼져라.“고 한 말이 요즘 캐나다 같으면 ‘혐오 표현 금지법’에 걸려서 잘못하면 2년간 징역살이를 해야 되는데... 아니, 이게 뭔 개 같은 경우입니까? 이건 정당방위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경우에는 그 동성애자 게이를 여관의 손님들에게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주인이 막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물며 그 게이가 교회에 들어와 우리 아이들에게 접근하려고 하면 그거 막아야 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래야 피해자가 안 생기지요. 여러분이 부모로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유치원에 어린 자녀를 보냈는데 거기서 동성애 선생님에게 자기 아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더구나 자기 자녀가 그 동성애자에게 성폭력을 당해 큰 트라우마가 생기고, 더 나아가 에이즈에 걸렸다면 이걸 누가 책임집니까? 한국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동성애가 있었었습니다. 그 중에 궁녀들이 동성애를 하다가 발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에 의해 가차 없이 사형을 당했습니다.
아니, 지들끼리 좋아서 했는데 그게 뭐가 죄입니까? 더구나 그런 일로 인해 사형을 당하다니... 그건 인권유린 아닙니까? 옛날의 무식한 시대 때나 벌어진 야만적인 일이 아닙니까? 물론 시대에 따라서,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서 그것이 큰 죄가 되기도 하고, 전혀 죄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30-40년 전에만 해도 동성애는 모든 나라에서 큰 죄가 되었습니다. 가문의 수치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동성애자였던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어머니가 알게 되자, 그 사실을 너무나도 비관한 나머지 어머니가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30-40년 전에는 동성애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스런 죄였습니다. 물론 그 분은 나중에 동성애를 끊고 반동성애 운동을 하며 간증을 하시는 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동성애가 여전히 큰 죄가 되는 나라가 있고, 죄가 전혀 되지 않고 도리어 동성애를 옹호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캐나다는 동성애를 앞서서 옹호하는 나라입니다. 아- 우리 여기 캐나다로 이민 잘못 왔나요?
그런데 너무나도 놀라운 성경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것도 말세지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다름 아닌 말세지말에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가 온다는 겁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성적 범죄, 특히 동성애가 만연한 때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17:26-30)
이에 대한 또 다른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1:7) 이 구절에서 ‘다른 색’이란 공동 번역에는 ‘비정상적인 육욕’이라고 하였고, NIV 번역에는 ‘perversion'(변태)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이는 동성애를 가리키는 말로, 동성애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성애는 변태행위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동성애가 만연하게 되면 한 도시를 깡그리 멸망시키고, 온 인류까지 멸망을 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세가 되면 될수록, 앞으로 동성애는 더욱 만연하게 될 겁니다.
이제는 동성애가 더 이상 죄가 아니며, 도리어 동성애를 가증하다고 하는 하나님까지 징역살이를 시킬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정도가 되면 말세의 끝에 거의 다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아주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결론입니다. 이제는 자기의 신앙을 각자 지켜야만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는 목사도 동성애를 나쁘다고,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다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고 더 이상 말해주기가 껄끄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차별금지법이나 혐오표현 금지법에 걸려 징역살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 특히 가증스럽다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각자 무엇을 선택해도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가증스럽다고 하는 것을 하면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 하시고, 하나님이 가증하다고 하는 것은 하지 않으므로 바른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수없이 많이 그것은 나쁘다고, 그것은 가증스럽다고, 이것이 바르고 이것이 옳다고 말씀하셨지만 강퍅해질 때로 강퍅해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드디어 주님이 예언하신 대로 세상의 마지막 종말이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이때 각자 경성하여 최후의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아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